천년을 맞아 해병대가 변화의 급물결을 타고 있다. 작지만 강한 ‘21세기 해병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국민의 정부가 추진 중 인 국방개혁의 선봉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10월 부임한 김명환 해병대사령관(해사 22기)이 있다. 그는 1968년 해병대 소위로 임관한 뒤 31년 만에 해병 최고의 자리에 올랐 다.
해병대 창설 51주년을 3일 앞둔 4월 12일 김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봄 기운이 완연한 해병대사령부를 찾았다. 사령부 연병장에는 해병대 특 유의 헤어스타일을 한 사병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투체육에 몰두하 고 있었다. 김 사령관은 해사 럭비부 주장 출신답게 강골(强骨)이다.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그는 21세기 첫번째 해병대 사령관으로서 자신 의 막중한 책임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해병대의 현재 위상은 과거 50년 동안 선배들이 피흘린 결과라고 생 각합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50년은 정말 소중한 역사입니다. 지난해 부임한 뒤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사령관, 21세기를 시작하는 사령관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꼈습니다. 50년의 전통을 정 리하고 21세기 해병대가 나갈 방향을 확고하게 제시하는 게 저의 책무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면서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취임 이후 줄곧 ‘`21세기 해병대’를 강조해온 이유는.
“21세기 변화된 전쟁양상에 맞도록 해병대를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기존의 해병대 상륙작전은 함정에 탑승한 상륙군이 적 후방 해안에 최 대한 가까이 접근한 뒤 상륙정과 함선을 이용해 상륙을 시도하는 방식 이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의 전장(戰場) 환경에서는 이런 상륙작전은 적의 발달된 해안 감시 레이다와 살상력이 뛰어난 무기 체계로 인해 대량의 아군피해만 낳을 뿐입니다. 그래서 해병대 상륙작전 개념이 바 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 해병대 상륙작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21세기 상륙작전은 적의 감시 레이다를 벗어난 지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다음은 일단 함정에서 빠져나온 상륙군이 방어력이 약한 지점 을 향해 적이 알아도 대처할 수 없는 정도의 고속으로 침투해 교두보 를 마련해야 합니다. 물론 침투 과정에서 적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적 후방에 지원병력을 대거 침투시키기 위해 공격헬기 등 항공세력의 지원은 필수입니다. 우리는 이를 ‘초수평선 입체기동 상륙작전’이라 고 부릅니다.”
해병대는 독자적인 항공단을 갖고 있지 않는데.
“21세기 상륙작전의 성패는 고속기동능력을 갖춘 상륙정과 항공기에 달려있습니다. 현재 해병대는 40노트급 상륙돌격장갑차(AAV), 공기부 양상륙정(LSF) 등의 개발 및 획득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독자적인 항공단 창설 계획은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 병대 항공단이 필요한 이유는 육상, 해상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상륙작 전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륙작전에 필요한 전문적인 비행 경 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 해병대도 독자적인 항공단 을 현재 보유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조금 바꾸겠습니다. 요즘 해병대 지원 열기가 뜨겁다는데.
“해병대는 다른 군과는 달리 지원제, 모병제 위주로 선발하고 있습니 다. 따라서 우수인력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해병대 전투력의 첫 걸 음입니다. 이를 위해 해병대는 요즘 모병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해병대 특유의 충성심, 도전정신, 사나이다움을 홍보 컨셉으 로 잡고 있습니다. 이같은 홍보전략이 신세대들에게 어필했는지 평균 경쟁률이 지역별로 3.2 대 1에서 6 대 1 정도의 높은 수준입니다. 또 선발인원의 대부분이 전문대 재학 이상의 학력소지자입니다.”
해병대 지원 열기와는 별도로 해병대 캠프의 인기도 매우 높은데.
“1997년 6월부터 시작한 해병대 캠프는 지난 3년 반 동안 하계, 동계 로 나눠서 총 29개 기수에 9,483명이 입소교육을 받았습니다. 매번 150~200명 정도의 계획인원을 훨씬 초과하는 사람이 지원하고 있어 전 산추첨으로 입소자를 결정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지원자를 모두 받아 들이지 못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해병대 캠프를 더 자주 열거나 더 많은 인원을 입소시키면 될 텐데.
“현재 부대 사정상 입소인원의 확대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대의 기 본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만 캠프운영이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입소인원을 확대하기 보다는 교육의 질을 대폭 높혀 실질적인 ‘국민교육의 도장’으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이를 위해 미 국 마린(Marine) 캠프의 교육내용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해병대 내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습니까.
“해병대는 1949년 창설 이후 한 번의 시련기가 있었습니다. 73년 해 군과 통폐합하면서 해병대 사령부가 없어진 것입니다. 지휘부가 없어 지면서 인원도 대폭 감축됐죠. 이후 87년 대통령의 지시로 사령부가 복원됐고 90년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는 규정도 국군조직법상에 복원됐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권한이 예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는 없죠. 인사권과 예산권이 환원되는 등 매년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습니 다. 인사적체 문제도 점진적으로 정원관리를 통해 개선할 생각입니 다.”
‘`해병전우회’ 얘긴데 해병대 출신의 남다른 해병대 사랑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해병대 장병은 스스로 해병대를 선택했습니다. 또 군복무 기간 동안 강인한 훈련을 통해 끈끈한 전우애와 해병이라는 긍지, 명예를 갖게 됩니다. 특히, 해병대는 창설 초기부터 현재까지 고난과 역경 속 에서 상하간 생사고락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단결정신이 절실히 요구 됐고 이같은 전통이 전역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고 봅니다. ‘한 번 해 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유명한 표어도 여기서 나온 것이죠.”
올해는 6·25전쟁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해병대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해병대는 해병 전투사에서 알 수 있듯이 6·25전쟁 기간 동안 가장 험하고 어려운 전투에서 항상 선두에 서서 싸웠고 전승의 기록을 남겼 습니다. 한국군 최초의 단독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 한국군 중 유일 하게 선봉에서 돌격하는 전투부대로 참가한 인천상륙작전,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 서울수복작전 등 자랑스러운 전승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통영상륙작전 재연행사, 인천상륙작전 및 서울수복 기념행사 등을 계획 중입니다.”
<경향신문 차세현 기자(cs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