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지 33호 Forever Marine‘ 강한 남자’ 글 편집팀 / 사진 IB스포츠 제공>
지난 1월 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
팔각철창을 둘러싼 수많은 격투기 팬들 사이로 한 한국인 사내가 등장한다. 올해 서른 살의 김동현. 탄탄한 체격의 이 동양인
은 UFC 125 웰터급 경기에서 네이트 디아스(25. 미국)를 3-0 판정으로 완벽하게 꺾는다. UFC에서만 벌써 5연승. UFC 통산 14승 1무 1무효. 동양에서 건너간 이 사내는 명실 공히 떠오르는 웰터급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최고의 이종격투기 대회는 어디일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PRIDE와 K1, 그리고 UFC가 3대 무대로 꼽혔지만 PRIDE가 UFC에 인수되었고 K1도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UFC는 말 그대로 세계 최강의 사나이들이 몰리는 최고의 이종격투기 대회로 자리잡았다.
전 세계 이종격투기 선수나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 이 대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5연승을 달리고 있는 김동현은 ‘스턴 건(Stung gun : 전기충격기)’이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5연승 이후 쇄도하는 인터뷰와 화보 촬영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던 그는 ‘해병대’ 지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턴 건’이라 불리우는 이 남자는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시절부터 평범한 군 생활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들과 달리 뭔가 다르고 힘든 곳에서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 후에도 ‘대한 해병대’라는 비디오를 매일같이 보면서 멋진 군 생활을 상상하면서 주위의 친구들 모두와 같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게 됐습니다.”
해병 894기로 입대한 그는 2사단 1연대에서 보병으로 근무를 했다. 약 칠팔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그는 전방 1년 예비대 1년 군생활을 했다며,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당시 저희 중대장님이셨던 오헌석 중대장님이 마라톤 선수 출신이었습니다. 2년 동안 매일같이 구보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그리고 훈련 또한 그 어떤 중대장님보다 모범을 보이셨고 사단 최우수중대로 뽑혔던 기억이 남습니다.”
사실 운동선수 삶은 훈련의 연속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하루하루 지옥훈련의 연속인 그네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해병대의 훈련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체력적으로만 따진다면 지금의 훈련이 더 힘들 수 있겠지만 정신적인 면까지 더해지면 상황이 다릅니다. 오히려 장시간 행군이라든지 혹한기에 A텐트에서의 숙영 등 정신적으로도 무장이 필요한 해병대의 훈련이 더 힘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지옥 같았던 유격훈련 때의 PT도 생각나고 빨간 명찰을 달았을 때는 앞으로 2년간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처럼 강인한 훈련을 통해 키운 체력과 정신력은 전역 후 선수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육체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그보다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병대에서 선후임간의 계급생활도 지금의 사회생활이나 팀내에서의 대인관계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격투기 팬뿐만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UFC에서 승승장구를 하면서부터이다. UFC 5연승. 14승 무패의 기록 등 화려하게만 보이는 경력이지만 그에게도 힘겨운 시절은 있었다.
고 2때 이종격투기에 빠져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2003년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며 촉망받는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그 길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석달에 1번 정도 시합을 하지만 손에 쥐는 파이트머니는 고작 50만원 수준. 먹고 살 길을 찾아 옷 장사나 하수구를 뚫는 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 달 15만원짜리 고시원 쪽방에서 밥을 물에 말아 스팸과 함께 허기를 때우곤 했다. 흔히 운동이 너무 힘들어 세상일에 뛰어들곤 하지만, 그는 세상일이 너무 힘들어 다시 운동으로 뛰어 들었다. 싸우는 것이 제일 쉬웠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진출한 이종격투기. 가시밭을 걸어온 아들을 다시 링으로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님은 단 한 번이라도 진다면 링을 떠나겠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그는 일본에서 7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더 큰 무대로 진출하고 싶은 그의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7연승을 했지만 큰 무대에 진출하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참고 기다리고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의 영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그 당시 가장 떠올랐던 말입니다. 이 말 또한 군 생활할 때 배웠던 것이고요.” 그렇게 그는 UFC에 진출한다. 초청장이 한 장밖에 나오지 않아 매니저나 팀 닥터 없이 홀로 미국을 가기도 했다. 통역이 없어 경기를 관람 온 유학생이 즉석에서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추성훈이나 최홍만, 데니스 강같은 파이터의 네임밸류에는 한참 못 미치던 그의 이름이 슬슬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14승. 그리고 파죽의 5연승. 인터뷰와 CF, 방송 출연이 연이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상종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UFC 내에서의 입지는 더욱 커져, 2011년에도 5경기의 계약이 이미 끝난 상태이다. 최근에는 UFC 매거진을 통해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로 소개되기도 했다. 참을 인자를 수십 번씩 새기며 끝없이 연습하고 연습한 결과였다.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해병대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영광스러운 순간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죠.”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링을 떠나는 파이터들이 즐비한 UFC. 아니 링 위에 오르기 조차 힘겨운 UFC에서 그는 이제 명실 공히 웰터급의 강자로 부상했다. 싸움을 즐기는 사나이인 그는 링 위에 오를 때의 기분을 마치 해병대에서 훈련받을 때의 기분과 같다고 얘기한다.
“훈련을 받을 때 누구나 두렵고 긴장되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그 순간 그 기분을 또 느끼기 위해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시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번지점프를 할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격투기를 정말 즐기는 듯한 그 사나이의 목표는 웰터급 챔피언. 그러기 위해선 현재 UFC 웰터급의 절대 강자인 ‘조르 주 생피에르(이하 GSP)’를 꺾어야 한다. 김동현 역시 그의 목표가 GSP임을 밝혔고, 이종격투기 전문가들도 GSP를 꺾을 거의 유일한 대항마로 김동현을 주목하고 있다.
“UFC는 절대강자가 없을 정도로 강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GSP는 그 모든 강자를 누른 현재 최강의 선수이기에 얼마나 강한지 싸워보고 싶습니다. 물론 GSP에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두 경기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두 경기를 멋지게 이긴다면 연내에 GSP와 붙게 될 가능성도 많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두 경기 상대도 쉽지 않은 상대가 되겠지만요.”
GSP를 꺾고 웰터급 챔피언이 되기 위한 길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먼 것 또한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흥분해서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과 서양선수들이 갖고 있지 않는 유도 밸런스를 바탕으로 체력과 타격을 보완한다면 한 번 해볼만하다는 것이 그의 평이다. 이제 서른에 접어든 그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종격투기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UFC의 현 챔피언들도 거의 30대 초 중반입니다. UFC에서 연패를 하는 선수는 거의 퇴출이기 때문에 퇴출되기 전까지는 나이와 관계없이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퇴출되기 전까지 나이와 관계없이 링에 오르겠다는 김동현. 무엇이 그를 이종격투기에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는 누구인가라는 해답을 내줄 수 있는 스포츠와 가장 가까운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분들이 본다면 그냥 막무가내로 싸우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것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나온 기술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전 세계 이종격투기 팬이 주목하고 있는 ‘스턴 건’ 김동현.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해병 894기 김동현 선수는 자신이 2년간 청춘을 보낸 해병대에 대한 애정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듯 했다. 특히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목숨을 걸고 싸운 후배 해병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말라고 당부했다.
“저 또한 해병대 최전선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항상 최전선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더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걸 알기에 이번 소식을 들을 때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최근 현빈의 해병대 입대 등 해병대에 대한 인기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후배들의 희생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됩니다.”
지난 경기 때 입은 부상에서의 회복, 훈련은 물론 쉬지 않고 밀려드는 인터뷰와 촬영, 방송출연 등 바쁜 스케줄에도 그는 해병대의 인터뷰 요청에 귀한 시간을 쪼개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었다. 그리고 청춘을 바쳐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후배 해병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가장 달콤한 추억으로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2년간의 군 생활이 힘들겠지만 훗날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가장 달콤하고 멋진 군 생활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무것도 늦은 것이 없습니다. 2년간의 군 생활을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도 하고 계획을 짜는 시간으로 생각하세요. 군 생활을 마치고 다시 도전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UFC에 입성한 게 28살이었으니까요. 해병대를 전역하면 사회에서 그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후배 해병 여러분! 파이팅!”
필승! 1029기 경기도 안양의 이준영입니다.
김동현 선배님을 보면서 저도 큰 기쁨을 얻고있습니다.
힘내십시오.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