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헌혈왕이라 불리는 사나이들

by 운영자 posted Mar 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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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 100회.
1회당 500ml로 계산했을 때 50리터의 피를 헌혈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1.5리터 페트병으로 33.3개 분량. 웬만한 성인 여성 몸무게 만큼의 양이다.그 50리터의 피는 분명 누군가의 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내 피로 다른 이를 살린다는 것. 이것 역시 고귀한‘ 살신성인’이 아닐까.

홍정우대위.jpg 

안태수중사.jpg 이형희중사.jpg

 

당신은 평생 얼마나 헌혈을 했는가. 5번? 6번? 10번?
100번의 헌혈은 그 횟수로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헌혈 100회. 1회당 500ml를 헌혈한다고 봤을때 100회는 50,000ml의 양이 다. 50리터. 1.5리터 페트병으로 약 33.3개의 분량이다. 물론 이 정도의 피를 한 번에 뽑아내면 다 뽑기도 전에 사망에 이르렀겠지만, 어쨌든 이 정도의 피를 남을 위해 기증한 이들이 있다. 물론 장기간 100회에 걸쳐 뽑아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50리터의 혈액은 결코 만만치 않은 양이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우리 주변에는 남몰래 이러한 선행을 하는 이들이 많다. 헌혈을 100회 이상 한 장병을 찾을 무렵, 사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헌혈을 100회 이상 한 장병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해병대 제2사단 포병연대에서 중대장직을 수행 중인 홍정우 대위, 방공중대의 인사담당인 이형희 중사, 그리고 제1사단 전투지원중대에서 소대장직을 수행 중인 안태수 중사이다. 나라를 지키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마당에 없는 시간을 쪼개어 헌혈을 해왔던 그들. 진정한 나눔이무엇인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보았다.


헌혈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알려주세요.
홍정우 대위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AB형 혈소판이 급하게 필요한
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전해졌습니다. 학교에 이 얘기가 퍼지면서 헌혈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저도 평소에 의협심이 많았는지 헌혈을 하러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게 제 헌혈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형희 중사 고3 성탄절 날이었습니다. 영아원 봉사활동을 하고 집에 돌아가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돈을 넣은 적이 있습니다. 돈을 넣으면서 내가 정말 가진 것이 많다면, 더 많이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다가 헌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안태수 중사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운이 나쁘게도 혈관을 다치는 사고였고, 피해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피해자의 피가 우연히도 저와 같은 RH-였고 그 중에서도 더욱 드물다는 A형이었습니다. 긴급히 수혈이 필요한데 혈액이 모자라다는 얘기를 듣고 헌혈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100회가 넘는 헌혈 중 기억에 남는 헌혈의 순간이 있다면?
홍정우 대위 아무래도 첫 바늘을 꽂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너무 긴장을 했는지 피가 잘 안 나오는 것이었습
니다. 간호사들도 이것 저것 만져보더니 결국엔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 분들도 끈질기셔서 반대편 팔에 바늘을 찌르더라구요. 너무 긴장하면 혈관이 많이 놀라고 수축돼서 피가 잘 안 뽑힌다고 하더군요.


이형희 중사 ’99년도에 누나 친구분의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중이다고 하여, 헌혈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계가 좋아져서 혈소판 헌혈을 한 쪽 팔에 40~50분 정도만 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4시간 동안 양쪽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혈소판 헌혈은 처음이었고 정말 힘들었지만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있다는 걸 내심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안태수 중사 저 역시 첫 번째 헌혈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저는 제가 Rh-인지도 몰랐었고 그냥 A형인 줄 알았는데 첫 수혈 후에 병원관계자께서 그냥 살지말고 좋은 일 한다 생각하고 정기헌혈을 권유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급박한 사고 상황에서 저에게 작은 일인 헌혈로 한 사람을 살리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니 헌혈의 필요성을 알게되었습니다.


헌혈을 하면 어떤 순간에 어떤 보람을 느끼게 되나요?
홍정우 대위 시간 날 때마다 헌혈을 하다보니 많이 했다
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고 100회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헌혈을 하는 보람은 뭐니뭐니해도 좋은 일을 했다는 성취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헌혈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은 것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보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형희 중사 헌혈을 한 후 이 혈액 500ml가 보관함 속에 담겨질 때가 제일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 혈액의 성분이 언젠가 될지모르겠지만, 아주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 쓰인다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헌혈을 해서 보람을 느끼는 것 외에 좋아진 점이 있다면?
홍정우 대위 헌혈이 심장병이나 뇌졸중도 예방해 준다고 하고 혈액순환도 잘 되게 해준다고 하던데, 제가 무척 건강한 걸 보면 뭔가 효과가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형희 중사 우선 건강을 체크해서 좋은 것 같고, 또한 다량의 헌혈자는 일정기간마다 기존의 건강검사 외에 특별검사를 해줌으로써 건강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라는 생각 때문에 제 건강을 더 챙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태수 중사 우선 헌혈을 하게 되면 헌혈자의 건강상태를 별다른 검진이나 진단 없이 혈액원에서 알려준다는 것이 개인의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주기적인 헌혈은 인체의 각 기관에 신선한 피를 생성시키고 전달해 줌으로써 헌혈로 사람도 살리고 나의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헌혈을 많이 한 사실을 주위에서도 알 것 같은데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홍정우 대위 저의 경우 우연히 TV에 출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습니다. 평소에는 바빠서 연락도 자주 못했던 사람들이 다시 연락을 해왔는데, 제가 그럴 줄 몰랐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습니다(웃음). 그리고 해병대 장교이면서 이렇게 봉사활동까지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하더군요.


이형희 중사 처음엔 쉽게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왜소한 체격이다 보니 어떻게 그렇게 헌혈을 할 수 있느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 심지어는 팔에 주사바늘을 보고 마약하지 않았냐는 반응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헌혈증서에 표기된 횟수를 보고선 참 대단하다
내 주변에 너 같은 사람은 살다 처음이다는 표현을 씁니다.


안태수 중사 제 주위 분들은 많이 모르는 편입니다. 대부분 분들이 헌혈에 대한 순간적인 호기심만 발동하는데 저는 이런 분들의 호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권유를 합니다. 주기적으로 헌혈을 하면 좋다고 여러모로 권유를 하지만 막상 결실로 맺어지는 경우는 드문 것이 쉽습니다.

헌혈에 대해 우리 장병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홍정우 대위 혈액은 의학적으로도 또는 종교적으로도 정말 소중하고 신성한 내 몸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내 발을 잘라서 남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손 한쪽을 잘라서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조금 비우면 다시 생겨날, 내 몸에 치는 그 일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다움’ 이 실종돼가는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이 세상에서 내 몸의 피를 뽑아서 남을 주는 행위는 그어떠한 동물도 할 수 없는 가장 ‘사람다운’ 봉사활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형희 중사 헌혈은 1초의 찡그림이라는 광고를 한 번씩은 보셨을 것입니다. 내가 그린 1초가 나 아닌 누군가에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한 혈액을 나누는 봉사를 통해 ‘나눔’ 이라는 행위의 작지만 위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눔의 실천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휴가를 갑니다. 헌혈의 집을 들러 1초 동안 찡그려 30~40분 누군가를 위한 나눔을 베풉니다. 맛있는 차와 초코파이(情)를 먹고, 기분 좋게 나갑니다. 그러면 어느 곳헌혈_01.jpg의 누군가는새로  삶에 감동하여 눈물 짓고 감사하며 더욱 뜨겁게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안태수 중사 타인을 돕는 행위가 마치 손해처럼 비춰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럴 수있습니다. 돈도 들고, 시간도 소비해야 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눈 앞에 얻는 게 없다고 소소한 작은 실천을 미루는 것은 방안의 작은 먼지를 치우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다보면 이고 쌓인 먼지로 그 방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에까지 가는 것처럼 우리 정서와 우리 사회는 더욱 메마르고 더욱 험난해질 것입니다. 나의 작은 헌혈이 타인의 삶 자체를 바꿀 수 있고,그 변화가 모여 사회를,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헌혈은 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위대한 실천입니다.
헌혈증은 ‘한 번 더 타인을 위해 기증하는’ 용도로 쓰인다. 큰 병에는 많은 수혈이 필요하고 특히 혈액암 관련 질병에는 엄청 나게 많은 양을 수혈해야 하는데 그만큼 많은 진료비가 청구되게 마련이다. 헌혈증은 그 진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이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수혈받고 진료비계산시 헌혈증서를 제시하면 진료비의 수혈비용 중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을 액 공제해 준다. 헌혈증 1개만큼의 수혈을 받은 경우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약 5천원 정도. 얼마 되지 않는 듯한 가치를 지닌 헌혈증이지만 이 금전적인 부분 외에 다른 큰
가치를 갖고 있다.
바로 情
드라마를 슬프게 하는 소재 중 가장 자주 쓰이는 것 중 하나가 백혈병이다. 그만큼 치료하기 힘들고 어려운 병이기 때문. 가족 중에 백혈병 환자가 있다면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지 생각해보라. 그럴 때 누군가 도움이 되라고 전해주는 이 작은 헌혈증은 그들에게 큰힘을 준다. 세상에 아직 희망이 있고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헌혈증 한 장. 그것은 나의 피 500ml와 함께 나의 어깨를 함께 내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헌혈을 하는 데는 길어야 약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수혈을 필요로 하는 사람, 헌혈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간절함에 비하면 그 한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해병대 헌혈왕들의 100회를 넘는 헌혈은 단순히 백 번하고도 몇 번을 더 했다는 수적의미를 뛰어넘는다. 다른 이를 도왔다는 보람을 백 번하고도 두 번을 더 느꼈다는 뜻이며, 누군가에게 준 희망과 위안이 백 번하고도 두 번이 넘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헌혈을 계속할 것이다. 그들이 헌혈을 하는 이유는 100번, 200번, 300번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사랑을 실천할 뿐이고, 우리가 그 사랑의 실천에 숫자를 매겼을 뿐이다.
어떤가. 당신도 사랑을 실천할 준비가 되었는가. <해병대지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