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병대(?)와 앵무새같이 사과하는 사단장
오늘의 해병들 간에 와전되어 있는 '개병대의 어휘의 유래'에 대한 해병대 원로 선배의 증언을 여기에 수록하니 그 유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올바른 '개병대'의 의미를 오늘의 해병들은 이해하기 바란다.
사단장 취임 후 나는 전쟁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2만여 명이 넘게 훌쩍 커 버린 해병의 군수품과 군기관리였다. 무엇보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부대가 있는데다가 거친 기질을 가진 해병들이다 보니 서울을 자주 드나들면서 저지르는 수많은 사고 때문에 해병대 수뇌부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사고로 해병이 육이오 전쟁 때 쌓아놓은 빛나는 전공마저 하루 아침에 몰락되는 형국이었다.
처음에는 해병의 눈부신 전공을 기억하며 눈 감아 주었던 시민들도 점차 심해지는 해병의 안하무인적인 거친 행동에 눈살을 찦푸렸고 사단장실은 해병들이 저지른 사고 때문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전화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이에 나는 "절대 재발 없이 하겠다"를 앵무새같이 외우며 고개 숙이고 사과하며 다녀야만 했고, 나중에는 '해병들 행패 때문에 못 살겠다. 해병대가 아니고 개병대다'라며 시민은 물론 경찰까지 그 원성이 자자했다. 그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김대식 사단장 시절, 손원일 극방장관은 해병대 사단장에게 지시해 1개월 동안 전 해병들의 서울 외출을 금지시킨 적도 있었다.
나의 사단잔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외출을 금지시키는데도 대원들은 어떻게든지 빠져나가 서울에서 사고를 저지르곤 했다. 당시 서울의 유명한 깡패들도 해병대가 싸움을 걸면 피해 갔으며, 일단 싸움이 붙으면 어디에서 모이는지 해병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유감 없는 전우애(?)를 발휘하여 경찰은 물론 육군 헌병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해병대 헌병이 가야 겨우 진압되곤 했다.
출처: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전 국방장관 김성은 회고록 519-20면 2008.5.15 발간)
oldmarine (예. 해병대령 이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