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엔 김태평만 있었다… 배우 현빈 해병부대 배치 들떴던 백령도는 지금

by 운영자 posted May 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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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팔 할은 남자다.

 

지난 17일 오전 8시50분. 인천 항동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마린브릿지호를 타고 4시간 30여분 만에 도착한 백령도. 용기포 선착

 장엔 무뚝뚝한 헌병이 서 있었고, 무표정한 중년 남성은 여행객을 맞았다. 배에서 내리는 해병, 장교와 급하게 몇 마디 섞는 주민 몇 명. 100m쯤 걸어가니 ‘현빈 백령도에 오신 것을 전 옹진군민이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한 대의 트럭과 한 대의 봉고에 눌려 울고 있었다. 사곶냉면집에서도, 진촌리 미용실에서도 손님이라곤 표정 없는 사내들뿐이다. 하긴 섬 인구 1만 여 명 중 절반이 군인이고, 나머지 절반 중 2762명(3월31일 기준 옹진군청 집계)이 남자니까.

그곳에 어릴 적부터 꿈이 ‘경찰특공대’였다는 한 남자가 들어갔다. 군 입대 전 어느 인터뷰에서 “전 잘 안 울어요”라고 말했던 그 남자. 백령도에 들어오면서는 끝내 눈물을 보였지만, 3주차 그날엔 상륙돌격형 머리를 팔각모로 감추고 빨간 명찰을 단 품이 남자다웠다.

 

김태평 이병

 

키: 184㎝. 몸무게: 74㎏. 나이: 만 29세. 소속: 백령도 해병 6여단 흑룡부대 00대대 IBS(상륙용 고무보트)대대.

김 이병은 지난해 해병대에 자원해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137기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720여명 동기생 중 최고령자다. 민간인 시절 쓰던 예명은 현빈. 자원입대한 순간부터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화제를 뿌린 그 남자가 백령도에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수원 사령부에서 홍보병으로 발령 내려다 특혜 어쩌구 말이 많았잖아. 그래서 최전방 백령도에 보낸 거지. 원랜 수색대에 넣으려 했다고. 수색대는 특수부대야. 결국은 상륙용 고무보트 대대에 배치했지만. 거기도 무지하게 힘들 거야.”(백령도 군 관계자)

상륙용 고무보트 대대.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안보 총서 ‘대한민국 해병대, 그 치명적 매력’에 따르면 ‘8월의 뙤약볕 아래서 한없이 반복되는 PT체조는 기본이고 100㎏이 넘는 고무보트를 여섯 명이 들거나 이고 갯벌과 진창과 언덕과 물속을 종횡무진 누빈다’는 대대다. 모터까지 146㎏인 고무보트를 타고 소리 없이 적진을 침투한다고 해서 기습특공대라고도 부른다.

그러고 보니 김 이병의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주민이 없다. 콩돌해안(천연기념물 392호)가 식당 주인 박 아주머니(62) 왈. “현빈이 오면 뭐해. 꼼짝 못하게 하는데.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고 다니지도 않아. 태평이 좀 데리고 나와 대민 지원도 하고 막걸리고 좀 먹이고 사진도 찍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사령부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김태평이기에 그렇다. 평범한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군의 정책”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그 친구를 특별히 홍보할 계획은 없다. 말 한마디 하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되서 부담”이라며 말을 끊었다. 언론도 통제 중이다. 한국정책방송(KTV)과 KBS 2TV ‘다큐3일’은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고서야 현빈을 찍을 수 있었다. 그것도 훈병시절이기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침묵할수록 관심은 커지게 마련이다. 관광객도, 말 수 적은 주민들도 한마디씩 건네는 말이 김 이병의 안부다.

 

현빈 효과

 

덕분에 전쟁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지난달만 해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섬을 감돌았다. 남포1리 장세견(51) 이장이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다 말고 맺혔던 울화를 풀어냈다. “아, 다른 건 모르겠고, 불안감 좀 조성 안했으면 좋겠어. 어업 하는 사람이 바다에 나가질 못해. 붙을 거면 한 방 붙든가. 계속 포사격 한다고 하면 되겠어? 그리고 얼마 전에는 대북전단 뿌리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껍적거리더라고. 그때 북한에서 조준사격 한다 그랬잖아. 그래서 난리가 났고, 결국 못하고 돌아갔지.”

천안함 폭침에 이은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백령도는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은 수시로 지하 방공호로 대피해야 했다.

백령도는 떠 있는 ‘불침 전함’이다. 남북이 서로 비수를 겨누는 그 지점. 인천에서 191.4㎞ 떨어져 있는 그 땅은 북한 황해남도 장여군에선 불과 10㎞ 거리에 있다. 대한민국이 종전국가가 아닌 휴전국가임을 365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 게다가 하필 고립되기 좋은 섬이다. 기상이 나쁘면 여객선 운항이 중단된다.

“그러니까 인간방패막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살아봐야 안다니까. ‘박통(박정희 대통령)’때는 서해 5도에서 주민들 살아주는 것만도 고맙다고 했었다니까.” 주민 장모(50)씨의 얘기다.

백령도에서 중학교 2년생이 된 소년에겐 M16 소총이 지급됐다. 중3이 되면 사격훈련이 시작됐다. “해병대 여단 사격장에 가서 전반에 20발, 후반기에 20발 쏘고 왔다니까.”

그 소년은 청년이 되어 고향을 지키겠다며 해병대에 입대했다. 백령도 남자들이 걸어온 길이 그랬다. 어쩌면 목숨 걸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만약 연평도에 떨어질 포탄이 백령도에 떨어졌으면 민간 피해는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인구수도 연평도의 3배인데다 주민의 절반이 어업에 종사하는 연평도와 달리 농업, 상업인구 종사자가 각각 43%와 46%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섬을 지키겠다며 현빈이, 그것도 나이 서른에 들어왔다. 늦은 저녁 용기포 한 횟집에서 흘러나온 취객의 말. “현빈이가 왔으니 외국인 관광객도 오고 그럼 참 좋겠어. 그러면 (북한이)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현빈=돈?

 

백령도 경기는 내리막길이다.

옹진군청에 따르면 백령도 관광객 수는 2009년 7만5983명에서 지난해 6만174명으로 줄었고, 올 들어 4월까지는 1만4021명으로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천안함 침몰에 이은 연평도 포격이 결정타였다. 두무진에서 유람선 관광소를 운영하는 정세윤(64)씨. “작년 천안함 때부터 (경기가) 죽었지요. 과거에는 노상 배를 못 띄워보진 않았어요. 올해는 어떻게 하다 한 번 띄우네.”

부동산 거래도 전무하다. 진촌6리 삼성공인중개사 장원형(68)씨는 업소 문을 아예 걸어 잠갔다. 논농사 중에 전화를 받은 장씨는 “백령도에 땅을 사면 잘못될까봐 아무도 안 사요. 천안함 전엔 거래가 좀 됐는데 그 뒤론 매매가 전혀 안 돼요”라며 속상해했다. 백령도 논은 평당 1만5000원선, 밭은 2만∼3만원이면 살 수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나마 기댈 데는 농사뿐인데 벼멸구 피해를 입어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바다 농사도 신통찮다. 장촌포구에서 까나리를 다듬던 김길녀(64)씨는 “지금 까나리 철인데 양도 너무 적고 업자들이 힘들어요. 시작한 지 20일 됐는데 양이 적네”라며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지역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니 정부에서 대책을 내놨다. ‘서해5도지원특별법’ 및 시행령에 따라 지난 3월부터 정주생활지원금을 주기 시작한 것. 6개월 이상 거주민에게 주는 지원금이다.

“그게 뭐예요? 사탕이나 사 먹고 말라 이거예요? 우린 돈 5만원 필요 없어요. 이 섬을 지키고 먹고 살수 있게끔 조건을 만들어 줘야죠.” 길 택시 변동길(53)씨, 진촌6리 이장 오명식(51)씨의 푸념이다.

안보도, 경기도 바닥을 찍을 때 현빈이 온 것이다. 급한 나머지 인천시가 현빈 관광 상품을 내놨다. 지난달 중국 인바운드(중국 관광객 대상) 여행사 화방관광과 백령도 투어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반응은 없다. 이형근 화방관광 이사는 “(문의가) 제로예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상품을 없앨 계획은 없다. 좀 두고 보겠다는 입장이다.

주민들도 특수를 기대하는 눈치다. 선착장의 현빈 환영 현수막을 걷지 않는 이유도 혹시나 해서다. 현빈의 이름을 딴 여행사를 만들어볼까 생각하는 주민도 있고, 관광객이 몰려올 때를 대비해 현빈 브로마이드를 사 달라 부탁하는 상점 주인도 있다. 노래방 업소의 한 아가씨는 “내년쯤 되면 (군에서도) 좀 놔주겠죠?”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해안가 상인들은 아예 장담했다. “여름에 IBS부대에서 해안가 훈련을 내내 한단 말예요. 그때 무조건 볼 수 있거든. 보세요. 관광객도 올 거라고요.”

마침 일본 KNTV에서 지난 14일부터 ‘시크릿가든’을 방영하기 시작했으니 잘하면 상인들의 예상이 들어맞을 수도 있겠다. 관광객이 늘면 섬 수입도 늘고 북한군도 부담을 느껴 일석이조라는 주민들. 김 이병 덕에 백령도는 모처럼 ‘수다꽃’을 피웠다.

 

김태평을 봤다

 

김태평 이병의 부대(남포2리) 앞을 세 번 오갔다. 김 이병이 온 뒤로 이 부대 근처에선 사진도 못 찍는다고 했다. ‘안보교육현장’이라 적힌 여행사 버스가 지나갔다. 국정원의 안보관광 차량. 백령도엔 수시로 국정원에서 초청한 인사들이 안보 투어를 다녀간다고 마을 주민이 귀띔해 줬다.

18일 오전 11시쯤, 부대 앞엔 헌병만 보초를 서고 있었다. 화단을 정리하는 해병 몇이 보일 뿐 인적이 드물었다.

그때였다. 부대 인근 능선을 군홧발로 뛰어가는 붉은 무리들. 차를 타고 따라가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김 이병이 무리 중 한 명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기에.

분명 김태평 이병이었다. 백령도의 해무도, 배 멀미도, 아궁이 같던 여관 온돌방도 생각나지 않았다. 고백건대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빨간 티셔츠에 군복 바지를 입고 성큼 뛰어가는 사나이.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령도=글·사진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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