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해병 4기 동기, 두 아들도 해병 / 2010.08.31 14:18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훈련받다가 몽둥이로 맞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 한 사람만 잘못해도 전체기합을 받으며 툭하면 몽둥이로 맞았지."
'제주해병의 날'을 하루 앞둔 31일 군번 '91092'인 해병 4기 강인숙(75.여.제주시 오라동)씨는 6.25한국전쟁 발발 직후 진해에서의 고된 훈련병 시절을 떠올리며 이같이 회상했다.
강씨는 60년 전 오늘 제주항 산지부두에서 상륙함인 LST를 타고 진해로 출발했다. 당시 16세였던 그는 대정여자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라를 구한다'는 충성심으로 자원했던 그와 동료 여자 해병들은 LST를 타고 가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다는 생각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해병대 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제주에서만 3천명의 병력이 필요했지만, 지원자가 부족하자 여학생들도 입대를 시켰다.
당시 해병 3기와 4기 2천938명 중 95%가 제주도 출신이었고, 강씨를 포함한 첫 번째 여자 해병은 모두 126명이다.
남자 해병들은 진해 해군통제부에서 일주일 정도 훈련을 받고 곧바로 전장으로 배치되기도 했지만, 강씨와 같은 나이 어린 해병들은 40일간 남자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
그는 "지금은 군인들이 식탁에서 밥을 먹지만 그때는 바닥에 앉아 있으면 밥 한 그릇과 콩나물국 한 사발을 줬다"며 "어쩌다 재수 좋은 날은 고추장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뒤쪽에 앉은 사람은 맛을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고된 훈련을 받던 중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병력이 충원되자 강씨처럼 나이 어린 여자 해병 40여명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해병과 강씨의 인연은 얼마 후 해병대 출신인 남편 허익호(작고)씨를 만나면서 계속됐다.
고향에 돌아와 학교를 마친 그는 2년 정도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6.25 전쟁이 끝나고 제대한 뒤 대정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허씨를 만나 1954년에 결혼했다.
알고 보니 허씨는 1950년 늦여름 자신과 함께 LST를 타고 갔던 해병 동기였다. 허씨도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 도솔산 전투 등에 참전했다가 병장으로 제대했다.
남편은 결혼 뒤 대정읍장을 지내다 다시 공무원 시험을 치러 사무관까지 달았지만 1994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씨 부부는 2남 2녀 중 두 아들이 모두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해병과의 인연은 또 이어졌다. 장남 허명우씨는 해병 292기이고, 차남 태훈씨는 413기다.
서울에서 살다 부친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태훈(51)씨는 "우리가 군대 갈 때는 해병대 징집이 대부분이었다"며 "어머니가 해병 4기라는 것을 제대하고 나서야 알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병대와의 질긴 인연에도 강씨는 2년 전에야 6.25 참전유공자로 인정됐다. 세월이 흘러 군번을 잘 기억하고 있지 못하던 강씨의 자료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강씨는 진해 해군통제부에 불이 나 서류가 모두 불타 없어져 병무청과 해병대사령부, 해군통제부 등에 수소문한 끝에 입대한 지 50년 만인 2000년에 군번을 찾았다.
군번은 찾았지만, 이번엔 참전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 8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보훈처에 참전을 증명하는 사진도 보내고 진정도 하며 백방으로 노력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4년이 지나서야 참전유공자가 됐다.
강씨는 "군번을 찾고 참전유공자가 되어야 부부 해병으로서 남편 앞에 떳떳할 것이란 생각에 힘겹게 기록들을 뒤졌다"며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손자들도 지금 고교 2학년, 3학년인데 해병대에 지원하겠다고 한다"고 말해 3대째 해병 가족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는 남편과 같은 떳떳한 6.25 참전유공자로서 9월 1일 열리는 '제주 해병대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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