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병대가 아니었다면 이 전략적 요충지를 수중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극찬이 쏟아진 전투. `무적해병'의 칭호를 얻음으로써 대한민국 해병대의 위상을 드높인 도솔산 전투는 해병대 5대 작전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1951년 6월 4일부터 20일까지 17일 동안 격전의 현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강복구(당시 중위·제1해병연대 3대대 9중대장) 예비역 해병대 대령으로부터 그날의 전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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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구(맨 오른쪽) 예비역 해병대 대령이 지난 18일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도솔산지구전투 위령제에 참석해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1951년 봄. 6·25전쟁의 전선(戰線)은 38선 근처로 다시 되돌아왔어요. 지루한 지구전과 고지쟁탈전이 계속됐죠. 6월 2일 정도로 기억하는데, 국군 1해병연대는 미 1해병사단 예비 전력으로 배속돼 홍천에서 부대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 1해병사단이 북한군 12사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많은 피해를 입자 사단장은 우리 연대를 5해병연대 관할 지역에 투입하고 대암산∼도솔산 지역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강 중위는 6월 3일 다시 전선에 투입됐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미 해병대가 못한 일을 우리가 기필코 해냄으로써 한국 해병의 기개를 보여 주자. 끝까지 인내하고 감투하는 자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라는 김대식(예비역 해병대 중장·당시 대령) 연대장의 훈시와 함께 도솔산지구 전투가 시작됐다.

 항공기와 포병 화력의 지원 아래 2개 대대 병력이 광치령 일대에서 병진(竝進)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워낙 험난한 지형이라 아군이 은폐·엄폐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해병대원들은 유일한 통로인 비좁은 능선을 따라 전진했다.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해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한 적의 주력은 김일성으로부터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북한군 12사단과 32사단이었어요. 방어진지에 틀어박혀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바람에 별다른 소득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음날에는 3개 대대가 병진 공격을 폈죠. 저도 9중대를 이끌고 참가했습니다.”

 김윤근(예비역 해병대 중장·당시 중령) 3대대장은 9중대와 11중대에 13목표 점령을 명령했다. 훨씬 북단에 있는 고지를 차지하면 다른 목표도 쉽게 점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1중대가 정면 공격을, 강 중위의 9중대가 우회 공격을 맡았다.

 “8일 새벽 5시쯤 공격대기 지점에 도착했는데, 강풍이 불고 안개가 자욱했어요. 포병의 화력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기상이었죠. 더군다나 복통 환자가 많이 생겨 정말 난감했어요. 그때 병사의 사기가 저하되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게 생각났어요.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적이 도망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1소대, 2소대 너희들 정말 잘한다고 격려도 했죠.”

 중대원들은 조금씩 전진해 나갔다. 적과의 거리가 불과 80야드(약 73m)로 좁혀졌다. 그러던 중 앞 대열에서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여러 명의 대원이 쓰러졌다. 9중대 3소대장 김학렬 소위가 중상을 입고, 2소대장 김문성 소위가 전사했다. 적의 자동화기는 계속 불을 뿜었고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죠. 중대원들의 전진을 중지시키고 적 기관총 사수의 연속사격 간격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약 2초 정도의 간격이 있더군요.”

 강 중위는 적의 기관총이 멈추는 2초 동안 일제히 전진한 뒤 은폐·엄폐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수류탄 투척 가능선까지 전진했다. 중대원들은 30여 개의 수류탄을 적 기관총 진지에 투척했다. 적의 기관총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적이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죽기를 각오하면 안 되는 일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하지만 이 전투에서 소대장과 7명의 병사가 전사했어요. 내가 더 훌륭한 지휘관이었다면….” 노장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김대식 연대장은 13목표를 점령하자 적이 예상치 못하는 야간공격으로 적의 숨통을 끊기로 결심했다. 6월 11일 새벽 2시. 국군 1해병연대 용사들은 야음을 틈타 돌격작전을 감행, 적진 근처까지 진격했다.

 “적군은 유엔군의 항공지원을 받지 못하는 국군이 공격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국군의 야간공격에 당황해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어요.”

 국군 1해병연대는 이렇게 해서 1단계 작전에서 공격목표 1~16을 점령했다. 이어 6월 13일부터 전개한 2단계 작전에서 공격목표 17~24를 차례로 탈환, 도솔산과 대우산으로 연결되는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한군 2개 사단을 격퇴하고 교착 상태에 빠진 전선의 활로를 개척했다. 이로써 17일 동안의 혈전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1해병연대는 미 해병대가 고전하던 작전 지역을 인수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특히 누구도 엄두 내지 못한 야간작전을 과감히 감행하는 월등한 작전 능력도 보여줬습니다. 저는 해병대원이었다는 게 그 어떤 무공훈장보다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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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구 예비역 해병대 대령은

 1924년 3월 19일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해군 징병1기로 입대했다. 이어 8·15 광복과 함께 귀국한 그는 해방병단에 입단, 중사 계급으로 창설기의 해병대로 전입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50년 7월 해병대 간부후보생 2기로 소위로 임관한 뒤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수복작전, 도솔산지구 전투는 물론 베트남 전쟁까지 참전한 해병대 전사의 산증인이다. 특히 51년 9월 ‘김일성 고지’를 사수한 일화는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다. 71년 3월 26일 대령으로 명예롭게 군문을 나선 뒤 해병대 발전에 이바지해 온 그는 2002년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는 최초로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총재에 선출됐다. 을지무공훈장 2개, 충무무공훈장 3개, 화랑무공훈장 2개 등 18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국방일보 윤병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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