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서 한·미 해병대의 공훈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에 위치한 '한·미 해병참전비'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우리 해병과 미 해병의 넋을 추모하고, 함께 싸우다가 희생된 한·미 해병대원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4년 해병대사령부에서 한국전쟁 주둔지역에 참전비를 건립하였다.
구 참전비는 그 규모가 왜소하고 통일로 확장에 따라 도로변에 너무 근접되고 부분적으로 균열 파손되어 해군본부에서 원래의 비명 및 비문을 되새겨 같은 지역에 재 건립되었다고 한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하여 그때의 슬픈 초연의 생각을 되씹을 때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분들을 자주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이 새삼 부끄럽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14.6%로 달했다고 했다. 예전의 반공교육처럼은 아니겠지만 6.25전쟁의 그 참혹한 희생과 어려운 시기를 함께했던 그때 그 시절을 우리가 사는 세대에서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통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과 포용·협력하는 자세의 확립 등이 비록 작은 일이지만 통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분들에 대한 도리일 것 같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하나임을 기억합니다!
통일의 길목 파주에 산지도 10년 넘게 살았지만 이 도로를 지나면서 무심코 지나간 곳이 이렇게 의미 있는 참전비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 조용하게 우두커니 서 있는 한·미 해병참전비를 보니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한·미 해병 참전비
"이 작은 돌에 새겨진 글은 6.25 동란 중 한·미 양국 해병대와 목숨을 같이하여 싸운 역전의 기록이다. 이들 싸움터의 고지와 능선에 빗발치듯 수많은 포탄으로 암석이 가루가 되고 지면이 낮아지며 산형이 바뀌는 피아공방, 그 싸움의 참상은 이른바 죽음의 산더미로서 피의 바다를 이루었으니 아! 장하도다, 조국수호의 영령으로 산화한 젊은 해병 용사들이 이땅을 지켰도다. 더욱이 한국 해병대와 운명을 같이하여 싸운 미 해병들이 1955년 3월 14일 이 땅에서 철수할 때까지 제반 악조건하에 신출귀몰하듯 닥치는대로 쳐부신 그 영웅적인 전투는 귀신잡는해병대란 용맹을 얻었도다. 이 전무후무한 자유수호의 공을 세운 미국 해병들의 이름은 한국 해병대의 공훈과 더불어 청사에 길이 빛나
리라. 그렇다, 이 싸움터에서 젊은 넋으로 산화한 한·미 해병들의 혁혁한 충혼은 산천과 더불어 자유조국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이땅을 지키리니 고히 잠든 이들 영현들의 명복을 빌며 우리 겨례로 하여금 그 공훈을 기리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전승기록을 옛 싸움터에 비를 세워 남기노라."
작은 돌에 쓰여 있는 글로 고마움을 다 할 수는 없지만, 글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숙연함이 밀려왔다. 잠시 눈을 감고, 묵념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대신했다.
참전비 좌, 우로 해병대의 상징이 용맹한 독수리가 지키고 있다. 빛나는 눈동자, 굳게 다문 입, 칼날 같은 팔각모, 빨간 명찰 등, 해병대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무적해병', '귀신 잡는 해병',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그만큼 단결과 의리 그리고 용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한·미 해병을 의리와 정의로 지켜주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용맹함이 느껴졌다.
예전엔 반공을 앞세운 이념교육을 배웠지만, 지금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반전과 함께 우리 민족 모두에게 평화의 메시지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6.25전쟁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지, 전쟁에 목숨을 다 바친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지... 여러가지 생각이 물음표로 다가온다.
호국의 달 6월~ 이달 만큼이라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을 우리 가슴에 새기고, 고마움을 되새겨 보아야겠다.
《한미 해병배 참전비》
◆ 위 치 : 경기도 파주시 조링브 봉일천리 산8
◆ 건립일자 : 1983.9.28(최초 건립 1964.4.15)
◆ 규 모 : 경내면적 300평, 기단높이 1m, 비 높이 12m
◆ 건립기관 : 해군본부
◆ 건립취지 : 6.25동란에 참전한 한미 해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이 이룩한 공훈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건립함.
《약사문》
한·미 해병대는 한국동란중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수도 서울 탈환의 대위업을 완수하고, 중동부 전선에서 도솔산지구 전투, 펀치볼 작전의 일환으로 실시된 김일성(924)고지 전투 등 수많은 연합작전을 수행하면서 무적 해병의 위용을 전세계에 떨치면서 1951년 7월 휴전회담 개최 당시 피아간 보다 유리한 지역확보를 위하여 수도권 방위에 역점을 두고 전선이 재조정됨으로써 한국 해병대 제1전투단과 미 해병대 제1사단이 1952년 3월 중동부 전선에서 이곳 서부전선의 좌일선으로 이동, 현 지역 일대에 미 해병대 제1사단이, 장단지역에 한국 해병대 제1전투단이 배치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시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 장단(사천강)지구 전투에서 4차례 걸친 중공군 대공세와 벙커힐 전투 및 고량포지구 전투 등에서 최후 발악적인 적의 공격을 맞아 치열한 격전을 수행하면서 수도 서울을 방어하고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였다. 휴전 이후 미 해병대 제1사단은 1955년 3월 14일 작전지역을 한국 해병대 제1상륙사단에게 인계하고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한국전쟁에서 한·미 해병대의 공훈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