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홈경기에 가면 언제나 500~2000여명의 해병대가 있다. 이들은 스틸야드 본부석 맞은편 2층에서 열렬한 응원과 함께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운다. 오랜 병영 생활에 지친 해병대에게 포항 축구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활력소다.
이런 해병대를 열광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관중들 앞에서 춤추며 응원하는 치어리더들은 아니다. 바로 포항의 13번 수비수 김원일이다. 해병대는 경기 중간중간 '플레이 플레이 김원일'을 외친다. 이들이 김원일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해병 1037기이기 때문이다.
김원일은 K-리그에서 몇 되지 않는 '막군' 출신 선수다. 막군이란 상무나 경찰청 등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병사가 아닌 일반 병사를 일컫는 축구계 은어다. 김원일이 해병대를 선택한 것은 군대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숭실대 재학중이던 김원일은 2007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당시에는 자신의 실력으로 실업무대만 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에 배치됐다. 그곳에서 김원일은 병사의 신분으로 스틸야드를 찾았다. 2007년 포항의 K-리그 우승과 2008년 FA컵 우승을 지켜보며 축구에 대한 꿈을 이어나갔다. 군복무를 하면서 틈틈이 축구도 했다. 해병대 대표 선수로 나섰다. 2008년에는 군내 축구 대항전인 2008년 군대스리가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군복무를 마쳐가던 2008년 말년 휴가를 나온 김원일은 숭실대 연습장으로 향했다. 윤성효 감독이 있었다. 윤 감독 아래에서 다시 훈련에 매진했다. 재기에 성공한 2009년 겨울 열린 2010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다시 포항과 인연을 맺었다. 포항이 김원일을 지명했다. 해병대로 구경갔던 스틸야드를 선수로 서게 됐다.
김원일은 중앙 수비수와 측면 수비수 모두 설 수 있다. 2010년에는 13경기에 나왔다. 올 시즌에는 더욱 발전했다. 벌써 16경기에 나왔다. 3월 16일 성남과의 컵대회에서는 김태수의 추가골을 도우며 프로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빠른 스피드와 영리한 수비력으로 부동의 주전 김형일을 위협하고 있다. 6일 부산과의 K-리그 20라운드에서 김형일을 밀어내고 중앙수비수로 선발출전했다. 김원일은 경기 시작 전 해병대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출전을 신고했다. 전반 38분 자신들의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미끄러지는 실수로 임상협이 기록한 추격골의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안정적인 수비력을 선보였다. 풀타임을 소화한 김원일은 팀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김원일을 자신을 응원해준 해병대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해병대도 김원일을 바라보며 열렬한 환호로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해병대로 하나되는 순간이었다.
스포츠조선 포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3월 16일 성남과의 경기가 끝난 뒤 김원일이 해병대 장병 앞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 포항스틸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