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 대대장님 - 해병대CD中에서
하교214기 이동원
긴 훈련소 생활 6개월을 마치고 실무부대에 처음 왔을때우리 부대는 난리가 났었다.
1992년 0월, 000지역으로 상륙기습훈련을 위해 해상이동을 하던 0중대가 소용돌이를 만나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소용돌이에 휩쓸린 해병대원 2명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것 이었다.
그러던중 나는 육상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훈련장에 필요한 목재를 미군부대에서 싫고 60 트럭에 싫고 이동중이었다.
뒤에타고 있던 나는 위에 싫어놓은 커다란 나무판자가 가로수에 걸려서 나의 척추를 후려침으로서 나는 나뒹굴었고 하반신 마비가 된채 엠들런스에 실려 포항병원에 실려갔다.
사고가 겹친 당시 대대장님은 얼마나 죽을 맛 이었겠는가 ? 대원 2명이 훈련중 사망했으니.....당신은 군인으로서의 꿈은 이미 물건너 가 버린 것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대장님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포항병원에서도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것이다. 나는 하사인 내게 반말 지껄이를 하는 해군 위생병놈을 재털이로 후려갈겨 중환자실에 집어넣어 버렸던 것이었다. 해군 군의관과 간호장교는 나에게 어떻게 환자가 자기를 돌보는 사람을 치느냐 넌 깨진 재털이로 때렸으니 살인미수다라고 이야기 하며 사건의 자초지정은 듣지 않고 무조건 자기들이 무지하게 싫어하는 해병을 일방적으로 몰아부쳤다.
생각해보라.
군대에서 상병놈이 하사에게 반말을 할수 있는가를.....(그것도 해군이 해병한테, 그런꼴 당하고 가만있을 해병이 어디있단 말인가.. 육군하사라면 참고, 군법으로 했겠지만 말이다..)결국 포항병원에는 우리부대 간부들이 찾아왔고 그와중에 모두들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잘했다고 했다. 그리고틑 대대장님까지 찾아오셨는데 대대장님은 훈련중 죽은 사병의 장례식에
참석하셨다가 나의 사고소식을 듣고 놀란 모습으로 달려오신 것이었다.
대대장님은 대위인 하급자군의관들에게 존대말을 해가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대대장님께 나는 너무 죄송했다.
하늘같은 해병 대대장이 저런 새파란 군의관에게 저러다니 너무도 죄송했다.
그리고 대대장님은 내게 다가오셨다. 나는 경례를 하고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신임하사지만 그 상황에선 고개를 수그리고 말할수 밖에 없었다. 대대장님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그러셨다.
이녀석아 너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아니 너도 알잖아 대원들 두명 죽은거..처음엔 내게 하소연을 하셨다. 화도 내지 않으시고.....그러면서 곧 말투를 바꾸셨다.
그래 몸은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됐어 내가 너래두 그럴수 밖에 없었을거다.
네가 그 해군녀석에게 맞았더라면 아마 난 더 실의에 빠졌을꺼야.. 됐어
몸조리 잘해..
그렇게 말씀하시곤 자리를 떠나셨다.
왠지 돌아서서 가시는 대대장님의 어깨가 쓸쓸해 보이셨다. 그리고 포항병원에서 쫏겨나다 시피 대대로 돌와온 후 난 신임하사답게 매일같이 집합당하고 맞고 몰래 숨어서 울고 짭밥많은 대원들과 가끔씩은 트러블도 일으키며 하루 하루 힘겹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대대장님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았다. 대대 어디서든지 대대장님과 스칠때면 대대장님은 그냥 스치는 법이 없었다.
이동원이 요즘은 안싸우나?
이동원이 잘지내....어머니한테 전화는 잘오나?
항상 쫄병신임하사인 내게 관심을 가져주셨다.훈련때면 찝차타고 지나가시다가 사병들 밥먹는거 보면 차에서 나오시면서 병사들에게 다가오셔서 대원들의 숟가락을 뺏어 함구속의 밥을 드시던 대대장님.
대원들이 자기들 밥 뺏어 먹는다고 미워하는 대원이 없었다.
대대장님의 마음을 알기에 그렇게 항상 친근하신 분이셨다.
대원들은 대대장님! 이거 한번 드셔보십시요!
하며 서로의 함구를 내밀었고.. 나역시 마찬가지 였었다.
그뒤로 다시한번 구타사고가 나서 신임하사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대대장님의 군인으로서의 찬란한 꿈은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내마음속에는 대대장님의 미소가 남아있다. 워낙의 다혈질이신 분이라 3주간의 긴 티에스훈련끝에
복귀하여 연병장에 정렬한 대원들이 지친몸을 추스리느라 풀어져 혼란스러울때 옆에 찬 권총을 빼내어들며 정신 안 차리는 놈은 쏴죽여 버릴거야...전시에는 명령을 어기면 곧바로 사형이야!
아직 훈련 안 끝났어 그래서 그분을 미워하는 간부들과 대원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도 대대장님의 미소를 잊을수가
없다. 그 따뜻한 미소를..... 힘들던 신임하사관시절 고참병, 선배하사관, 장교들에게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미소를 대대장님께 받고 견뎌내었다. 고급지휘관들은 모르는 분이 많다.자기들의 위치에서 각개 병사에게 주는 잠깐의 미소가 얼마나 따뜻함을 전하는줄을..... 해사출신이신 박호철 대대장님보고싶습니다!!
필승!
박호철 대대장님의 연락처나 근황을 알고 계신분 있으시면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비역해병하사 이동원
2010.05.16 21:03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대대장님
조회 수 18198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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