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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해병대, 축구, 불교를 빼놓는다면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해병대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시절에도, 대한민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가수가 된 후에도 아무런 직함이나 보수 없이 해병대 홍보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자랑스러운 해병인임을 자부하며 살고 있지만 입대 당시만 해도 사실 나는 해병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입대 전인 1980년 무렵, 나는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는 무명 가수였다. 나이가 찼으니 군대를 가야 할텐데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중 해병대 얘기를 듣게 됐다. 그 무렵 육군의 복무기간은 36개월이었는데 해병대는 30개월 정도만 복무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저 복무기간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겁도 없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하지만 해병대의 뜨거운 맛은 입영열차 안에서부터 맛볼 수 있었다. 눈을 깜빡이지도, 눈알을 굴리지도, 숨을 쉬지도 못하게 만드는 통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해병대원으로서 `악'을 키우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해병 401기로 입대해 `해병중의 해병'임을 자부하는 포항 1사단 72대대 7중대 3소대원으로서 겪었던 고된 훈련과정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해병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나는 군 복무중 팀 스피리트 훈련에 세번 참가했다. 그 당시 우리 해병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본 미군 관계자가 “한국 해병이 적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최강의 해병으로 거듭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이겨내야 했다. 나와 우리 전우들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전투력 제고를 위해 효율적인 휴식 또한 반드시 필요한 것. 나는 군에서도 끼를 주체하지 못해 입대전 음악활동을 했던 전우들을 모아 연예대를 만들었다. 빠듯한 훈련일정 중에도 짬을 내 연습을 했고 여가시간마다 PX 한쪽 구석에 자리를 마련해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음악활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선배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많은 전우들이 호응해 주었다. 이를 통해 해병의 사기를 높였다는 생각에 지금도 그때 내가 했던 일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노래 못지 않게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던 나는 응원단장으로도 맹활약했다. 부대별 체육대회 때면 늘 부대 대표로 나가 응원을 하곤 했는데, 그때의 모든 활동이 나중에 가수활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음은 두말 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하여튼 나는 30개월 남짓한 해병대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났다. 해병대에서 배운 것은 오직 `해병정신'뿐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10년 이상의 무명가수 시절을 나는 해병정신으로 버텨냈고, 지금도 매니저 없이 가요계의 독립군 가수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해병대, 넓게는 군대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교포들이나 직장인, 학생들이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해서 해병대 훈련캠프를 찾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번칠이·번숙이(우리 아들 동현이와 딸 주현이의 애칭)를 해병대에 보내 해병인의 길을 걷게 할 생각이다.
후배들이여! 해병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군에서 인생의 밑거름이 될 해병정신을 배우라.
〈가수 김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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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닉 2012.09.05 18:54

    모든 해병이 그렇듯이 정말 열정이 불타오르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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