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사령부 재창설.jpg

해병대사령부 재창설(1987. 11. 1)

 

73년 10월 10일에 해체를 당했던 해병대 사령부가 6.29 민주화 선언이 있었던 그 해11월 1일 부로 재창설이 된 것은 5공화국 말기에 단행한 그 민주화선언이 가져다 준 우연의 선물은 결코 아니었다.

10.26사태로 무너진 유신독재정권을 거쳐 신군부의 집권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역대 제2참모차장과 해병참모부에서는 사령부의 재창설을 위해 남모르는 궁리와 연구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을 위해 군복을 벗을 각오를 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은 제7대 해군본부 제2참모차장 성병문 중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휘권을 행사할 수가 없어 전력관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그는 전력 관리상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다음과 같은 7가지 불합리한 요소를 척출하여 그것을 지면에 정리했다.

전문성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제기될수 밖에 없는 제반 문제점을 조목 조목 지적한 것 외에 전시 군수지원 체계상의 중대한 문제점. 통합이 초래한 혼성편성으로 인한 비능률. 고위계급의 축소로 인해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진급 확률의 극소화로 인한 자질의 저하와 저능력의 심화.기술군과 체력군의 불구분으로 인한 교육 훈련의 약화 현상. 전통과 사명감의 상실과 사기의 저하. 근무 장소가 다름으로 해서 초래되는 진급심사 등 인사관리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내용의 부리핑 자료가 정리되자 성병문 제2참모차장은 그것을 해병참모부 기획처장 김기홍 대령에게 건네주며 극비리에 10부를 인쇄해 오라고 했고, 지시를 받은 김처장은 마치 역적이 된 것 같은 두려운 마음으로 해군본부 인쇄소에서 종사하고 있는 5명의 해병대 출신 인쇄공들에게 퇴근시간 후 은밀히 부탁하여 인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쇄된 유인물을 건네 받을 때 성병문 중장은 만약에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인쇄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지겠다고 말한 다음 10부 중 1부를 김처장에게 주며 굳은 표정으로 "세월이 흐른 후 역사의 증인이 돼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편 그렇게 하여 브리핑 자료를 마련했던 성병문 장군은 불편한 관계에 있는 해군본부의 동의 없이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접근하기가 어려운 군부의 실세들, 이를 테면 보안사령관과 함창의장 국방부장관 등의 군부요인을 보안 유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끈덕진 노력 끝에 차례로 배방하여 인쇄물 에 적힌 그 문제점들을 브리핑을 통해 조목 조목 설득력있게 설명함으로써 해병대 사령부가 없어선 안 되겠다는 필요성을 공감하게 했고,지성이면 감천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한 끝에 성병문 중장은 자신의 제2참모차장 임기를 1개월 앞둔 86년 8월 전두환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인 이기백 국방장관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해병대 사령부를 재창설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합참의장으로 있을 때부터 여러 차례 성병문 장군의 공식적인 방문을 받았고, 또 성 장군의 브리핑에 공감을 했다고 말하는 전 국방장관 이기백 장군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대통령에게 진언을 할 때 해병대 사령부를 재창설 하게 되면 대선 때 해병대의 현역과 예비역을 합쳐서 100만표는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곁들이긴 했지만 본시 기질에 포용력과 결단력이 있는 전두환 대통령이 그 시기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자신의 임기 중 전투역량을 최대한 강화하여 전쟁공포로부터 국민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그렇게 하여 국방부와 합참의 관련부서에서는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으나 다음과 같은 일로 인해 상당기간 지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박구일 중장이 제2참모차장으로 취임 한 후 해군본부에서는 합참의 지시에 따라 신편될 사령부 지휘체제 안을 복수로 작성하여 해병참모부에서 만든 1개 안과 함께 합참을 제출햇고, 합참 작전국에서는 합참에서 작성한 1개 안과 해군본부의 1개 안 및 해병참모부에서
만든 1개 안을 합참전략회의에 회부한 결과 해병참모부 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됨에 따라 그 안을 국방부 군무회의에 회부하게 되었는데, 그때 각 군의 작전 책임부서장이 전원 참석했던 그 전략회의에 참석하여 해병참모부 안을 직접 설명했던 당시의 해병참모부차장 박태복 예비역 준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정만길 소장이 해병참모부안이 가장 합리적이고 예산도 안들고 해병들의 사기도 진작 할 수 있는 안이라고 말하면서 "딴 것 볼 것 없다"는 식으로 해병참모부 안을 적극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무회의에 회부된 그 안건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진 알 수가
없으나 최상화 해군총장의 임기 중에는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가
10대 총장 김종호 대장이 추임한후 해결 됨으로써 13대 대통령 선거일을 45일 앞둔 87년 11월 1일, 그러니까 87년 7월 14일 이기백 국방장관의 뒤를 이은 정호용 장관이 취임한 지 109일만에 해병대 사령부의 역사적인 재창설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해병대 사령부 재창설 계획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거론이 된 신사령부의 명칭과 관련된 비화이다. 당시 해군 본부에서는 신 사령부의 명칭을 (1)해군상륙군사령부 (2)해군해병사령부 (3)해군해병상륙군사령부 등 3가지로 정하여 그 중의 하나를 택하게 할 계획이었으나 그 안건이 합참 전략회의 석상에서 거론될 때 의견제시를 요구받은 박구일 중장이 해군본부에서 제시해 놓은 3가지 명칭이
다 좋은 명칭이지만 '해병'이라고 하면 개개인을 뜻하지 조직체가 아니므로 '해병대'로 표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공감을 불러 일으켜 합참에서는 '해군 해병대 사령부'로 단일화 하여 장관 결재에 회부하자 정호용 국방장관은 해병대의 전통과 해병대 장병들의 사기를 고려해서 옛날 명칭 대로 '해병대 사령부'로 고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재가를 받던 날 마지막 브리핑을 했던 박구일 제2참모차장은 브리핑이 끝난 후 "좋았어!"하며 흔쾌히 결재서류에 서명을 한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세가지 특별 지시를 받고 두 눈에 눈물이 핑 돌만큼 감격했다고 한다.

첫째 공부를 많이 하여 상륙작전의 전략을 개발하라. 둘째 김포에 주둔하는 2사단을 2년마다 교체하여 상륙전훈련을 시켜라. 그렇게 하지 않는 다면 육군과 같은 지상군 부대가 되고 말 것이다. 셋째 해병대 대원들이 싸움박질을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해라. 적과 싸울 때 용감하게 싸워야 되지 않겠는가.

이상이 그 세가지 지시사항이었고, 이 지시사항을 전장병에게 교육을 통해 철저히 주지시키라고 했다고 하니 잔인하게 머리와 팔 다리를 죄다 잘라 없애 버리고 몸통만 남겨 놓은 박정희 대통령의 처사에 비한다면 참으로 감읍할 일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박구일 장군은 그로부터 1주일 후 국방부에서 개최된 전군 지휘관회의 석상에서 국방부의 브리핑이 끝난 후의 건의사항 시간에 정호용 장관이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을때 얼마나 그 일을 고맙게 여기고
있었던지 "요새 170만의 현역과 예비역 해병가족들은 매일 청와대를 향해 큰 절을 올리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전두환 대통령을 위시한 전 군의
지휘관이 참석해 있는 그 자리를 폭소의 도가니로 화하게 했다고 하며,
2차장으로 취임한 후 약 1년 간 불철주야로 노심초사했던 박구일 장군은
그가 사령관으로 취임한 후 그 3가지 지시사항을 브리핑 차트에 정리하여 40일 간에 걸친 예하부대 초도순시 때 철저한 교육으로 주지시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덧붙여 둘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공정식 장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즉 '해병대'라는 명칭을 되찾아 준 정호용 전 국방장관이 너무 고마워서 만약에 이번 국회의원 선거 때 정 장군이 대구에서 출마를 하게 되면 대구로 내려가서 인사도 하고 격려도 할 작정이라고 했는데, 만약에 그 때 정 장관이 '해병대'란 명칭을 되찾아 주지 않고 해군본부에서 정해 놓은 그 세가지 명칭 중의 하나를 택했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듯 필시 기쁨도 반감되고 신명도 반감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사령부가 재창설된 날짜는 87년 11월 1일 이었다. 해병대가 수난을 당한 73년 10월 1일 그 날로부터 14년 1개월 9일 만에 우리 해병가족들은 몽매지간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해병대'란 그 이름과 '해병대 사령부'란 그 명칭을 소리 내어 불러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1. No Image

    해병대에 오면 좋아지는 것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ㅇ 또 이색적인 질문의 하나로 입대 전 여자친구가 있었던 64%의 장병들 가운데 53%가 입대 후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헤어진 시기를 분석해 본 결과 갓 입대한 훈련병이나 이병 때가 43%로 1위를 차지, 장병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시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병이 35%, 상병과 병...
    Date2010.05.17 By운영자 Views3414
    Read More
  2. 해병대출신 연예인 및 해병대출신 유명인사들

    현빈이 해병대를 입대한 후에 해병대출신의 연예인과 관련된 기사를 많이 접할수 있었다. 이미 해병닷컴을 통해 해병대출신의 연예인과 유명인사에 대한 글을 정리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추가를 했지만 오래전의 게시물인 관계로 이번기회를 통해 다시하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오래전 모프로그램에 탤랜트 김상중氏가 출연해...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00999
    Read More
  3. 사령부재창설을 맞이한 박구일중장

    각군 작전 책임 부서장이 총원 참석한 가운데 재 창설될 해병대 사령부 명칭을 정하기 위한 합참 전략 회의에 참석한 박구일 중장은 합참에서 마련한 1개 안(해군 상륙군 사령부)과. 해군본부에서 낸 1개 안(해군 해병사령부)및 해병참모부 에서 낸 1개 안(해군 해병 상륙군 사령부)등 3개의 안중 1개의 안을 선정하는 과정...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4228
    Read More
  4. 35기소위들의 김해공군기지 습격사건

    66년 8월 8일에 발생했던 이른바 해병학교 사관 35기 기초반 장교들의 김해 공군기지 습격사건의 진상을 공개한다. 사건의발단은 이러했다. 즉 주말인 8월 6일 부산에서 외박을 한 전도봉(全道奉) 소위를 비롯한 7명의 해병학교(35기) 기초반 소위들이 승차한 부산발 진해행 시외버스가 구포다리 건너 첫 번째 정류장에 정차...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6595
    Read More
  5. No Image

    해병제1공병중대의 현리 난동사건'65년 2월 5일

    사진은 월남 정글속에서 해병 공병중대원들 주월한국군사원조단으로 창설된 비둘기부대(건설공병단)는 각 부대에서 실시한 기본교육 외에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서 현지(월남)작전을 가상한 약 2주 간의 종합야외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그 야외훈련이종료된 날 부대본부에서는 부대장 조문환(曺文煥) 준장의 특별한 배려로 육...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7374
    Read More
  6. No Image

    강화도의 육군특무대 난입사건(54년 4월)

    중순경 어느날 전등사(傳燈事)에서 베풀어지고 있던 강화지구 육군특무대장(김 모소령)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던 해병 강화부대(2연대 산하 독립14중대)장 석태진(石泰鎭)대위는 HID와 켈로부대를 비롯한 상당수의 기관장들이 초청이 된 그 파티 석상에서 그의 비위를 거스리게 한 특무대장 김 소령과 약간의 말다툼을 벌였는...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8269
    Read More
  7. No Image

    1983년 광주 상무대에서 만났던 해병대소위들에게

    1983년 광주 상무대에서 만났던 해병대소위들에게 - 해병대CD中에서 어이 해병대 친구들! 나를 기억하겠나? 나는 18년 전인 1983년 당시 상무대 전투병과학교에서 자네들 ROTC출신 해병대 신임소위들을 위탁교육을 하던 육군교관 이준재다! 정말 반갑다! 정말 오랫만에 자네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구만. 자네들과 헤어진지 ...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5739
    Read More
  8. 해병대사령부 재창설비화

    해병대사령부 재창설(1987. 11. 1) 73년 10월 10일에 해체를 당했던 해병대 사령부가 6.29 민주화 선언이 있었던 그 해11월 1일 부로 재창설이 된 것은 5공화국 말기에 단행한 그 민주화선언이 가져다 준 우연의 선물은 결코 아니었다. 10.26사태로 무너진 유신독재정권을 거쳐 신군부의 집권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역...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5114
    Read More
  9. 1973년 국군의날 행사장에서의 불행한 사고

    73년 10월 1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건군25주년 국군의 날 행사는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를 목전에 두고 있던 해병대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착찹한 심정을 금치 못하게 한 행사였다. 그 때 이미 약 400명의 전역 희망장교 중 약 300명은 9월 10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전역을 하고 그 나머지는 9월 30일과 10월 10일(이병문 사...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7139
    Read More
  10. 해병대해체의 교훈

    1973년7월초 해병대 사령부에서 "지휘관 회의"가 있었다. 1973년도 전반기 부대업무 실적보고 회의이다. 이때 나는 해병 도서경비부대장으로서 이 "지휘관 회의"에 참석했다. 이 "지휘관 회의"는 이병문 사령관의 임기가 6월 말로 끝나게 돼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사유로 중임이 된 후의 첫 "지휘관 회의"이다. 부사령관의 언...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3129
    Read More
  11. 516과 해병대2여단 - 한강도하

    - 한강도하 - (1) 혁명거사 목전에서 30사단의 배신, 그로 인한 혁명계획의 탄로, 혁명의 시간은 이미 접어들었건만 지금까지 출동한 혁명군은 어디에도 없다. 어쩐지 꼬여가는 듯한 상황에 박정희 소장의 가슴에는 불현듯 외로움과 착잡함이 한순간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 그러나 한밤중의 김포가도, 저기 저곳에 수백개의...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8546
    Read More
  12. 516 혁명군 해병대, 516과 해병대

    516 혁명군 해병대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발간된 박학래 님의 5.16 비사, ‘신의와 배신’ 이란 책 속에서 오로지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건져내기 위하여 구국의 일념 하나로 주사위를 던진 우리 해병대가 직접 관계되는 줄거리만을 발췌하여 요약·정리한 내용입니다.> (1) 4.19의거, 학생의 흘린 피는 아무 보람...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6650
    Read More
  13. 김인식 前감독 - 나의 해병대

    투수 절정기때 해병대 입대 ㆍ 1947년 서울 출생 ㆍ 배문고 졸업 ㆍ 한일은행 투수, 배문고 ·상문고 · 동국대 감독, 쌍방울 레이더스 · OB 베어스 감독 역임 ㆍ 2001년 골드 스포츠 프로야구 대상 프로감독상 수상 1967년 해병대에 입대할 당시 나는 그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4977
    Read More
  14. 내인생의 스승 `해병대'

    내 인생에서 해병대, 축구, 불교를 빼놓는다면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해병대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시절에도, 대한민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가수가 된 후에도 아무런 직함이나 보수 없이 해병대 홍보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앞으로도 ...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4871
    Read More
  15. No Image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대대장님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 대대장님 - 해병대CD中에서 하교214기 이동원 긴 훈련소 생활 6개월을 마치고 실무부대에 처음 왔을때우리 부대는 난리가 났었다. 1992년 0월, 000지역으로 상륙기습훈련을 위해 해상이동을 하던 0중대가 소용돌이를 만나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소용돌이에 휩쓸린 해병대원 2명이 파도에 휩...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818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Next
/ 2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