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순경 어느날 전등사(傳燈事)에서 베풀어지고 있던 강화지구 육군특무대장(김 모소령)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던 해병 강화부대(2연대 산하 독립14중대)장 석태진(石泰鎭)대위는 HID와 켈로부대를 비롯한 상당수의 기관장들이 초청이 된 그 파티 석상에서 그의 비위를 거스리게 한 특무대장 김 소령과 약간의 말다툼을 벌였는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소속부대(14중대)의 당직사관과 소대장 등이 특무대와 특무대장의 집에 난입(亂入)하여 난동(亂動)을 부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의 개요는 대충 이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그 파티 석상에서 특무대장 김 소령이 육사 9기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은 해병대 장교들(해간1기)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내가 그 사람들과 동기생이니 이제부터 자네라고 부르겠네하고 아랫사람 취급을 하자 그 말에 비위가 거슬렸던 석태진 대위가 위수사령관이 누군데…하는 생각을하며 김소령!하고 말문을 연 것이 발단이 되어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말다툼이 벌어졌던 것인데, 문제는 기분이 언짢아 파티장 밖으로 나온 석태진 대위를
따라 나온 3~4명의 특무대 대원들(문관)이 석 대위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목격한 석 대위의 운전병이 부대로 돌아온 후 당직사관에게 보고를 함으로써 평소 특무대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당직사관 김중위(통역장교)가 소대장들을 불러 모아 특무대장의 사과를 받을 대책을 논의한 끝에 먼저 강화경찰서에 있는 대외통신용 교환대를 점거하여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조치한 다음 지프차를 타고 특무대를 습격했는데, 그 결과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즉 특무대 청사로 난입하여 특무대장을 나오라고 소리치자 겁에 질린 대장은 월장을 했고, 월장을 한 그는 그 담장 밑에서 불쑥 권총을 들이대며 손을 들라고 한 해병대 장교에게 일격을 가하고 달아나고 말았는데, 일이 그렇게 되자 일부 장교들은 그 길로 텅 비어있는 특무대장 집으로 가서 방안에 있는 외제 생활용품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것으로 감정풀이를 했고, 특무대에서 특무대장 보좌관을 꿇어 앉혀 놓고 있던 일부 장교들은 그 보좌관을 부대본부로 연행하여 부대장(석태진 대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여 특무대장을 대신해서 사과를 하게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리고 상황의 종료로 강화경찰서의 대외통신용 교환대의 기능이 회복되었을 때 서해지구에 대한 첩보활동을 관장하고 있던 미공군의 니코라이 대위는 상황판단을 잘못하여 해병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상부에 보고를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육군부대와 충돌을 했던 그 강화부대 장교들의 난동사건은 휴전 후의 군부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손원일(孫元一) 국방장관이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여 각 군 간의 충돌사건이 발생할 시에는 엄중하게 지휘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의 육군특무대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김창룡(金昌龍) 장군이었는데, 육군특무부대에서 그러한 변을 당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 사건은 헌병총사령부의 조사가 끝난 후 금촌(金村)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제1여단 본부에서 열린 고등군법회의에서 관련자들을 처벌함으로써 매듭을 지었는데, 그 결과는 주동자로 지목된 당직사관 김 모 중위는 파면처분을 받았고, 소대장 3명은 근신처분, 강화부대장 석태진 대위는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 장군이 그 당시 국방부에 파견되어 있던 김동하(金東河) 준장에게 석태진 대위를 빨갱이라고 말하면서 파면을 시키라고 압력을 넣었는데도 불구하고 3개월 간의 정직처분을 받았다.

그가 그러한 처벌을 받게 된 것은 운전병 강 모 일병과 난동을 부린 장교들이 헌총 조사관(김상근 대위)으로부터 진술을 받을 때 부대장 모르게 저지른 일이라고 진술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 난동사건은 다음과 같은 훗일담을 남기고 있다.즉 석 대위가 그러한 처벌을 받게 되자 여단본부 인사참모 함덕창(咸悳昌) 소령은 석 대위를 위로하면서 정직처분을 받게 되면 급료의 3분의 2를 몰수하게 돼 있었는데도 전액을 다 주겠다고 약속했을 뿐 아니라 서울로 가서 쉬고 올 수 있도록 파커 다섯벌과 매월 쌀 한가마니씩을 지급해 주었고, 3개월 간의 정직기간이 끝난 후에는 그의 동기생들(해간 3기)은 소총중대의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러한 시기에 4.2인치 중박격포중대장으로 발령을 받는 등 파격적인 배려를 입었다.

그리고 그가 일선근무를 마치고 해병교육단의 상륙전 초등군사반에 입교했을 때는 그의 명성을 전해듣고 있던 교수부의 모 채점관이 "죄송합니다만, 이름만 써 놓으시면 알아서 채점을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대우와는 달리 그는, 결국 그 정직처분으로 진급이 늦어지는 바람에 61년 군사정변이 일어난 직후 소령의 계급으로 예편을 했다.
고희를 넘어선 나이에 필자의 취재에 응해 준 왕년의 강화부대장(독립14중대장) 석태진씨는 그 일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부덕(不德)했던 자신의 탓으로 부하장교들에게 그러한 누를 끼치게 된 것을 늘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다고 했다.[끝]

 

자료출처 ; 해병대의 전통과 비화


  1. No Image

    해병대에 오면 좋아지는 것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ㅇ 또 이색적인 질문의 하나로 입대 전 여자친구가 있었던 64%의 장병들 가운데 53%가 입대 후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헤어진 시기를 분석해 본 결과 갓 입대한 훈련병이나 이병 때가 43%로 1위를 차지, 장병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시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병이 35%, 상병과 병...
    Date2010.05.17 By운영자 Views3381
    Read More
  2. 해병대출신 연예인 및 해병대출신 유명인사들

    현빈이 해병대를 입대한 후에 해병대출신의 연예인과 관련된 기사를 많이 접할수 있었다. 이미 해병닷컴을 통해 해병대출신의 연예인과 유명인사에 대한 글을 정리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추가를 했지만 오래전의 게시물인 관계로 이번기회를 통해 다시하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오래전 모프로그램에 탤랜트 김상중氏가 출연해...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00580
    Read More
  3. 사령부재창설을 맞이한 박구일중장

    각군 작전 책임 부서장이 총원 참석한 가운데 재 창설될 해병대 사령부 명칭을 정하기 위한 합참 전략 회의에 참석한 박구일 중장은 합참에서 마련한 1개 안(해군 상륙군 사령부)과. 해군본부에서 낸 1개 안(해군 해병사령부)및 해병참모부 에서 낸 1개 안(해군 해병 상륙군 사령부)등 3개의 안중 1개의 안을 선정하는 과정...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4186
    Read More
  4. 35기소위들의 김해공군기지 습격사건

    66년 8월 8일에 발생했던 이른바 해병학교 사관 35기 기초반 장교들의 김해 공군기지 습격사건의 진상을 공개한다. 사건의발단은 이러했다. 즉 주말인 8월 6일 부산에서 외박을 한 전도봉(全道奉) 소위를 비롯한 7명의 해병학교(35기) 기초반 소위들이 승차한 부산발 진해행 시외버스가 구포다리 건너 첫 번째 정류장에 정차...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6560
    Read More
  5. No Image

    해병제1공병중대의 현리 난동사건'65년 2월 5일

    사진은 월남 정글속에서 해병 공병중대원들 주월한국군사원조단으로 창설된 비둘기부대(건설공병단)는 각 부대에서 실시한 기본교육 외에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서 현지(월남)작전을 가상한 약 2주 간의 종합야외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그 야외훈련이종료된 날 부대본부에서는 부대장 조문환(曺文煥) 준장의 특별한 배려로 육...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7339
    Read More
  6. No Image

    강화도의 육군특무대 난입사건(54년 4월)

    중순경 어느날 전등사(傳燈事)에서 베풀어지고 있던 강화지구 육군특무대장(김 모소령)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던 해병 강화부대(2연대 산하 독립14중대)장 석태진(石泰鎭)대위는 HID와 켈로부대를 비롯한 상당수의 기관장들이 초청이 된 그 파티 석상에서 그의 비위를 거스리게 한 특무대장 김 소령과 약간의 말다툼을 벌였는...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8234
    Read More
  7. No Image

    1983년 광주 상무대에서 만났던 해병대소위들에게

    1983년 광주 상무대에서 만났던 해병대소위들에게 - 해병대CD中에서 어이 해병대 친구들! 나를 기억하겠나? 나는 18년 전인 1983년 당시 상무대 전투병과학교에서 자네들 ROTC출신 해병대 신임소위들을 위탁교육을 하던 육군교관 이준재다! 정말 반갑다! 정말 오랫만에 자네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구만. 자네들과 헤어진지 ...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5713
    Read More
  8. 해병대사령부 재창설비화

    해병대사령부 재창설(1987. 11. 1) 73년 10월 10일에 해체를 당했던 해병대 사령부가 6.29 민주화 선언이 있었던 그 해11월 1일 부로 재창설이 된 것은 5공화국 말기에 단행한 그 민주화선언이 가져다 준 우연의 선물은 결코 아니었다. 10.26사태로 무너진 유신독재정권을 거쳐 신군부의 집권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역...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5040
    Read More
  9. 1973년 국군의날 행사장에서의 불행한 사고

    73년 10월 1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건군25주년 국군의 날 행사는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를 목전에 두고 있던 해병대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착찹한 심정을 금치 못하게 한 행사였다. 그 때 이미 약 400명의 전역 희망장교 중 약 300명은 9월 10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전역을 하고 그 나머지는 9월 30일과 10월 10일(이병문 사...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7084
    Read More
  10. 해병대해체의 교훈

    1973년7월초 해병대 사령부에서 "지휘관 회의"가 있었다. 1973년도 전반기 부대업무 실적보고 회의이다. 이때 나는 해병 도서경비부대장으로서 이 "지휘관 회의"에 참석했다. 이 "지휘관 회의"는 이병문 사령관의 임기가 6월 말로 끝나게 돼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사유로 중임이 된 후의 첫 "지휘관 회의"이다. 부사령관의 언...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3080
    Read More
  11. 516과 해병대2여단 - 한강도하

    - 한강도하 - (1) 혁명거사 목전에서 30사단의 배신, 그로 인한 혁명계획의 탄로, 혁명의 시간은 이미 접어들었건만 지금까지 출동한 혁명군은 어디에도 없다. 어쩐지 꼬여가는 듯한 상황에 박정희 소장의 가슴에는 불현듯 외로움과 착잡함이 한순간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 그러나 한밤중의 김포가도, 저기 저곳에 수백개의...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8495
    Read More
  12. 516 혁명군 해병대, 516과 해병대

    516 혁명군 해병대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발간된 박학래 님의 5.16 비사, ‘신의와 배신’ 이란 책 속에서 오로지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건져내기 위하여 구국의 일념 하나로 주사위를 던진 우리 해병대가 직접 관계되는 줄거리만을 발췌하여 요약·정리한 내용입니다.> (1) 4.19의거, 학생의 흘린 피는 아무 보람...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6577
    Read More
  13. 김인식 前감독 - 나의 해병대

    투수 절정기때 해병대 입대 ㆍ 1947년 서울 출생 ㆍ 배문고 졸업 ㆍ 한일은행 투수, 배문고 ·상문고 · 동국대 감독, 쌍방울 레이더스 · OB 베어스 감독 역임 ㆍ 2001년 골드 스포츠 프로야구 대상 프로감독상 수상 1967년 해병대에 입대할 당시 나는 그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4922
    Read More
  14. 내인생의 스승 `해병대'

    내 인생에서 해병대, 축구, 불교를 빼놓는다면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해병대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시절에도, 대한민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가수가 된 후에도 아무런 직함이나 보수 없이 해병대 홍보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앞으로도 ...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4820
    Read More
  15. No Image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대대장님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 대대장님 - 해병대CD中에서 하교214기 이동원 긴 훈련소 생활 6개월을 마치고 실무부대에 처음 왔을때우리 부대는 난리가 났었다. 1992년 0월, 000지역으로 상륙기습훈련을 위해 해상이동을 하던 0중대가 소용돌이를 만나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소용돌이에 휩쓸린 해병대원 2명이 파도에 휩...
    Date2010.05.16 By운영자 Views1812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Next
/ 2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