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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근(金潤根):만주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45년)
광복후 해사졸, 미국 해병대학졸, 연세대 경상대학원졸, 해병사 군수국장, 해병1상륙사 참모장, 수도방위 사령관, 5·16쿠데타 주역으로 국가재건 최고회의 교통체신 위원장·부정축재자 처리위원·헌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 해병제1여단장, 중장예편, 호비사장, 5·16민족상 이사, 향군회 부회장, 동화수산 회장, 서울컴퓨터센터 감사, 수개공 사장, 대서양개발 사장, 서해구(誓海俱) 총재, 이인표(李寅杓) 사회과학도서관 재단 이사장
수상:1등근무공로훈장, 중국운마훈장, 미은성훈장2개, 충무·을지무공훈장
저서:비화수기집 해병대와 5·16

 

박치옥 공수단장이 박정희 소장과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에 자주 들락 날락하는 점퍼 차림의 사나이가 있었다. 박치옥은 '남자가 웬 술시중 인가'하고 생각해 박 소장에게 물었다. 
 "내 조카사위 아닌가.". 
 이래서 박 대령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사람과 초대면을 했다. 김종필은 포섭한 장교들과 박정희가 직접 접촉하는 것을 제한했다. 그 자신이 주로 대구로 내려가서 처삼촌에게 보고하고 지침을 받아오곤 했다. 1961년 3월10일 김종필 중령은 옥창호 중령과 함께 대구로 내려갔다. 두 장교는 '육본 점령 계획, 수도권 부대 지휘관 포섭 계획'에 대한 지 침을 받고 올라왔다.
 
 
3월13일 강화도 남산장이란 음식점에선 세 해병장교들이 만나고 있 었다. 
 김포에 주둔하는 해병여단 소속 부연대장 조남철 중령, 대대장 오정근 중령, 인사참모 최용관 소령이 나누는 밀담은 '해병대 단독 쿠데타 계 획'이었다. 이들은 오는 4월1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특공대를 편성하는 한편, 군인들을 의식화하기 위하여 외부인사들을 초청하여 반공강연을 많이 갖기로 했다. 이들은 사회가 돌아가는 데 대한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무모한 쿠데타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때 해병여단장은 부임한지 한 달쯤 되는 김윤근 준장이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제6기로서 박정희 보다는 4년 후배였다. 그는 4·19후 이상한 악역을 맡은 적이 있었다.허 정 과도정부는 뚜렷한 이유 없이 김동하 해병소장을 예편시켰다. 3·15 선거 전에 박정희와 쿠데타를 모의했던 김동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김성은 해병대사령관은 행정참모부장이던 김윤근을 시켜 김동하로하여금 행정소송을 취하하도록 권해보라고 했다. 김동하는 만주군관학교 1기생 으로서 박정희보다 1년 선배였다. 말솜씨가 좋은 편이 아닌 김윤근 준장 은'귀찮을 정도로 자주 찾아가서 후배인 나의 난처한 입장을 동정해서 행정소송을 취하하도록 만드는' 작전을 폈다.
 
 자주 찾아가다가 보니 이 야기는 한담이나 방담으로 흘렀고 김동하는 과격한 우국충정을 토로하곤 했다. 군부가 나서서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김동하의 주 장에 대해서 김윤근은 '군부가 나서야 별로 뾰족한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선배의기분을 건드릴까봐 장단을 맞추어주곤 했 다고 한다. 김동하는 후배의 이런 태도를 쿠데타에 동조하는 것으로 이 해했다. 김동하 장군 집을 자주 찾아가던 김윤근은 그곳에서 박정희를 몇번 만났다. 그의 '우국방담'도 매우 과격했다. '군부가 나서서 썩어빠 진정당과 정치인들을 싹 쓸어버리고 정치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 다.
 
 1961년 1월 하순 김윤근은 김포 해병여단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후 임자에게 업무인계를 하고 있는데 김동하 장군이 집으로 와달라는 연락 을해왔다. 가 보니 박정희 2군 부사령관이 대구에서 올라와서 그를 기다 리고 있는게 아닌가. 박정희는 "여보, 김 장군 정말 축하합니다. 하늘이 우리 일을 도와주시는 겁니다. 김 장군만 믿소"라고 했다. 김윤근은 속으로 '허, 이거 일이 난감하게 되어가는구나'라고 생각했으나 그렇다고 '나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걸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답했고, 그러니 '하늘이 돕는 일에 찬동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수도권을 위협할 수 있는 김포에 주둔한 해병여단은 비록 연대규모 이긴 했지만 그 전략적 위치로 해서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도, 막을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김윤근 여단장이 부임한 지 한 달쯤 지난 3 월 중순 저녁에 인사참모 최용관 소령이 조남철, 오정근 중령을 안내하 여 여단장을 찾아왔다. 세 사람은 합세하여 우국충정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이 암담한 시국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군부가 구국차원에서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토로였다.
 
 김 여단장은 "정치 는 정치인에게 맡겨두어야 하고 군인은 국방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타일 러서 돌려보냈다. 약 1주일 후 세 사람은 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또 군부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여단장은 속으로는 동지가 나타난 것 이 기뻤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정색을 했다.
 
 "그런 말 하려거든 앞으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세 장교는 사과를 하고는 물러났다. 다음날 김윤근은 세 사람의 사람됨을 조사시켰다. 입이 무겁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란 평이었다.며 칠 뒤 세 사람은 다시 여단장을 찾아왔다. 이 무렵 우리 학생들은 판문 점에서 북한 학생들과 만나서 통일문제를 의논해보자고 나서고 있었다. 세사람은 이현상을 화제로 올리면서 학생들의 불장난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데 군부가 수수방관만 할 수 있느냐고 흥분했다.
 
 "도대체 군부가 나서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계획이라도 있으면 설명해 봐.".
 
 세 사람은 구상하고 있던 해병대 단독 쿠데타 계획을 설명했다. 해 병연대의 일부 병력을 끌고나가서 정부청사를 점령하고 요인들을 체포한 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뒤의 계획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새 정부 를 어떻게 구성하고 정치를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부분은 백지상태였다.
 
 "정부를 뒤엎은 후에 더 잘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면 공연히 혼란 만 일으키는 게 아닌가." "그러니 여단장님을 모시고 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김윤근 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정치를 잘 모르오.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지도자로 삼고 혁명 거사를 하자는 것이라면 함께 의논해봅시다. 우선 논의하기 전에 다짐받 을 것이있소. 혁명이란 대사를 논의할 땐 일신의 영달이라는 불순한 동기를 개재시키면 내분이 생겨 혁명은 실패해. 세 사람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맹세할 수 있는가.".
 
 세 사람은 "우리는 절대로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혁명을 하자는 것 이 아니다"라고 맹세하고 김윤근도 맹세했다. 그런 뒤 김윤근은 박정희 장군과 김동하 장군이 주동하여 혁명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오정근 중령의 대대를 거사부대로 지정했다.병력 보충이나 보급도 오정근의 부대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박정희는 공수단에 이어 해병여단을 포섭함으로써 쿠데타를 하는 데 적 합한 기동력을 확보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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