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5 14:26

요강파티 - 공정식

조회 수 54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6-3.jpg정식 인사발령도 없이 부임했던 김포 제1여단장 시절 잊을 수 없는 일은, 북한에 우리의 위력을 과시한 염하 상륙작전이었다.
5·16 두 달 뒤인 1961년 7월 최고회의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당시 한강 하구 루트로 무장 게릴라를 다수 침투시키던 북한에 경고성 시위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훈련 장소는 북한 개풍군과 연백군 일대에서 잘 관측되는 염하로 정했다. 강화도에서 한강 하구를 건너가 김포반도 문수산 기슭에 숨은 적을 섬멸하는 훈련이었다. 아직 강화도 연육교가 없던 시절이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을 비롯한 최고위원단, 라이언 미 육군1군단장, 김성은 해병대사령관 등이 임석했다. 미 1군단 헬기와 미 공군 근접항공지원 전투기들이 하늘을 날고, 바다와 뭍에서 해병용사들이 실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연대급 상륙작전으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준 것은 아직도 통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단장 생활 1년여 만인 62년 7월 31일 나는 해병1사단장으로 승진했다. 정든 김포를 떠나 포항으로 부임하기 전날 송별파티에서의 과음으로 나는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여단장 취임 때도 식을 갖지 못했으니 내 운명에 그렇게 적혀 있었나보다.

송별파티서 과음, 이취임식 불참

당시 김포여단에는 떠나는 사람에게 ‘요강파티’를 열어 주는 전통이 있었다. 요강파티란 문자 그대로 요강에 온갖 술을 쏟아 부어 만든 ‘핵 폭탄주’다. 그걸 다 마셔야 하는 것이다.미군 고문관들과 여단 참모, 예하 부대 지휘관 등 주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위스키·포도주·맥주·소주 등등 각자 취향대로 마시던 술을 꽃 요강에 가득 쏟아 부었다.

그걸 다 마시지 못하면 새로운 임지로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신 사기요강에 이임자의 이름을 써 넣어 여단장실에 진열해 놓는 것이 전통이었다. 전통의 유래는 어느 미군 수석고문관이 취해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타는 목을 축이려고 방안에 있던 요강을 마신 일이라던가.

그 시절 나는 술깨나 마신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술로는 지고 싶지 않은 치기가 작동한 데다 요강파티라는 말이 재미있어 그걸 받아 단숨에 다 마셨다. 기억이 분명치 않으나 그것이 몇 순배 돌았다고 한다.

미8군사령관 지시로 '요강파티' 없어져

아무리 술깨나 한다고 해도 그걸 당해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령을 부리지 못한 미욱함이 일을 내고 말았다. 대취해서 잠든 나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여단 비행장에는 내가 포항으로 타고 내려갈 경비행기 L-20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한낮이 돼서야 잠에서 깨어났다.포항에서는 난리가 났다.

고길훈 사단장 이임과 신임 공정식 사단장 취임을 겸한 행사여서 매그루더 후임 멜로이 주한 유엔군사령관 겸 미8군사령관, 김성은 해병대사령관, 이성호 해군참모총장 등이 열석한 가운데 취임식 없는 이임식으로 행사가 끝난 것이다.지금 돌이켜 보아도 큰 사건이었다. 내가 인사권자라도 과음으로 취임식에 나오지 못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 둘 수 있을까.

이 사고는 군 정보계통을 통해 박정희 의장에게 즉각 보고됐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니 엉거주춤하게 사단장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이 사고를 계기로 멜로이 미8군사령관은 수석고문관에게 특별지령을 내렸다. 앞으로는 어떤 경우도 요강파티를 금한다는 엄명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미 해병대 요강파티 전통이 사라졌다.

얼마 안 돼 국방부장관이 된 김성은 사령관에게서 들은 바로는, 그 일에 대해 박의장은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전대미문의 사고를 낸 1사단장 거취를 묻자, 박의장은 가볍게 “장관이 알아서 하시지요” 했다는 것이다. 그 일은 훗날 내가 박대통령 술벗으로 발탁된 계기이기도 했다. <공정식 前해병대사령관 정리=문창재언론인>


  1. 포니대령과 현봉학박사

    글 /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 10만여 명의 목숨을 구해낸 흥남철수작전의 두 영웅 포니대령과 현봉학 박사 미 해병대 포니 대령 에드워드 포니(Edward Forney) 대령은 57년 내가 사령부 참모부장이던 시절에 수석고문으로서 함께 일해 당시 인원(T/O)과 장비(T/E) 등 해병대의 기반을 수립했다. 내가 만난 포니 대령은 우리 ...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8549
    Read More
  2. 북도발 좌시해서는 안돼...공지기동 해병대 건설해야!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 지난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은 연평도 지역에 대한 무차별 해안포 사격으로 해병대에 대한 도발을 감행했다. 수백발의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졌고 연평도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연평도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던 해병대 고(故) 서정우 하사와 고(故) 문광욱 일병은 북한의 무...
    Date2010.12.04 By관리자 Views4112
    Read More
  3. 요강파티 - 공정식

    정식 인사발령도 없이 부임했던 김포 제1여단장 시절 잊을 수 없는 일은, 북한에 우리의 위력을 과시한 염하 상륙작전이었다. 5·16 두 달 뒤인 1961년 7월 최고회의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당시 한강 하구 루트로 무장 게릴라를 다수 침투시키던 북한에 경고성 시위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Date2010.09.05 By슈퍼맨 Views5437
    Read More
  4. 삭발중대 - 공정식

    장단지구전투 당시의 신현준 해병대사령관과 공정식 전투단 부단장, 김종식 제1대대장.(왼쪽부터) 해병대 1대대장을 두 차례 역임한 김종식 소령은 자신의 묘표(墓標)를 꽂아 두고 출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해병대 1대대장 발령을 받고 전선으로 떠나면서, 진해 장충단 묘지에 ‘고 해군소령 김종식의 묘’라는 팻말을 ...
    Date2010.09.02 By운영자 Views4293
    Read More
  5. 월남파병비화 - 공정식

    파병관련 미국 초청 받아 미국을 방문한 공정식 해병대사령관이 케네디 공항에서 미 해병대를 사열하고 있다(1965) 경북 포항에서 열린 해병대 청룡부대 출정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봉출 장군에게 부대기를 수여하고 있다(1965. 9. 20) 미국의 한국군 월남파병 요청이 보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린 미 해병대사...
    Date2010.09.02 By운영자 Views8654
    Read More
  6. 87고지 공방전 - 공정식

    2008년 8월31일자 국방일보기사 캡춰
    Date2010.08.10 By운영자 Views2437
    Read More
  7. 이승만대통령의 생일케익 - 공정식

    도솔산 작전을 마치고 우리 부대는 작전지역을 미 육군에게 넘겨 주고 홍천으로 이동했다. 부대를 재편성하고 무기와 장비를 보충하면서 다음 임무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대 시찰을 온다는 통보가 왔다. “도솔산의 영웅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서 우리들은 한껏 마음이 들떴다. 대통...
    Date2010.06.19 By운영자 Views566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