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 에코바이크 사무국장 / 오마이뉴스 변방의 게릴라 ③
기사출처 : 오마이뉴스 이주빈기자 http://www.ohmynews.com
지역이나 비주류 공간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변방의 게릴라' 기획을 통해 이들의 활동과 꿈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께 소개하는 세 번째 게릴라는 에코 바이크 김광훈 사무국장입니다. [편집자말] |
▲ 김광훈 사무국장은 "느림은 함께 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 |
ⓒ 이주빈 |
사람들마다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연상되어지는 생물이 있다. 내 경우엔 자전거를 바라볼 때 달팽이를 떠올린다. '느림'과 '쉼', '생각'이라는 동질의 요소를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고작 초속 0.24cm의 속도로 움직이는 달팽이에게 평균시속 14km로 달릴 수 있는 자전거는 미친 전차일 수 있다.
그러나 도심에서 자동차 제한 속도가 시속 60km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자전거 역시 느린 부족이 틀림없다. 치달리고 싶은 욕망이 달팽이와 자전거에게 내재돼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초 단위로 질주하는 세상에서 자전거와 달팽이는 턱없이 느린 속도로 사람들을 또 다른 사유의 세계로 태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광훈 에코바이크 사무국장을 만나러 가는 날은 흐렸다. 광주 운천저수지 인근에 있는 사무실, 그는 색상이 강한 자전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저도 평상복을 입고 싶죠. 하지만 색깔이 진한 자전거 복장을 입는 이유는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곤충으로 치면 이건 보호색이죠. 도심 시속이 60킬로미터예요. 그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들에게는 느린 것들은 보이지 않아요. 걷는 사람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자전거 탄 사람들...
어둠이 깔린 도로를 전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애인을 만난 적 있어요. 시속이 빠른 자동차들에 자칫 치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 말 없이 자전거를 타고 따라갔어요. 저는 깜빡이도 있고 옷도 화려하니까... 장애인 전동차에 비하면 자전거도 교통강자예요. 강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통속도가 빠르다는 지표는 거꾸로 가장 반환경적 지표가 높다는 것을 의미해요. 잘 닦여진 전용도로는 자동차, 자전거, 장애인전동차 등이 함께 공유하는 도로여야 해요. 제가 이토록 화려한 색상의 자전거 복장을 평상시에도 계속하는 까닭은 시속이 빠른 도시를 향한 나만의 항의 퍼포먼스입니다."
김 국장이 처음부터 자전거를 통한 생태교통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민언련) 사무국장을 맡아 '지역신문 개혁 전국 자전거 투어'는 자전거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만 5년을 활동한 광주환경연합에선 일과 자전거가 자연스럽게 접목되었다.
그리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 생태교통운동을 시작했다. 벌써 5년째,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방송도 엔지(NG) 없이 잘 하는데 안 되는 게 실천이란 말이 너무 싫고, 현장과 시민과는 멀어지면서 재정구조 튼실하게 하는 것이 시민운동인 것처럼 시민운동하기 싫어서" 새로운 시민운동을 택했다 한다.
해병대 입대→ 헤어 디자이너→ 전업 시민운동가
▲ 김광훈 국장은 "10년 동안 자전거 수송분담율을 2% 올리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목표"를 실천 중이다. | |
ⓒ 이주빈 |
뭐든지 경험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도 에코바이크 운동을 시작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해병대 가면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주위 말에 바로 자원입대했다.
제대 후 나이 스물일곱, 광주에 남성 헤어 디자이너가 채 7명이 안 되던 시절에 그는 미용기술을 배워 헤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전기공학 전공하다 해병대 입대한 것이야 '다 가는 군대, 기왕이면 폼 나게 가자'는 남자의 호기라 쳐도 해병대 다녀와서 헤어 디자이너가 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교편을 잡고 있던 장인이 '사내가 무슨 미용사냐'며 결혼을 반대했을 정도로 당시엔 헤어 디자이너는 금남의 직업이었어요. 그런데 제 성격이 그래요, 무슨 일이든 먼저 해보는 것을 좋아해요. 맨 먼저 하면 틀려도 욕은 안 먹거든요, 하하하.
그렇게 샵(미용실)에서 일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생활정보지에 민언련 언론학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난 거예요. 어려서부터 신문 스크랩을 유독 좋아했어요. 바로 등록해서 언론학교 수료했죠. 또 수강생 회장도 맡아 민언련 이런저런 일을 도와줬죠. 신문 원 없이 보고 스크랩 해줄 생각에 민언련 사무실에 날마다 출근했어요. 그렇게 1998년 민언련 사무국장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해서 99년부터 아예 일은 접고 전업 시민운동가로 나서기 시작했어요."
4년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 개도지 반대 운동, 지방일간지 개혁운동 등 언론운동의 최절정기에 실무책임자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남았다.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겁거든요. 즐거움을 느끼려면 활동가들이 내려놓아야 할 일이 많아요. 내가 그 일을 내려놓으면 다른 활동가들이 할 일이 생깁니다. 또 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소모적인 고민도 하지 않게 돼요. 자기가 슈퍼맨인 줄 알고 모든 걸 다하려 하면 함께 일할 동료가 없어지고, 새로운 길에 대한 들뜸이 없으면 즐겁지도 않고 직업화되어 가는 것이죠.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지만 지역발전과 활력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민운동이 더 많이 나와야 해요."
그렇게 스스로 새로움과 활력을 좇아 온 길이 자전거 생태교통운동이다. 그가 일하고 있는 단체 '에코 바이크'는 회원제다. 회원은 8월 현재 350명, 회비는 무조건 5000원이다. 더 많이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다. 한 명의 명망가, 재력가보다 100명의 개미군단이 함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코바이크는 독특하게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이들보다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이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서 스스로 회원으로 가입하게 유도하고 있다. 녹색교통 시대를 선도한다는 정부의 구호가 무색하게 도시엔 변변한 자전거 교육장 하나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그는 광주시의 한 장소를 이용해 교육을 시키고 있다. 심지어 교육용 자전거까지 그가 직접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운동? 거창한 거 아니에요... 속도 조금만 낮추면 함께 간다"
▲ 김 국장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많이 내는 것보단 속도를 낮춰 함께 가는 것을 주창한다. | |
ⓒ 이주빈 |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 까닭은 "자전거 소외계층인 주부나 노인, 어린이, 장애인은 내가 안 가르치면 배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렇게 한 달이면 주부 30명이 자전거 학교를 수료한다. 장애인들은 김 국장과 함께 15명씩 짝을 이뤄 1주일에 두 번 꼭 자전거를 탄다. 어린이 30명도 일주일에 한 번 그와 함께 자전거를 배우고, 10명의 노인도 일주일에 한번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탄다.
"환경운동이 거창한 거 아니에요. 지구온난화 극복하자, 에너지 절약하자 별 말을 다 하지만 걷기와 자전거가 수송의 1/3을 차지하니까 그 둘을 많이 이용하면 됩니다. 자전거를 타면 환경보호는 기본이에요. 그리고 느리게 가니까 자세히 볼 수 있어요. 도심을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리던 차의 속도를 10킬로미터만 낮춰도 더 멀리보고 더 많이 보게 되죠.
그러면 자전거도 갈 수 있고, 장애인 전동차도 함께 갈 수 있어요. 결국 느림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를 많이 만드는 방식에 대해 저는 부정적이에요. 그것은 함께 가는 방식이 아니에요. 분리하는 것이고 이기적인 방식이죠. 그럼 장애인 전동차는 어디서 어떻게 갑니까? 속도를 조금만 낮추면 모두 함께 갈 수 있어요."
그에겐 '아주 소박하지만 어려운 목표'가 있다. 2012년 현재 광주의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1.6%. "10년 동안 자전거의 교통분담률을 2% 올리는 것"이 김 국장이 품고 있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목표'다. 북유럽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교통분담률이 30%대인 것을 감안하면 그게 무슨 그리 어려운 일이냐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5년 한국의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3.7%였다. 약 2%가 더 떨어진 것이다. 그는 그것을 회복시켜 놓고 싶은 것이다. 김 국장은 "후배들에게 10년 뒤에 난 자전거 수송분담률 2% 올렸다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레저가 목적이든 건강이 목적이든 환경이 목적이든 어찌됐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의 꿈은 함께 살기를 꿈꾸는 우리 모두의 꿈이기 때문이다.
"제게 자전거는 재산목록 1호이자 영정사진으로라도 함께하고 싶은 존재예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저는 그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2006년에 대학생 108명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임진각까지 간 적이 있어요. 그때 한 후배가 제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잡았어요.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제 영정사진은 자전거 타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