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8 01:59

짜빈동전투 47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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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원배 (예)해병대 소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사무총장

 

[국방일보] 1967년 2월 14일, 그날따라 베트남의 밤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지휘자의 직관인지 본능인지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해 왔다. 14일은 공식적인 구정 휴전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23시가 조금 넘어서자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베트콩이 중대진지를 공격해 들어왔다. 우리 1소대 진지에도 수백 명의 적이 뛰어들었다. 적은 아군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순간 아! 전쟁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갔다. 

 

 1소대장이었던 나는 소대원을 지휘하며 적을 향해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적이 다가오자 한 병사가 뛰어나가더니 화염방사기 사수의 뒤통수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2분대장 이중재 하사였다. 10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7, 8명의 적군이 대전차유탄포와 로켓을 쏘아대는 것이 보였다. 2명의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적 진지는 금세 풍비박산이 났다. 이진 병장, 김용길 중사였다. 

 

 그렇게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백병전이 아침까지 계속됐다. 

 

 적 사살 243명, 포로 2명, 다수의 무기 노획, 적 1개 연대의 공격을 1개 중대의 병력이 막아내면서 대승을 거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고의 승전보, 짜빈동 전투의 신화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7년 전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도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 준 쾌거”라고 평가했다.

 

 당시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베트콩 지령문에는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해라.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이니 비무장한국군에게 함부로 덤비지 마라”고 돼 있었다.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은 일계급 특진됐다. 전 장병에게 무공훈장이 주어졌다. 대한민국의 훈·포상법이 제정된 이래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한다. 

 

 이제 47년 전 짜빈동 전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귀신 잡는 해병대의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6·25전쟁에서, 베트남전에서 우리 해병은 귀신 잡는 신화를 이어왔다. 오직 불굴의 전투정신만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쟁상황이 달라졌다. 맨손으로는 귀신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에 요구되는 국가전략기동군 해병대에게 최상의 무기와 최고의 장비가 주어져야 한다.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 전쟁을 예방하는 최상의 방책은 무엇인가? 총을 녹여서 낫을 만들어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전쟁은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만을 피해 간다. 결코 입으로 평화를 외치며 전쟁을 싫다고 말하는 사람을 피해 가는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국방개혁 2020은 차질 없이 최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안보에 큰 공백이 우려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보다 신중하게 재검토돼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 영웅들이 예우받아야 한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전사한 것보다 더 큰 희생이 어디 있는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전쟁 영웅보다 더 예우받아야 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6·25전쟁과 베트남전의 참전영웅들이 9만 원의 참전수당을 들고 파고다 공원을 배회하게 해서는 결코 나라의 백년대계를 기약할 수 없다. 

 

 

 살아남아 미안한 마음으로 짜빈동에서 전사한 15명의 전우들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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