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연소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래머” - 윤승철

by 운영자 posted Feb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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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1.JPG

<4 Desert>라는 대회가 있다. 미국의 <Racing the Planet>사가 운영하는 경기로 시사주간지 Time이 선정한 ‘세계 10대 극한경기’중 하나다. 6일간 250㎞의 거리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 장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Atacama Crossing),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중국의 고비 사막(Gobi March), 가장 뜨거운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Sahara Race), 가장 추운 남극(The Last Desert)이다. 이름대로 이 사막 4곳을 1년 안에 모두 달려야 한다. 그랜드슬램의 명예가 주어지는 이 기록은 전 세계에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여기에 당당히 최연소로 이름을 올린 한국인이 있다. 윤승철. 25세로 4대 극지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그는 1086기 해병이다. 사막을 달리는 사나이. 해병 윤승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천적 불편함, 후천적 아픔. 그런데 그게 뭐? 내 가슴이 뛰는데

“어릴 때는 정말 마구 뛰어놀던 개구장이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도 그랬죠. 역시나 학교에서 여기저기 뛰어놀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학교 유리가 바닥에 떨어져서 있었어요. 투명해서 그걸 미처 못봤죠. 미끄러져서 넘어졌는데 좀 심하게 다쳤어요. 발목이 완전 뒤로 돌아갔고, 정강이 뼈도 부러져버려서 대학 종합병원에서 4개월 정도 입원하게 됐습니다. 늘 누워만 있으니까 비만이 되어버리고, 다리는 부러지고 돌아가서 잘 쓰지도 못하고, 재활치료는 힘들고...거기다 제가 평발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습니다. 얼마나 신기한 평발인지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이 제 발로 연구논문을 쓰더라구요.” 




한꺼번에 닥친 상처는 윤승철군을 한없이 작고 또 작게 만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할 사춘기에 다리를 다쳐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살은 쪄서 비만이 되었고, 발은 평발이었다. 재활치료를 거쳐 조심조심 걸어다닐 정도로 회복은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작아진 그대로였다. 대학교에 입할 할 때까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못한다고 생각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발하던 한 학생은 그렇게 조용히 책을 읽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덕분에 글쓰기 좋아하는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적성을 따라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 과제가 있어서 글쓰는 소재를 찾고 있었습니다. 뉴스도 찾아보고 웹서핑도 하면서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만난거죠. 사막 마라톤이라는 것을요. 작열하는 태양아래 광활한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참가자 사진을 봤는데 가슴이 뛰는 겁니다. 오랫동안 죽어있던 내 가슴이 생동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소설 소재로 찾아보고 말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꼭. 반드시. 내가. 저기서 대자연과 함께 뛰어다니다 올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그 날로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서서히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은 3㎞를 걷는 것 부터였다. 축구와 같은 구기운동은 물론 오랜 시간 걷는 것 조차 하지 않은지 오래였다. 

“1년 정도 운동했더니 조금씩 몸이 돌아왔습니다. 10㎞정도는 천천히 뛰거나 걷는 것도 문제가 없게 되었죠. 1학년을 마치면서 이제 군 입대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제 선택은 해병대였습니다. 사막에 도전하기 전에 스스로의 한계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해병대에서 늠름하게 군생활을 마쳐낸다면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면의 나를 키워준 해병대, 그 정신으로 포기는 없다!!


해병대 군 생활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해병대 특성화 훈련, 제방사 증원, 해안경계 등의 임무를 아무 문제 없이 소화해 냈고, 건강하게 듬직한 해병이 되어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제 몸은 이미 예전부터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마음이 문제였죠. 안될 것이라는 생각,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없이 위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갇혀있던 제 마음을 깨어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 준 곳이 해병대입니다. 다양한 임무를 주면서 저를 성장시켜준 해병대가 없었다면 사막 마라톤으로의 도전은 아마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2012년 3월. 윤승철 군은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사막에 서게됐다. 드디어 이 곳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에 떨리던 가슴은 지금도 생생하단다. 탁 트인 지평선을 배경으로 신나게 뛰어다니는 자신을 상상하기를 3년. 바라던 사막을 달리게 되었고 또 성공해 냈지만 분명 그 4번의 6박 7일은 생사를 몇 번이고 넘나들었을 것이다.


“첫 대회 때였을 겁니다. 아타카마 사막을 달린지 3일째 되던 날이었는데 저 멀리서 사람형체가 보이더니 손을 흔드는 겁니다. 각자 페이스가 달라서 참가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3일차 되던 날 누군가를 저 멀리서 만난거죠. 저는 반가워서 손을 흔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저에게로 가까이 오는 겁니다. 50분이나 걸려서 저에게 와서는 제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자기와 같이 다시 코스로 들어가자는 겁니다. 아찔했습니다. 주최측에서 일정간격으로 깃발을 꽂아 코스를 표시하는데 처음 하는 대회다 보니 제 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자기 페이스를 포기하고 저를 구하러 온 외국인 선수 덕분에 저는 목숨도 구하고 대회도 완주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사막 주변에 동물 뼈들이 막 널브러져 있고 그랬는데.”




온갖 고난을 겪으며 대회를 준비하고 완주하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지금. 그 성취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다리를 다치고 움츠러 들었던 자신이 이제서야 허리를 다 펴고 제 모습을 찾을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토록 염원하던 사막 마라톤은 끝났다. 군대, 사막 마라톤, 베낭여행을 가면서 이제 대학 공부는 3학기를 마쳤다. 다른 동기나 친구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있는 지금, 뒤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없을까? 이제 무얼 할 것인지를 물어봤다.


“마라톤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쓰고 있습니다. 다행히 출판사와 계약이 되어서 4월 쯤 나올거 같습니다. 사실 지금 두 번의 큰 도전이 또 예약되어 있어서 그걸 준비하느라 두근두근합니다. 기회가 닿아서 네팔의 안나푸르나에 가게 됐구요, 올해 여름에는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진행하는 실크로드 체험단에 청년단장을 맡게 됐습니다. 사실 참 경험하기 힘들고 귀한 기회인데 저에게 자꾸 생기게 되니까 다행이다 싶고 감사합니다. 사회진출이 늦는 건은 살짝 걱정되지만, 20대잖아요. 많은 경험이 글 쓰는데도, 인생에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윤승철 군은 아직 자신의 최종목표를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고싶은게 너무 많아서다. 외국 교환학생도 가고 싶고, 소설도 쓰고싶고, 자신만의 사업도 하고싶다. 많은 경험을 담고 30대로 넘어가기에 지금 남은 20대도 짧다.





대학에 가고 해병대를 나와서야 진짜 나를 되찾았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앞으로 하게 될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겠지만 두렵지는 않습니다. 대학에 가고 해병대를 나와서야 진짜 나를 되찾았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각오와 함께 후배 해병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도전

하는 청춘 윤승철 군의 승승장구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더 신나고 멋진 소식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주길 바래본다.

“해병 여러분. 이미 해병대에 도전해 빨간명찰을 달고 있는 여러분은 모두 도전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군생활이 힘들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이 자신감, 이 용기로 자신이 하고싶은 것에 힘차게 도전하세요. 인생의 황금기가 열릴 것입니다. 즐겁고 신나는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