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장병 인터뷰- 해병대사령부 상황장교 김 정 수 대위
중대원들 포연탄우 속에서도 서로 챙겨
연락 끊긴 포반 생사 모르자‘ 복수’ 불타
▲포7중대 필사즉생 각오로 승리
“검은 연기에 휩싸인 포반에서 ‘사격준비 끝’ 보고를 했을 때, 포반원들의 우렁찬 함성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습니다.”
해병대사령부 상황장교 김정수(사진) 대위는 연평도 포격전 때 연평부대 포7중대장이었다. 그는 3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우리 중대는 그날 포병전술훈련 평가사격을 진행했습니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주포 2문은 계획된 적 진지를 향하게 하고 4문으로 사격훈련에 임했습니다. 순조롭게 사격을 마쳤을 때 ‘쾅’하는 굉음이 들렸고, 사방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적 도발을 직감해 전 병력과 장비 소산(대피)을 지시했습니다.”
포7중대는 대피와 동시에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화재와 포격 피해로 3문만 대응사격에 나섰다. 2차 대응사격 때는 긴급정비를 통해 수동 사격으로 전환한 포까지 4문이 대포병 탐지레이더가 포착한 적 포진지로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대응사격이 끝나자 고요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중대원들은 화재를 진압하고 추가 도발을 대비해 신관과 뇌관을 탄약고에서 불출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적과의 포격전을 치른 중대원들은 마치 전면전을 준비하듯 필사즉생의 각오를 보여줬습니다.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김 대위는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즉각 대응능력을 보인 원동력은 굳은 전우애와 끊임없는 교육훈련, 막중한 책임감이었다고 말했다. 중대원들은 포연탄우 속에서도 서로를 챙겼으며, 연락이 두절된 포반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 복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러한 전투의지와 조건반사적으로 반복 숙달한 전투배치 훈련, 내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조화를 이뤄 전투를 승리로 종결지었다는 것.
“통신이 두절된 포반과의 연락을 위해 통신병을 투입했습니다. 통신병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갔습니다. 나중에 물으니 가라고 해서 갔다는 겁니다. 엉뚱한 답변이었지만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참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 연 450여 회에 달하는 전투배치,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려는 책임감이 없었다면 신속 대응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온몸에 비누 묻은 채로 전투배치
해병대 연평부대는 포격전이 발발한 2010년 전투배치 훈련만 455회를 진행했다. 1일 1회 이상, 공휴일과 주·야간을 가리지 않은 결과다. 김 대위는 이에 따른 에피소드도 많았다며 웃음 지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맨발은 기본이었고 온몸에 비누를 묻힌 채 달려가는 장병도 종종 있었습니다. 어떤 주말에는 하루에 4번이나 전투배치가 발령된 적도 있습니다. 훈련이 일상화되자 중대원끼리 누가 먼저 포상에 도착하는지 내기까지 하더군요. 그런 중대원들을 보며 연평도 절대사수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김 대위는 극히 일부지만 ‘늦장 대응’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늦장 대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울화가 치밀었고, 관리부실로 원래부터 사격이 불가능한 장비였다는 등의 기사가 실렸을 땐 전 중대원이 언론사를 고발하겠다고 나서서 말리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김 대위는 포7중대를 비롯한 연평부대는 지휘관과 전 장병이 똘똘 뭉쳐 신속히 대응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강조했다.
“자주포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이라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적 포탄이 포상에 직접 떨어진 곳이 두 군데였습니다. 바로 화재가 발생했고, 포탄이 계속 퍼붓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중대원들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산을 지시했습니다. 중대는 훈련 중이던 위치에서 생존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진지로 이동했습니다. 중대원들은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고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자주포를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전열을 가다듬은 후 곧바로 대응사격했습니다. 아무런 방해요소가 없을 때도 초탄을 쏘아 올리려면 5분 정도 소요됩니다. 우리는 화재, 청력을 상실한 이명증상, 검은 연기에 휩싸인 포 내부 등등 악조건에서도 신속히 움직여 13분 만에 포탄을 발사했습니다.”
▲재도발 땐 처절한 응징 ‘준비 끝’
간부를 제외한 포7중대원들은 모두 전역해서 민간인으로 돌아갔다. 어떤 이는 학생으로, 어떤 이는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김 대위는 전역 장병을 포함한 모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중대원이 있기는 하지만 정기적인 만남은 없습니다. 대부분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그날을 회상하는 그런 모임을 1년에 한 번씩은 갖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 대위는 현재 해병대사령부에서 상황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군인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뿐 야전과 사무실이 따로 없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또 적과 대치 중인 부대에 배치되면 2010년 11월 23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부대 확립에 일조하겠다고 다짐했다.
“포7중대원들은 이길 수 있다는 강한 의지와 높은 사기로 승리했습니다. 이제는 전장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압니다. 특히 해병대 전 장병은 포격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두 해병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해병대는 만약 적이 재도발한다면 복수의 기회로 삼아 처절히 응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김 대위는 안보강연을 자주 다닌다.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부대가 불타는 것을 상상해 봤는가”라는 질문이다.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승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라는 의미에서다
“우리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달려간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군인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 언제든지 나와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을 수호하기 위해 전술전기를 갖추고 대적 우위의 정신무장을 확보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국방일보 윤병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