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고생해 민박집 하나 장만해 놨더니 낚시꾼 발길 끊겨 휴업상태
고기만 잡고 살았는데 육지 나갈 수도 없고…”
40년 전에 지은 방공호 있으나 마나북측은 서해안 기지에 온갖 포 집중배치北 앞마당이나 다름없어
고기만 잡고 살았는데 육지 나갈 수도 없고…”
40년 전에 지은 방공호 있으나 마나북측은 서해안 기지에 온갖 포 집중배치北 앞마당이나 다름없어
▲ 대청도의 한 주민이 선진동 해군기지에 정박 중인 해군 고속정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대청도 주민들의 최대 숙원은 “대피소만이라도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춰줬음 좋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7개 마을에 설치돼 있는 방공호는 모두 지난 1970년대에 지어진 것들”이라며 “너무 낡고 오래돼 북한의 포격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청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다”는 원주민 김정곤(70)씨는 대청3리의 비상 대피소를 가리키며 “40년 전에 지어진 것이다. 정부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포탄 한 방만 맞으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전쟁이 나면 여기 들어가 있으라고 하니, 그게 말이 되는 얘기냐”면서 “대포 한 방 맞으면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죄다 몰살될 텐데, 차라리 참호처럼 좀 더 길게 굴을 파서 여차하면 다른 데로 피신할 수 있게 해줬음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청도에서 태어나 대청도에서 평생을 살았다”며 “나는 죽어도 대청도에서 죽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민 김성녀씨는 “포격이 이뤄지면 숨을 곳이 대피소밖에 더 있겠느냐”면서도 “솔직히 마음이 불안불안하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다른 주민은 “전쟁이 나도 대피소엔 안 들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피소, 포 한 방이면 내려앉을 것”
낙후된 시설은 군수장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취재진이 찾아간 90㎜ 해안포 진지는 무방비 상태였다. 철통 같은 방어망이 구축돼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진지 주변엔 가시가 달린 철조망만 둘러쳐져 있을 뿐 외부로부터의 진입을 막는 병력이나 감시카메라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진지가 구축된 지 오래된 듯, 벽에 적혀 있는 ‘일반 수칙’은 글씨가 지워지고 색이 바래 읽을 수 없었으며, 진지 바닥엔 포탄이 담긴 상자와 해안포 정비에 사용되는 윤활유 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포신은 상대적으로 잘 정비돼 있었지만, 포를 받치고 있는 밑동과 포병이 앉는 의자 주변은 곳곳에 녹이 슬어 있어 ‘오래된 장비’임을 알 수 있었다.
현재 대청도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해경, 해군부대, 해병대 1개 중대를 합쳐 300명 남짓에 불과하다. 이 섬에 배치된 90㎜ 해안포는 6·25 때 쓰였던 M47 패튼 전차에서 떼어낸 M36 주포를 재활용한 것으로 사거리가 1㎞밖에 안된다. 한 주민은 “90㎜ 해안포는 최근 장비보다 명중률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데다, 부식이 심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령도와 대청도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한 전직 해병장교는 “해안포뿐만 아니라 전차도 6·25 때 쓰던 것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며 “장비가 노후해 훈련 중 전차가 멈춰서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차가 멈추면 훈련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장교들이 홧김에 군홧발로 전차의 조인트를 까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상 악화되면 뱃길도 묶여
연평도가 아수라장이 됐던 지난 11월 23일, 불행 중 다행으로 대청도엔 어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고 있었다”는 주민자치위원장 김성수(66)씨는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고 재빨리 귀항했다”며 “대청도 어민이나 어선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겉으론 평온해 보일지 몰라도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지 9일째인 12월 2일 현재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약 1400명. 20~30대 젊은이들은 대부분 육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지 오래고, 섬에는 50대 이상의 노인들이 주로 남아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남은 노인들은 대청 1~7리의 7개 마을에서 대부분 고기를 잡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을 쳐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숙박업에 종사하는 장덕찬씨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며 “평생토록 고생만 하다 겨우 장만한 것이 민박집 한 채인데, 그나마 (연평도 포격으로) 낚시꾼들 발길이 딱 끊겨 휴업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은 육지로 나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겠지만, 평생 고기만 잡아온 어민들은 육지로 가도 할 일이 없다”며 “뭍으로 간 아들딸이 자꾸 나오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나가봐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청도의 또 다른 애로사항은 기상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취재에 나섰던 지난 2일엔 해무가 자욱하게 끼어 앞뒤 분간이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파도까지 높아 오전에 조업을 나섰던 어선들이 모두 귀항해야 했다. 해무와 풍랑으로 인해 인천~대청~백령도를 오가던 정기선은 12월 2~3일 한시적으로 취소됐다. 대청도의 한 주민은 “서해5도는 한마디로 소외된 섬”이라며 “주민들이 견디지 못해 섬을 떠나면 대한민국의 영토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서해 5도를 지키지 못한다면 대통령도 대한민국도 모두 다 망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반도의 최전선이자 ‘화약고’
또 북한 해군사령부 예하 서해함대사령부 산하에는 6개 전대, 420척의 함정이 배치돼 있다. 이들 함정의 절반 이상은 서해 NLL(북방한계선) 인근 해주와 사곶 등에 집중 배치돼 있다. 특히 사곶엔 8전대 예하 함정 70여척이, 곡산 등 3개 공군기지엔 전투기 150여대가 출동이 가능한 상태로 배치돼 있다. 함정 대부분은 경비정과 유도탄 고속정, 어뢰정, 화력지원정 등으로 무장한 170∼400t급 소형이지만, 37㎜ 단연장포(사거리 8㎞), 14.5㎜ 2연장포(사거리 7㎞) 등으로 무장하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화력을 갖추고 있다.
이 지역 전력을 지휘하고 있는 북한군 총참모장 출신의 4군단장 김격식은 예하에 수만 명의 병력을 거느린 채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고 있다. 반면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포 중에서 북한군 진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것은 K-9자주포(사거리 40㎞)와 155㎜ 견인포(사거리 30㎞), 105㎜ 견인포(사거리 18㎞) 등이다.
이따금씩 北 귀순자 넘어와
대청도엔 이따금씩 북한에서 넘어온 귀순자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주민 김성녀씨는 “3~4년 전 황해도 순의도 포병부대에서 근무했다는 30대 남자 하나가 귀순해 온 적이 있었다”며 “당시 귀순자로부터 북한 해안포부대가 백령·대청·연평도에 조준을 맞춰놓고, 발사 장치만 누르면 포탄이 날아가도록 해놓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이한 것은 이 귀순자가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라며 “북한에선 점심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점심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주간조선 커버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