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09 21:04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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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연평도 못지않은 전략적 요충지
1961년 남북한 비밀회담 루트
2주일마다 한 번씩 오는 부식 배가 생명선

서해 5도의 마지막 섬 섬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면 끝
365일 민간인 구경 못해 고독과의 사투 근무 장병들 우울증 호소도
2134_26.jpg
▲ 우도의 일부분. 해병 OP가 보인다. photo 신미식

 

서해 5도(島).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미디어에서는 ‘서해 5도’가 연일 거론된다. 지난 3월 천안함 폭침 사태 때도 ‘서해 5도’가 지금처럼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
   
   ‘서해 5도 주민의 엑소더스(Exodus)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서해 5도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되면 김정일의 전략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서해 5도를 사수하는 해병대에 대한 지원이 열악하다’ 등.
   
   서해 5도 중 대부분의 국민은 백령도와 연평도 정도만 알고 있다. 대청도와 소청도까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시사상식이 많은 사람만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를 안다.
   
   그렇다면 마지막 다섯 번째 섬은? 우도다. 모퉁이 우(隅)자를 써서 우도다. 연평도 오른편의 텅빈 공간에 있는 섬이 우도다. 서해 5도를 위도상으로 보면 백령도가 가장 높고 우도가 가장 낮다.
   
   ‘서해 5도 주민의 엑소더스 행렬’은 엄밀히 보면 틀린 말이다. 서해 5도 중 가장 큰 섬은 백령도로 인구는 약 5000명이다. 거주민 순서로 연평도 1780명, 대청도 1270명, 소청도 280명 순이다. 우도에는 민간인이 살지 않고 해병과 해군들만 거주한다.
   
   우도가 서해 5도의 하나이면서 보통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지 않은 이유는 섬이 작고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섬에 물이 없기 때문이다. 민간인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돌섬이라서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다. 이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다 보니 우도 이야기가 육지에 퍼질 리도 없다.
   
   최근 우도의 부속 도서인 비도와 석도가 언론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비도와 석도는 멸종동물인 저어새의 산란지다. 저어새의 서식처인 비도와 석도는 사진작가들에게 누구나 한번쯤은 찍고 싶은 대상이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섬”
   
   우도는 해병대와 해군이 주둔한다. 해병이 우도에 들어가게 된 시점은 1952년 초였다. 당시에는 해병대 소대가 근무했는데 이후 점진적으로 배치 병력이 늘어나면서 중대 규모가 되었다.
   
   ‘우도 중대’는 연평도 해병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근무처다. 한번 우도 배치를 받으면 여간해선 전출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도가 오랜 세월 모로도(毛老島)로 불렸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한번 들어가면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나올 수 없다는 뜻으로 모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 빠삐용 앙리가 최종적으로 머문 악마의 섬을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1970년대만 해도 ‘우도 중대’ 근무는 연평도 해병 대원들 중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해병이 보내지기도 했다. 따라서 ‘우도 중대 근무’를 명 받으면 해병들은 마치 영창에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물론 지금은 연평도 해병 대대에서 나름의 원칙을 세워 우도 중대 파견을 결정한다. 예전처럼 벌칙성 파견은 없다.
   
   최진호씨는 해병 941기다. 최진호씨는 우도에서만 25개월을 근무했다. 2003년 1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포항에서 2개월 훈련을 마치고 입대 동기 15명과 함께 연평도에 배치되었다. 해병 신병 15명 중 3명이 우도 중대에 배치되었다. 최씨는 현재 부산에서 살고 있다.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우도 중대 배치를 명 받았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도라는 섬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니 우도 중대가 어떤 곳인 줄도 알 턱이 없었다. 그때 신병에게 우도 중대 얘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연평도에서 배를 타고 우도에 도착했을 때 정말 막막했다.”
   
   우도에는 레이더기지가 있다. 해군은 레이더기지를 관리하고, 해병은 산꼭대기에서 경계 근무를 선다. 우도 중대에는 발칸포가 설치되어 있다.
   
   우도는 섬에서 자급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따라서 해병의 부식은 모두 2주일에 한번씩 들어오는 해군의 ‘부식 선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일 ‘부식 선박’이 들어오기로 되어있는 날 악천후로 인해 들어오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최씨는 ‘우도 중대’ 근무 25개월 동안 휴가를 모두 4번(100일 휴가, 일병 휴가, 상병 휴가, 병장 휴가) 받았다. 우도에서는 장병들이 고대하던 휴가를 받아도 육지까지 가는 일 자체가 보통이 아니다. 우선 부식 배가 들어올 때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부식을 부린 배를 타고 연평도까지 간 뒤 거기서 다시 연평도 해병들과 시간을 맞춰 인천으로 간다. 이렇게 하다 보면 꿈 같은 휴가의 3~4일은 공중으로 날아간다.
   
   
   물이 가장 귀해… 바닷물 염분 제거하고 사용
   

 

▲ 우도의 낭만적인 모습. photo 신미식

똑같은 섬이지만 연평도 해병은 일요일마다 민가가 있는 후방 지역으로 내려가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도에서는 1년 365일 민간인을 만날 수가 없다. 군사보호지역이다보니 우도 근처에 낚시꾼도 접근이 불가능하다. 최씨는 우도 근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도의 해병들은 하루 종일 경계 근무를 서는 게 일이다. 스티로폼 박스 하나라도 떠내려오면 우리는 이것을 전부 관찰해 보고 했다. 북한 선박이 NLL을 넘어오기라도 하면 초긴장에 들어간다. 그런데 많은 경우 너무 외진 섬이다보니 어느 시점이 되니까 우울증이 생기더라.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그게 힘들었다. 우도에서는 중대장 말이 곧 법(法)이다. 저녁마다 비상이 걸려서 5분 대기조 상태에서 무장을 한 채 취침하기 일쑤였다. 세상과 단절된 채 TV와 라디오를 통해서만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도에서는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부식 배가 들어와야만 그 편에 편지를 부칠 수 있었으니까.”
   
   우도의 해병들은 해마다 꽃게철이 되면 2002년 6월의 제2연평해전이 떠올라 저절로 긴장한다. 간간이 출몰하는 중국 어선들은 그렇잖아도 신경이 예민한 부대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우도 중대 해병대원들의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다. 하룻밤에 많게는 두 번의 초소 경계근무를 선다. 산 정상을 깎아 만든 작은 운동장이 혈기왕성한 해병이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의 전부다. 섬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이곳에서도 검푸른 바다만 보인다. 최씨에게 물었다.
   
   - 우도 근무에서 가장 힘든 것을 하나만 들라면 어떤 것인가.
   
   “먹는 물 구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식수는 해군들로부터 얻어 먹었다. 그밖에 씻는 물은 바다에서 끌어올린 물을 염분을 제거해 썼다. 쫄병 때는 대야 하나에 물을 받아 그 물로 세수하고 머리 감고 모든 걸 다 해야 했다.”
   
   - 힘든 우도 근무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나.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해서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힘들 때마다 해병인 내가 이것을 견뎌내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으로 참아냈다. 일요일에는 기독교도, 불교도들이 그룹별로 별도의 방에 따로 모여 종교활동을 했다. 이런 종교활동이 우울증을 치유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하면 해병대원들 간의 동료애다. 고립감이 우도 중대의 결속력을 심화시켰다. 우도 중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족적인 분위기가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수도권 침투로의 길목
   
   우도의 위치를 다시 보자. 우도는 연평도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 서해 연안과 가장 가까운 섬이 우도다. 우도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의 섬은 함박도.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썰물 때는 우도에서 함박도 사이가 갯벌로 변한다. 적군이 걸어서 우도를 기습할 수 있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우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적(敵)이 수도권 서측으로 침투하려면 우도가 있는 바다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도에서는 적의 침투를 거의 다 감지할 수 있다. 우도가 비록 섬 크기는 작지만 전략적으로 백령도와 연평도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우도의 존재가 처음으로 일반에 알려진 것은 1992년이었다. 1961년 9월 28일 남북한은 우도 근처에서 처음으로 비밀회담을 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기 11년 전의 일이다. 이 사실은 월간조선 1992년 8월호에 처음 공개됐다. 5·16군사정변 직후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북한 동향과 관련된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은 비밀리에 육군 첩보부대(HID) 대장 이철희를 시켜 북측에 정치회담을 제의했다. 남북한의 ‘메신저’들이 대표회담 의제 및 장소를 놓고 실무접촉을 통해 장소로 결정한 곳이 우도에서 가까운 무인도(용매도)였다. 용매도는 NLL 북쪽 북한령이었다.
   
   1961년 9월 28일 오전 3시 한국 측 대표들은 인천 항만사령부에서 대여한 쾌속정에 소형동력선을 매달고 2시간가량 항해해 모로도에 도착했다. 당시만 해도 우도는 모로도로 불렸다. 대표들은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한 뒤 소형 동력선으로 옮겨타고 무인도인 용매도로 가 북측 대표들과 만났다. 비밀회담은 1962년 초까지 10여차례 진행되었는데 한국 측 대표들의 접촉 루트는 언제나 우도를 거쳐가는 것이었다. 비밀접촉이 중단된 것은 북측에서 비밀회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각료급 고위회담으로 격상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북한 측 대표들은 비밀로 하자는 약속을 깨고 당시 남북 접촉 사실을 모두 소련 당국에 보고했다.
   
   
   “북엔 ‘목의 가시’ 같은 존재”
   
   현재 우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연평도에서 부식을 실어나르는 해군 선박을 이용하는 방법과 강화도 외포리에서 배를 전세내 들어가는 방법이다. 강화도 외포리에서는 1시간30분이 걸린다. 사전에 해병대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2000년대 들어 극소수의 기자들이 해병대 우도중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기자들은 접안하자마자 가파른 바위산을 올라가면서 우도의 현실을 실감했다.
   
   군 전략가들은 서해 5도와 관련 “북한에 연평도는 목구멍의 비수이며, 백령도는 옆구리의 비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도는? 우도는 강화도와 연평도 사이의 텅빈 공간에 덜렁 떨어져 있다. 그래서 인천과 연평도 사이의 유격수 같은 곳이 우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윤연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우도는 섬의 크기는 작지만 백령도, 연평도와 똑같이 적의 입장에서 보면 목의 가시 같은 존재”라고 평가한다. 윤연 전 사령관은 “우도는 서해 5도 중 가장 고립되어 있는 섬이기 때문에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원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서 “이번 기회에 우도에도 적의 도발에 대비한 응분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 12월 2일 “북한이 우도에 기습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정두언 의원은 “북한의 도발 사례를 분석해보면 북한은 이제까지 똑같은 메뉴를 쓴 적이 없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서해바다 모퉁이에 외롭게 떠있는 섬 우도. 지금 이 시간에도 해병대원 60명이 뜬눈으로 바다의 철책선인 NLL을 지키고 있다. 밤마다 해병대원들의 구호가 우도의 밤하늘을 가른다.
   
   “서·부·전·선 최·강·방·패! 우도 중대, 악!”

<주간조선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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