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4 11:52

천자봉구보

조회 수 444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

 

보병은 3보이상 구보입니다.
훈련소에서는 행군하는 것 이외에는 걸어다니지를 않았고, 쉴 때도 앉아서 쉬지 못하고 서서 쉬었는데 그래도 진해훈련소 구보의 하이라이트는 천자봉 구보입니다.

 

hb_cheonja.jpg


천자봉을 진해훈련소에서 보면, 정상에 하얀 글씨로 "해병혼"이라고 표시되어 있었고 이곳 정상에 오르는 천자봉 구보는 훈련소를 수료하기 얼마 전에 했는데 이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M1소총으로 대검을 꽂지 않은 무게가 9.5파운드(4.3킬로그램)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무거운 총을 그나마 "어깨 총"이라도 하고 뛰라면 좀 낫겠는데  "앞에 총" 자세로 몇 시간씩을 뛰니까, 양팔은 늘어지고, 물이 가득 찬 수통은 허리춤에서 덜렁거리고,철모는 화이바가 잘 안 맞아 빙빙 돌면서 한 걸음 뗄때마다 턱턱 머리통을 치고, 힘 들어서 숨은 콱콱 막히고.. 정말 운명할(?) 지경이었지요.


구보가 끝난 뒤에 서로의 얼굴을 보면, 너, 나 할 것없이 흘러내린 땀이 찬바람에 소금으로 변해 얼굴에 하얀 줄이 세로로 몇 가닥씩 줄기줄기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자봉은 일년에 한번씩인가 꼭 불이 난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아! 눈물고개) 저는 훈련소에서 치질이 있어, 어떤 날은 혈변이 무척 심했었는데(지금까지도 지겹게...) 정말 괴로웠습니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혈변을 쏟아내니, 가끔가다가 체력이 극도로 떨어져 말이 아닐 지경이었는데 恨 많은 눈물고개를 넘어 상남으로 가던 날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아침부터 죽도록 힘이 들었는데...


완전무장으로 고개를 넘는데, 고개마루를 눈앞에 두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렇게 높은 고개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제 발걸음이 비척거리니까 옆에서 걷던 동기가 부축해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훔처 먹은 호빵 한 봉지) 진해훈련소에서의 8주간의 기본교육을 마치고, 포항으로 후반기 보병교육을 4주간 받으러 갈 때였습니다. 열차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도중에 '어떤' 역에(당시엔 하도 정신이 없어서 어느 역인지 모릅니다) 잠깐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열차가 멈추자, 동기들은 먹을 것들을 사려고 난리였는데 모두들 훈련소에 입소시 맡겨 놓았던 돈을 찾았기 때문에 약간씩의 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 동기가 차창 밖으로 한 아줌마에게 호빵을 갖다 달라고 하니까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호빵을 한아름 가져다 팔았는데 모두들 그리로 달려가 호빵을 샀습니다.
호빵과 함께 돈이 건네져야 되는데, 빵을 달라고 내민 손이 하도 많아 도저히 계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사람은 '정상적으로' 돈을 주고 호빵을 샀으나, 잠시 후에는 수십명이 두사람에게 서로 자기 빵을 먼저 달라며 아우성을 치는데. 기차는 곧 떠날 것 같지요, 그래도 먹기는 해야겠지요. 참...


그러다보니 돈은 안 내고 빵만 그냥 집어가는 난장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그때 호빵 한줄(다섯개)을 그냥 집어다 먹었는데 돈을 안 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마침 열차가 슬슬 움직였거든요.
사실 이 얘기는 부끄러워서 제대 후에도 오랫동안 남에게 말하지 못한 건데, 그 호빵을 팔던 부부도 형편이 좋지는 못했을텐데... 죄송합니다.


혹독한 실무훈련
(실무 일주일만에 동계훈련에 나서다)
저희 264기가 전.후반기 12주 교육을 모두 마치고 실무에 배치 받은 때는 1월말이었는데, 제가 배치 받은 부대는 1사단 *연대 2대대 6중대 3소대로 말단 소총중대에, 소총소대였지요.


부대에 배치 받아 가니, 월남전에 다녀 온 230대 기수가 가장 선임수병(지금은 "해병"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수병"이라고 불렀습니다)이었고, 259기가 말단이었는데 당시는 병력이 많이 부족하여 저희 동기가 5, 6중대에 20여 명씩 떨어졌습니다. 259기가 환장하게 좋아했지요.


1주일쯤 후에 동계****훈련을 나가는데, 제게는 개인화기로 AR이 주어졌습니다. 신참 졸병이라고 가장 무겁고 힘든 화기를 준 거지요.
AR은 월남전에서 쓰던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는데, M1보다도 훨씬 길고 무게는 M1의 두배인 19파운드(8.5킬로그램)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총신 앞부분에 두개의 받침대가 있고, 탄창을 끼워 발사하는 자동소총으로  나중에는 하도 무거워서 완전무장 위, 목에 걸치고 다녔습니다.


경주 토함산 인근 어느 지역으로 훈련을 나갔는데, 하루에 한 두끼니는 K레이션(깡통 속에 밥이 들어 있는데 미군의 C레이션을 본따서  K레이션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으로 받았습니다.


훈련은 주간에는 온종일 걷고, 밤에는 야영을 하고 그랬는데  완전무장 위에 AR을 싣고(?)토함산 어딘가의 눈밭을, 새로 길을 내며 거의 하루 종일 걷는데, 아무런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앞사람의 발자국만 보고 걸었습니다. 걷다가, 걷다가 배가 고프니까 K레이션을 따서 얼음 덩어리인 맨밥을 몰래 한숟갈씩 입에 넣어  침으로 녹여 먹으며 갔는데  이렇듯 밥을 먼저 먹어버렸으니, 정작 식사시간이 되면 먹을 게 있어야지요? 미치도록 배가 고팠습니다.


혹시 밥을 주는 날에는 녹이 시뻘겋게 슨 알철모에 밥, 국, 김치를 한꺼번에 받아다  서너명이 나눠 먹었는데 고참들은 그것 말고도 다른 먹을 게 있어서 좀 나았지만  제일 졸병인 저는 참으로 배 고프고 서러웠습니다. 새벽부터 오밤중까지의 행군은 그래도 야영보다 나았습니다. 얼음이 데걱거리는 2월초의 논바닥에,오와 열을 맞춰 3인용 텐트를 치고 잠깐 눈을 붙치는데  텐트바닥에 볏짚 북데기라도 좀 깔게 했으면 나았으련만  그것도 못하게 했습니다.


바닥에 판초 두장과 모포 한장을 깔고, 모포 두장을 가지고 3명이 덮고 자는데  중앙에는 고참이 자고, 그 양쪽에서 졸병들이 잤습니다. 정말 무지하게 추웠습니다. 제 몸에서 모포가 벗겨져도 고참에게서 끌어오질 못하고 그냥 자야 했으니.


추워서 처음에는 발도 안 닦고 하루종일 땀에 절은 양말을 그냥 신고 자니  발이 엄청 시려웠는데, 다음날부터는 얼음을 깨서 발을 씻고 맨발로 자니  발이 화끈거리면서 오히려 더 났더군요. 이렇게 하도 춥다보니까 몸은 물먹은 솜처럼 피곤한데도 깊은 잠이 안 오고  잠깐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하룻밤에도 몇차례씩 다리에 쥐가 나서 잠을 깼는데 심한 날은 바지에 오줌을 싸기도 했습니다.


5~6일 정도의 훈련 마지막 날, 토함산 중의 어느 고개를 행군해 내려가는데, 산등성이에서 보니까 왼쪽에 얕으막한 고개에서 이어진  신작로가 중앙에 나 있고, 그 옆에 당산나무가 두 세그루 서 있는 작은 마을이 보이더군요. 지금도 그 고갯마루에 서면 그 마을을 알아볼 수 있을만큼  한겨울, 그 마을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제 머리를 스친 것은, "아! 저기 가면 밥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전 선임수병이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저는 산길을 구르다싶이 뛰어 내려가 다짜고짜 아무 집에나 불쑥 뛰어 들어갔습니다.
부엌으로 들어가 밥 좀 달라고 하니까, 주인 아주머니께서 소쿠리에 담긴 식은 보리밥 덩어리와 썰지도 않은 김치를 포기째 내어 주셨는데  세상에, 그보다 더 맛 있는 밥이 또 어디 있을라구요?


그때, 그 아주머니 福 받으소서!! -3부 끝_   


*옮긴 이註)'선임들이 "환장하게" 좋아했다'는 대목에 대한 보충설명입니다.
263기선임들께서 진해에서 훈련을 받는 중에 사령부가 해체되는 바람에, 그 후 약 6개월간 신병이 진해훈련소에도 안 들어왔답니다.
그래서 언젠가 263기 장석융 선배님이 올리신 글 중에 "상남을 다녀 오는데도 다른 기수들처럼 길 양편에 늘어서서 박수를 쳐 주는 후배들이 없어 몹시 우울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당연히 실무에도 그 기간 동안엔 "보급물"들이 안 올라온 거구요. 그러니 가히 "환장할 만"하지요?

그리고 본문 중의 "어깨 총"은 "우로 어깨 걸어,총"일 겁니다. 제 생각엔....

 

박동규(264기)님의 글입니다.

 


  1. 해병대 헌병대 - 구문굉

    해간35기 구문굉님 과거 해군 서울지구 헌병대는 서울에 사는 왼 만한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상업은행 본점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고 옆으로는 남산 2호 터널이 뚫려 있어 그렇지, 옛날에는 남산 2호 터널도 생기지 않았고 바로 그 자리에 벨기인들이 지은 붉은 2층 벽돌집이 위엄 있게 버티고 있는...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13676
    Read More
  2. 1968 내가 만난 미 해병대 전우들 - 구문굉

    1. 나와 미 해병대원과의 첫 만남. 내가 개인적으로 미 해병대 장사병들과 처음 만났던 일들과 서로 교분이나 의기투합을 했던 일들을 상기해 보면 나의 경우 꽤 여러 미 해병들과 접촉을 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사실 나는 월남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각 보병중대에 두 명의 미 해병대 앵그리코맨이 파견 되어 있는 줄은 미...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5847
    Read More
  3. 곽해병의 해묵은 일기

    곽해병의 해묵은 일기 그시절 주월 한국군에게 고국으로 부터 오는 위문단은 삭막한 열대의 베트남 이국 전선의 한국군들 한테는 군생활의 활역소가 되었다고 하면 그 누가 이유달 사람 없으리라! 대개 고국에서 오는 그런 주월 한국군 위문단은 3등급으로 나눌수 있다. 1등급은 완전 잘나가는 일류 스타급 연예인 들이다. 2...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306
    Read More
  4. 잊혀진 해병대 내무생활 기억 - 영원해병

    잊혀진 해병대 내무생활 기억 - 영원해병 얌마! 박수병! 너 근무 나가! 오대 장성중의 하나인 "해병병장 고참병장 제대말년 병장 열외병장 양수병이 박수병 한테 명령했다. 때론 근무에 관한한 지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양수병이 쫄따구 박수병 한테 근무 나가라 마라 할 자격이 없는데, 가끔이면 지 맘대로 제대말년 고참수...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11500
    Read More
  5. 연평도로 날아간 국회 국방위의원들

    해병대 6여단은 적은 병력으로 백령도와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개 섬에 배치되어 서해 북방을 책임지는 한편수도권 2천만을 지키는 주요한 위치에 도사리고 북한의 도발을 응징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요즈음 북한의 태도는 한나라의 국가이기를 거부한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단자의 길을 걷고 있다. 2차례의 핵실험...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520
    Read More
  6.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 펌

    In memory of my fallen comrade of 2nd ROK Marines Brigade (Blue Dragon), Whom my unit served with was part of. Park--Kim--Lee, and many others whose names I'll never know. But, I'll never forget. Sub Unit One, 1st ANGLICO, USMC." "나와 같이 소속되어서 싸웠던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의 내 전우들을 추...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335
    Read More
  7. 귀국

    ★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오시는 어느 해병대 선배님의 수기중 귀국부분입니다. 배가 다낭항을 출발하고 몇 시간 후부터 다시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멀미는 작년 월남에 올 때 보다도 더 심했다. 일년이 넘는 월남 생활에 심신이 많이 망가졌나보다....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마냥 행복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4231
    Read More
  8. 쏟아지는 총탄에 멈춘 기관차… 장단역 시간도 거기서 멈췄다

    밀려드는 중공군 목숨바쳐 막아낸 해병대 776명 젊음도 함께 흘러 1000여 개의 총탄 자국, 무참히 일그러진 바퀴… 22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강 통일대교 앞. 육군 제1사단의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검문소를 지나며 임진강 왼쪽 자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었다. 1950년 12월 31...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732
    Read More
  9. No Image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 대대장님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 대대장님 - 해병대CD中에서 하교214기 이동원 긴 훈련소 생활 6개월을 마치고 실무부대에 처음 왔을때우리 부대는 난리가 났었다. 1992년 0월, 000지역으로 상륙기습훈련을 위해 해상이동을 하던 0중대가 소용돌이를 만나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소용돌이에 휩쓸린 해병대원 2명이 파도에 휩...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17698
    Read More
  10. No Image

    해병대의 여전사들!

    해병대 4기 해병공수 123차 첫 자격강하를 마치고 공수교육동기들과 철모에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 해병대 여군장교 1호 한경아대위 1사단 71대대 소대장 한진영 소위(2중대 2소대장)가 소대원과 함께 암벽 레펠을 하고 있다. 해병대 최초의 해외파병 여군 허정은(28세, 사후98기)대위 헌병대 여군장교 이수연 소위(해군사관...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6278
    Read More
  11.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 이영주 해병준장

    이영주 해병준장 우리는 평소 드라마나 스포츠를 즐겨본다. 여기에 극적인 변화나 반전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세상사 역시 반전의 묘미가 있어 더욱 살맛 나는지 모른다. 70년대 고교야구는 프로 스포츠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인기의 요소 중 하나가 역전승이었다. 그것도 9회 말 투 아웃에 펼쳐지는 역전...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325
    Read More
  12. 이사진을 기억하나요?

    그때 그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그 사진을 들고 노무현대통령을 조문한 해병중위입니다.
    Date2010.05.24 By운영자 Views4479
    Read More
  13. 천자봉구보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 보병은 3보이상 구보입니다. 훈련소에서는 행군하는 것 이외에는 걸어다니지를 않았고, 쉴 때도 앉아서 쉬지 못하고 서서 쉬었는데 그래도 진해훈련소 구보의 하이라이트는 천자봉 구보입니다. 천자봉을 진해훈련소에서 보면, 정상에 하얀 글씨로 "해병혼"이라고 표시되어 ...
    Date2010.05.24 By운영자 Views4440
    Read More
  14. 스무살 새로운 도전

    1사단 포병연대 일병 황인성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나는 5월이 되어 어느덧 일병으로 진급을 하고 내 나이도 만 20살이 넘어 드디어 성년이 되었다. 성년의 날... 장미, 향수, 그리고 달콤한 키스를 연인에게 주는 날. 이제 진정으로 성인이 되는 사람에게 축하와 격려를 해주는 날이다. 하지만, ...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2994
    Read More
  15. 한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해병대라는 것

    2사단 본부대대 상병 김성철 (2007) 저는1985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운이 좋게도 미국 국적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외가 친척들이 어려서부터 미국에 이민을 가서 저 또한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10년 정도 살다가 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귀국한 후 한국...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336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Next
/ 2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