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 영원한 해병  / 월남전 영웅 이 인 호 소령

적 수류탄 덮쳐 부하들 살리고 산화

 

본지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국군 장병들 중 태극·을지무공훈장 등 주요 훈장을 수훈한 영웅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기획시리즈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을 연재한다. 시리즈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이 선배 장병들의 참전 경험을 생생히 전달하는 동시에 임무 수행의 중요성과 전투 교훈,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되새길 수 있는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첫 회로 월남전 영웅 고(故) 이인호 소령 편이다. 이 소령은 월남전에 참전하여 부하들을 살리고 산화한 공로로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된 최초의 주인공이다. (편집자)

 

베트콩 동굴수색 앞장…기습당해
“빨리 대피하라”외치며 몸을 날려
이인호 소령의 ‘살신성인’

 이인호소령.jpg
월남전을 말할 때 고 이인호 소령을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은 해병정신에 대한 결례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이 말은 바로 이 소령의 부하사랑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수류탄을 덮쳐 혼자 산화(散華)한 자기희생은 후세 해병들에게 군신(軍神)이라는 말로 남아 길이 추앙되고 있다. 그는 베트콩 은거지인 동굴수색 중 전사했다. 정보장교였던 그는 동굴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았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대대장은 그에게 동굴수색에 앞장서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그는 “아닙니다. 장교가 직접 들어가 확인해야 합니다” 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해풍작전은 청룡부대가 뚜이호아 지역에서 추라이 지역으로 이동하기 직전인 1966년 7월 22일부터 8월 17일까지 실시된 작전이다. 그래서 일명 ‘뚜이호아 고별전’이라고도 한다.
작전 목적은 뚜이호아 - 붕로 만(灣) 간 1번 도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지역 내 적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을 통해 인근 평야지대와 산악지역에서 암약하던 베트콩이 소탕돼 선량한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작전 뒤에 떠나는 청룡을 가지 말라고 진정하는 데모까지 일어났을 정도로 그들은 청룡을 믿고 의지했다.
제3대대 정보장교 이인호 대위는 66년 8월 11일 9중대 작전지역 대나무 숲에 베트콩 비트(비밀 아지트)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귀순한 여자 베트콩의 진술이었다. 그는 오후 3시 무렵 여자 베트콩 둘을 헬기에 태워 9중대 작전지역으로 날아갔다. 그녀들 말은 사실이었다. 밀라이란 마을 야트막한 대나무 숲 야산에 높이 1.5m, 폭 1m 크기의 동굴 입구가 있었다.

 

수색조 5명은 무사
“즉시 밖으로 나와 투항하지 않으면 몰살시켜 버리겠다.” 그는 핸드마이크를 휴대한 월남군 통역원을 시켜 투항을 권고했다.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동안 더 기다려도 반응이 없어 9중대 3소대 3분대장 김찬옥 하사 등 수색조 5명을 동굴 안으로 투입시켰다. 잠시 후 그들은 수류탄 3발과 구급낭·탄띠·약간의 실탄을 수거해 가지고 나왔다.
이 대위는 비트의 규모로 보아 더 많은 무기와 인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직접 수색조를 지휘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설 수도 없을 만큼 비좁은 동굴은 얼마 안 가 ‘ㄱ’자로 꺾여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안쪽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난 쪽으로 랜턴을 비춰 보니 수류탄이었다.
이 대위는 “수류탄이다” 하고 외치면서 재빨리 그걸 주워 안쪽으로 던졌다. 모두 자세를 바짝 낮추고 잔뜩 긴장해 발밑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또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수류탄 한 발이었다. 이 대위는 순간적으로 늦었다고 생각했다. 주워 되던질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빨리 대피하라.” 이렇게 외침과 동시에 그는 조건반사처럼 몸을 날려 상체로 수류탄을 덮쳤다. 그래서 수색조 5명은 무사했고, 이 대위는 장렬히 산화한 것이다. 한참 뒤에 이루어진 동굴수색 결과는 너무 참혹해 그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 이 대위가 되받아 던진 수류탄에 의해 베트콩 5명이 죽어 있었다.
동굴 막장에도 질식해 죽은 베트콩 정치군관과 그의 전령, 여자 베트콩 1명이 숨져 있었고, 대나무로 받쳐 놓은 천장에서는 약간의 총기와 수류탄, 3000여 발의 실탄이 나왔다. 그해 연초 청룡부대 시찰 때 그를 만나 격려해 준 일이 떠올라 나는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늠름한 자세와 입을 굳게 다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부하위해 희생’ 외신 먼저 보도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제 몸을 던져 버린 이 ‘해병혼의 극치’는 곧 여단본부에 보고됐다. 정훈참모 박영옥 대위는 즉시 보도자료를 작성했으나 배포되지 못하고 말았다. 주월 미군 규정에 준한 주월 한국군 보도규정에 장교가 전사하면 유가족에게 전사통지서가 전해지기 전에는 보도하지 못하게 돼 있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일수록 지켜지기 어려운 법이다. 다음날인 1966년 8월 12일 오후 외신기자 한 사람이 청룡부대 본부에 나타났다. AP통신이었는지, UPI통신이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그 기자는 냄새를 맡고 온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정훈장교 박 대위는 그를 만나줄 수밖에 없었다. 그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사실대로 확인해 주자, 기자는 크게 감동한 표정으로 즉석에서 기사를 작성해 송고했다.
여단본부 통신대의 SSB 장거리 단파 무전송신기로 사이공에 있는 외신기자클럽의 동료를 통해 본사에 송고한 것이었다. 외신에 먼저 기사가 보도됐으니 국내 신문·방송에도 사실대로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이공 주재 한국 특파원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월남전의 영웅 이인호는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해군사관학교 11기로 럭비선수
그는 해군사관학교 11기생 출신이어서 내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던 장교다. 청룡부대 출정식 행사 때 그가 도열한 곳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관심을 표했던 기억이 새롭다. 경북 청도 출신인 그는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나와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원래는 법대 지망이었으나, 고2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해군사관학교로 진로를 바꾸었다. 사관학교에서는 럭비부에 들어가 매일 2~4시간씩 강행되는 방과 후 훈련에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었다.
핑계대기를 싫어하고 남을 탓하기 싫어하는 그는 재학 중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남겼다.담배를 끊지 못해 숨어서 피우곤 하던 동기생이 그를 곯려주려고 주머니 속에 몰래 담배꽁초를 넣어 놓은 것이 훈육관에게 적발됐다. 그는 얼차려를 받으면서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만 되풀이할 뿐 끝내 친구 이름을 대지 않았다. 친구를 보호하려는 의리에 감탄한 훈육관은 불문에 붙이고 말았다.

해군·해병의 영원한 표상
임관 후 그는 해병학교에서 특수기초반 훈련을 이수하고 서해 도서부대 소대장으로 해병대 장교생활을 시작했다. 8개월 후 함포·항공 연락부대인 앵글리코 보직을 받았고, 얼마 안 있어 미국에 유학 가 AVT(상륙장갑차) 수색교육을 이수했다. 귀국 후 이경자라는 아름다운 신부를 맞아 결혼한 그는 슬하에 딸 선옥, 아들 제욱 남매를 남겼다.
청룡부대 출정 전날인 66년 10월 2일 포항역을 떠날 때였다.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울리자, 그는 아이들 볼을 쓰다듬으며 “엄마하고 잘 있어. 아빠 잘 다녀올게”하고 작별했다. 가족에게 충실한 면모를 가진 평범한 아버지의 일면이었다. 그의 전사 후 정부는 1계급 특진과 함께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미국 정부는 은성무공훈장을, 월남 정부는 엽송무공훈장을 보내 왔다. 당시 해군참모총장이던 내 동기생 함명수 제독은 그의 어린 아들 제욱 군에게 해군사관학교 입학허가증을 수여했다. 해군·해병대와 유가족 간의 영원한 인연은 그렇게 이어졌다.
한편 해군·해병대 현역 장병들은 그를 추모할 동상 건립을 위해 모금활동에 나섰다. 해군·해병 예비역 장병들과 사회 각층의 호응으로 마련된 기금으로 그의 모교인 해군사관학교와 해병교육기지에 동상이 건립됐다. 그는 죽어서도 해군·해병의 마음속에 영원한 표상으로 살아 있다. 95년 6월에는 호국의 인물로 선양됐다. 【글 : 공정식 前해병대사령관 - 정리=문창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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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직후 정부는 이 소령에게 군인의 최고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해군사관학교 내 이 소령 동상 앞에서는 매년 ‘인호제’가 거행된다. 해사교장을 비롯해 유가족과 해군 해병대 장병, 해사 생도들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린다. 또한 모교인 대륜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는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모교 교정에서 월남전 참전 중 적진에서 날아온 수류탄을 안고 산화한 고 이인호 소령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기려 교정에 기념비를 세웠고, ‘국군영웅’인 모교 선배의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본받을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던 끝에 학교 도서관 앞에 흉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진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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