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의무병 이병 윤성문,강병욱

by 관리자 posted Dec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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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실 의무병 이병 윤성문

 

 



윤성문 이병

2010년 11월 23일 포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훈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기가 파편에 맞는 것을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여기저기에서 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공포는 물 밀 듯이 나를 엄습했다.

환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의무실로 돌아와 보니 의무실은 파편에 맞아서 유리창이 다 깨진 상태였다. 의무실로 들어가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 환자를 후송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데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것은 아닐까'라는 공포가 한 번 더 밀려오고 심장이 어느 때보다 빨리 뛰기 시작했다. 환자가 있는데 도착하고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다. 너무나 참혹했다.

여기저기에서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나를 더 공포에 떨게 했지만 환자를 후송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포가 조금씩 사라졌다.

의무실에 환자를 후송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또 다시 2차 폭격이 이어졌고 의무실 사람들도 모두 엎드렸다. 계속되는 포격 속에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환자를 수도병원으로 후송을 나섰다. 환자들은 RIB에 옮기고 해상전진기지를 거쳐 참수리호까지 옮기는 동안 연평도에서는 불이 섬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2함대에 도착하고 환자들을 헬기로 후송했다. 의무대원들은 헬기에 타지 못하고 버스로 수도병원까지 갔다.

모든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병원에 들어가니 부상당한 대원들의 가족들이 응급실 앞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부모님들과 친척들의 얼굴은 너무나 슬퍼보였다.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대원들의 빨간 명찰과 전투복을 보고 상황이 어땠냐며 묻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말에 대답을 해주고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져 버렸다.

환자들을 입실시키고 연평도를 돌아왔을 때 의무실의 모습과 연평도의 모습은 참혹했다. 우리가 더 강해져야 북한이나 타 국가의 위협을 안 받고 우리 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 하루였다. 타 부대에서 증원 부대가 오면서 복구 작업이 시작되고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마음이 조금씩 놓이기 시작했다.

 

▶ 의무실 의무병 이병 강병욱

 

 

 


강병욱 이병

 

연평도에 입도한지 3개월이 지났다. 항상 평화롭기만 하였던 이 섬에 그 날의 참사가 생길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0년 11월 23일 화요일, 이 날은 부대에 포사격 훈련이 예정돼 있었다. 당시 당직을 보던 중 한 꼬마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아이에게 처방된 약을 짓고 있는데 아이가 포 소리로 인해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 아름답고 좋은 소리가 아닌 섬뜩한 포 소리를 듣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아이에게 약을 주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한 뒤 당직을 다시 보았다.

그런데 14시 20분 경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의무실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졌다. 순간 나는 바로 방탄모를 쓰고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는 사이 의무실 앞에 있는 건물에 포탄이 떨어졌고 그 파편과 진동으로 의무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2층에서 입실환자 2명이 내려왔고 그제야 나는 내가 의무병인 걸 인식하고 우선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곧 치과 군의관님이 내려오시고 우리들을 방사선실로 대피시킨 뒤 우리들을 진정시키셨다.

포 소리가 잠잠해지자 갑자기 전화가 계속 울렸고 환자가 생겼다는 보고가 계속 왔다. 그 사이 간부들과 의무병들이 오고 환자가 왔다. 한 환자는 머리에 파편을 맞아 상처가 많이 깊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죽을 것 같다고 하며 환자는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우선 그의 상처를 세척하면서 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의 상처를 지혈하였다.

그리고 문광욱 일병을 비롯한 많은 환자들이 의무실에 왔고, 의무실은 신음소리와 피로 가득 찼다. 지나가야 할 통로마다 환자로 가득 차 의료물품 전달은 잘되지 않았다. 실장님과 문세인 상병은 서로 번갈아가며 문광욱 일병에게 CPR을 실시하고 있었고 나머지 요원들은 다른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하였다. 나는 수액을 놓기 위해 환자에게 주사를 꽂으려 했지만 너무나 떨려 실패를 하였다.

옆에 계신 군의관님께서 대신 주사를 놓고 마무리를 했다. 발목에 파편이 박혀 발목이 휘고 상처가 깊은 한 해병의 신발을 벗겨 처치를 하려고 했는데 환자는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신발을 벗기니 상처가 너무 심하여 얼른 상처 세척을 한 뒤 지혈을 하였다. 어떤 해병은 흉부에 생긴 상처에서 장기가 보였다. 그래서 얼른 보고를 하고 처치를 하였다.

환자를 처치하는 동안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정말 무서웠다. 모두들 처치를 중단하고 책상과 의자 밑으로 숨었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를 살려야만 했다. 북한이 포를 쏜다고 모두 대피하라는 방송이 들려 왔지만 모두들 방송을 무시한 채 환자를 처치하였다.

의무 물자가 떨어지자 물자를 옮기기 위해 1, 2층을 왔다 갔다 거렸다. 언제 포탄이 떨어질 줄 몰라 두려웠지만 잠깐 이었다. 의무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문광욱 일병을 보았다.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두려웠다. 몸 색깔이 파랗게 변해가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환자 후송을 위해 의무실 밖에 있던 창고에서 들것을 들고 와야 했다. 정말 밖에 나가기가 싫었지만 발은 벌써 창고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들것을 들고 의무실로 돌아오는데 몸이 무거워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언제 포탄이 내 옆으로 떨어질 줄 몰라 들것을 버리고 의무실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환자들을 포기하기 싫었다. 들것을 옮기고 문광욱 일병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정말 화가 났다. 북한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한 인생을 빼앗아 가는지 도대체 왜 이 수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잘못 했고 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자 후송이 시작됐다. 4인조로 들것에 환자를 올려 AMB에 환자를 옮겼다. 피범벅이 된 AMB는 배 터로 후송을 하러 갔고 그사이 환자를 재정렬 하고 군의관님들은 환자들을 진료했다. 깁스를 씌우기도 하고 파편을 빼기도 하였다.

그리고 모든 환자들에게 항생제를 한방씩 놓았다. 후송을 갔던 AMB가 돌아오고 2차 후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문광욱 일병의 시신도 후송 되었다. 그를 AMB에 싣는 동안 정말 미안했다 살리지 못해서 차갑고 파랗게 변한 그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무실 옆 건물인 교육대의 연료탱크가 터지고 교육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우리는 바로 가지고 있던 소화기를 모두 모아 주위의 불을 진화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환자를 후송한 뒤 일은 일단락 됐다.

하늘은 연기 때문에 어두웠고 해는 저물어 갔다. 모두 지쳐있었다. 전부 앉아 뻗었다. 연평도는 언제 포탄이 떨어졌냐는 둥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공기는 화약 냄새와 연기로 인해 목이 따가울 정도로 매캐했다. 나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연평도를 보았다. 그때 보았던 연평도는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불타는 연평도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다치고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우리는 그들을 위해 쌀과 비료와 소 등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돌려받은 건 수십 발의 포탄이다. 그들은 수많은 생명과 아름다운 연평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평화를 빼앗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