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이 준 만남·지혜·추억 `철부지 모델→모범생 모델' 변신 <국방일보 / 2010.12.23>

모델라인 본관이 자리 잡고 있는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뒤편은 모델, 에이전시 직원, 연예인들로 넘쳐난다. 이재연 대표를 인터뷰하던 날, 거리에서 수많은 패션 피플들을 만났다. 그래서일까? 왠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녹차보다는 아로마 향이 짙게 풍기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 안심이 될 듯싶었다. 그렇지만 필자의 생각이 짧았다. 이 대표는 그 어느 것도 다 어울릴 만큼 우아함과 소탈함을 두루 갖춘 진짜 대한민국 모던보이였기 때문이다.

이재연.jpg

경주 감포 초소 근무 당시 전우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재연(가운데) 대표

이재연_01.jpg

올해도 어김없이 모델라인 주최로 지난 14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제26회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시상식에서
이재연(가운데) 대표와 송창의·유승호·조여정 등 백조상
수상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재연 대표는
1946년 강원 원주 출생. 제1세대 모델로 71년 데뷔 후 79년 88 패션스튜디오 오픈. 83년 모델라인을 설립하고 그해 베스트 드레서(백조상) 시상식을 출범시켰다. 84년 국내 최초 패션쇼 전문 소극장을 개관했으며 88년 서울올림픽 오프닝 행사를 기획, 연출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과 유럽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벌이던 중 2005년 폐암 투병과 지인에게 당한 배신으로 험난한 5년을 보냈으나 올해 새 사옥 입주와 함께 패션 사진전을 열어 호평받았다.

 1946년 강원 원주 태생인 이 대표는 자신을 원주 최고의 명물이었다고 소개했다. 자그마한 동네에서 알려진 것이 아니라 원주 일대를 누빌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 아픈 지난날이지만 화목한 가정, 따듯한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웠던 그에게 어린 날의 치기는 고이 접어 묻어둘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이야기도 잠시, 이 대표는 ‘안 되면 될 때까지 모르면 알 때까지’라는 구호로 중무장한 해병대에 사실 도망치듯 입대했다며 크게 웃었다.

 “64년 겨울에 입대했지요. 정말 오래전 일이군요. 사회에서 사고 친 일이 있었는데 자원입대가 가능했던 해병대에 얼른 들어왔던 거지요. (하하) 경남 진해에서 신병 교육이 있던 당시 동장군이 떡 하니 버티고 있을 그 추운 날 그것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속옷만 입고 연못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추운데 조교가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라는 겁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얼마나 눈물이 납니까? 다들 몇 시간 동안 울었을 겁니다.”

 그는 그때 가족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날 철없이 보냈던 청소년 시절이 떠올랐다고도 했다. 그 이후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 원망보다 이해로,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힘들수록 더욱 기대게 되는 것이 핏줄이라 했던가? 이 대표에게 해병대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품게 한 작은 등불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힘든 훈련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귀신 잡는 해병, 대한민국 남성의 영원한 로망인 해병대 훈련 이야기는 탄성의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해병이 되는 길이라 할 수 있는 상남훈련소에서 정신없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계곡, 눈물 고지 등을 지금 해병들은 아는지 모르겠군요. 웬만큼 훈련 강도가 셌던 게 아닙니다. 땀범벅이 된 훈련복에 하얗게 마른 소금기가 쉬지 않고 앉았으니 나중에는 푸석거릴 정도였죠. (하하)

해병은 실전과 같은 훈련을 계속해야 하니 실탄이 장착된 총을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고 방지차원에서 조금도 딴생각을 못 하게 조교들은 끝없이 훈련을 시키더군요. 야간전투·수색훈련·독도법·수류탄 투척·박격포 사격·가스훈련 등으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철모에 물을 떠서 머리에 올려놓아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4열 종대로 서 있는데 날씨가 추우니까 온몸에 한기가 드는 거죠. 이가 덜덜덜 떨리는데 옆 동기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면 물을 쏟을 수 없잖아요. 정신력으로 버텼던 거죠. 악으로, 깡으로. 천자봉 기합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모포 한 장에 소대원 전원이 올라가야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겠지만, 당시만 해도 얼마나 무서웠던지요.”

 이 대표에게 훈련병 시절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당시 소대장과도 여전히 연락한다며 60여 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준 것은 인생 목표라 할 수 있는 ‘만남’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군 생활 이후 사람들과의 만남을 ‘인생의 역사를 만난다’라고 생각한다며 강조, 또 강조했다. 정말 군대가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고마워하면서 인생의 나침반이자 삶의 등대와도 같았던 그 당시가 있었기에 오늘날 모델라인 이재연이 건재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연평도 포격도발로 목숨을 잃은 해병대 전우의 기사를 읽었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올바른 국가관을 재정립해야 하지 않을까요? 북한은 분명 동포이기는 하지만 언제 또다시 이런 만행을 저지를지 모르잖아요. 2000년대 들어와서 우리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라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 군 복무기간을 줄이는 데만 발 벗고 나서는 것 아닌가요? 내가 지켜야 할 내 나라, 내 민족이지 않습니까? 군인으로서 판단력이 서려면 최소 1년 6개월은 지내야 할 텐데 신병 훈련 기간을 빼면 입대하자마자 제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거 같네요.”

 경험하지 못한 자와 경험한 자의 견해 차이는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혜라는 것은 경험한 자만이 나눠줄 수 있는 인생의 가치다. 그래서 걸어온 길을 돌아볼 줄 아는 이 대표는 인생 후배들에게 실수하지 않는 길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다.

제대 후 우연히 명동에서 시작하게 된 모델일, 맵시·마음씨·말씨라고 하는 3C를 마음에 담고 시작한 모델 에이전시 사업, 그리고 한성대 대학원에서 시작한 교수직까지 더듬어보면 그의 삶은 정말 드라마틱하면서도 파란만장했다.

 이젠 앞만 볼 것이 아니라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로 후배들에게 지혜를 전하고 싶다는 모델라인 이 대표. 아름다운 사람에게서는 이토록 진한 향기가 피어나기 때문에 만나고 만나도 또 만나고 싶은 열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로마 향 가득 배어 나왔던 아메리카노는 이미 식어버렸지만, 인터뷰가 끝나고도 이재연 향기는 그 자리에서 전혀 사라지지 않고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조기준 씬플레이빌 기자 iammaximus@naver.co>


  1. 연평도전투수기 -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다

    해병대지47호 - 연평도포격도발 특집 전투수기 연평부대 제7포병중대장 대위 김정수 해병대 연평부대 포 7중대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포병중대’다. 전군 최초로 대한민국이 개발한 세계적인 명품 K-9 자주포가 배치됐다는 것을 알고 서북도서에서의 군복무로 자부심을 갖도록 내가 붙인 애칭이다. 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5389
    Read More
  2. 포화속의 어린이를 살려라!

    해병대지 37호 영웅들의 이야기 - 속의 어린이를 살려라! 글 대위 이기원 사진 편집팀 무자비한 북한군의 포격 속 나의 안위보다 타인의 목숨을 생각한 이 시대의 군인들 무자비한 북한군의 포격 속에서도 연평도 해병대원들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타인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연평부대 인사과장 남정일 소령과 군숙...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6425
    Read More
  3. 해병대정신은 화염보다 뜨거웠다 - 영웅들의 이야기

    영웅들의 이야기 / 해병대지 37호 - 연평도포격도발 특집 글-중위 김창완 / 사진-대위 이성홍 등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故 서정우 하사와 故 문광욱 일병. 꽃다운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공격이 있은지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간다. 아픔은 시간의 물결에 씻겨 나간다고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청...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5875
    Read More
  4. 해병정신 김정식씨, ‘남돕는 일은 이미 일상’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해병대 제대 후 칼과 도장나무를 들고 오로지 생활고(生活苦)를 해결하기 위해 연평도, 백령도 등지로 이곳저곳 다녔던 기억은 이제 아련한 옛 추억이 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당시의 일이 시련으로 남아 있다. ◇ 김정식씨가 평생모은 수석 전시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Date2010.12.30 By운영자 Views4718
    Read More
  5. 해병대복무한 이재연 모델라인 대표

    軍이 준 만남·지혜·추억 `철부지 모델→모범생 모델' 변신 <국방일보 / 2010.12.23> 모델라인 본관이 자리 잡고 있는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뒤편은 모델, 에이전시 직원, 연예인들로 넘쳐난다. 이재연 대표를 인터뷰하던 날, 거리에서 수많은 패션 피플들을 만났다. 그래서일까? 왠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녹차보다는 아...
    Date2010.12.29 By운영자 Views9027
    Read More
  6. 연평도 포격도발 부상한 병사 첫 전역자, 김용섭해병

    [조선일보] 2010년 12월 28일(화) 오전 03:0 27일 오후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한 집에서 예비역 병장 김용섭(22)씨가 해병대 연평부대 전우들과 찍은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달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부상한 병사 가운데 첫 전역자다. 민간인으로 돌아온 김씨는 "부모님을 뵈어서 기쁘지만, 아...
    Date2010.12.28 By운영자 Views6677
    Read More
  7. 전우회와 독립추진위의 두 신문광고

    해병대전우회의 조선일보광고와 해병대독립추진위의 동아일보 광고 캡춰사진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Date2010.12.27 By운영자 Views7546
    Read More
  8. 해병대의 두 장군

    해병대의 두 장군 나는 1997년 가을 해병대 사령부와 해병 제1사단 및 제2사단의 위관장교들을 대상으로 "공격 시 소총중대"라는 제목으로 90분 간씩 순회교육으로 강의한 일이 있다. 이 강의는 나의 제언으로 당시의 해병대 사령관(전도봉 장군)의 요청으로 순회교육 일정에 의거 실시되었다. 이 강의는 1958년 2월 미 제1...
    Date2010.12.22 By운영자 Views11038
    Read More
  9. 울지마라 해병이여 - 짐홀(533기)님의 연필화

    그림 크기 : 47 * 39 울지마라 해병이여..... 그대의 눈물은....... 오래전 그저 그런 해병이었던 이 못난 선배 가슴을 찢어 놓는구나........ 아무것도 그대들에게 해줄수 없는 못난 선배는..... 그저 목메이는 슬픔과 가슴속 깊이 터져나오는 증오만 가득할 뿐이네...... 고 서 정우 하사 고 문 광욱 일병 우리는 기어코 ...
    Date2010.12.20 By운영자 Views8447
    Read More
  10. 해병대 - 강원일보 언중언

    군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는 것은 국방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명예와 충성심으로 상징되는 군은 군기와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이다. 전장에서 병사의 일탈과 실수에 일벌백계의 처단을 내리고 흩어지는 기세를 결집했던 극단의 처방은 모두 군기와 사기였다. ▼춘추전국시대 무패신화의 장군, 오기...
    Date2010.12.20 By운영자 Views4315
    Read More
  11. No Image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 믿음직한 아들

    연평도 해병대 포7중대(중대장 김정수 대위)가 있는한 대한민국 안보는 이상없습니다. 북한의 기습 폭격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신속하게 중대원들을 지휘 큰피해 없이 대응 사격을 할수 있었는것은 불굴의 해병대 정신과 중대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지 않으면 있을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정말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런 ...
    Date2010.12.14 By지킴이 Views4235
    Read More
  12. No Image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사수 병장 정병문

    ▶제7포병중대 3포 사수 병장 정병문훈련이 끝나서 한결 수월한 기분으로 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기준 3포로서 아쉽게 늦게 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수입을 하던 도중 타 중대 사격소리인가 하는 포성소리가 들렸다. 우린 정리를 하며 서로 격려의 말을 주고받으며 4포가 불발탄 처리절차를 잘 해야 할 텐데 하며 아쉬...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5508
    Read More
  13. No Image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조종병 상병 박태민

    ▶제7포병중대 자주포 조종병 상병 박태민11월 23일. 이 날은 휴가를 나가는 날이었다. 모든 걸 마치고 배터에 가서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는데 배가 보이기 시작하는 동시에 마을 쪽에 포탄이 한두 개 떨어지더니, 소나기가 오듯 수십 발의 포탄이 마을을 뒤엎었다. 순식간에 건물들이 날라 다니고 이곳저곳에...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7442
    Read More
  14. No Image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인사병 병장 백종협

    ▶ 본부중대 인사병 병장 백종협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6시30분 총기상과 동시에 조별과업 정렬을 떠났다. 간단한 인원 파악 및 국군도수체조, 조별과업을 부여받고 해산을 한 뒤 근무표를 확인했는데, 근무표를 보니 13시~16시까지 주간 3직 근무였다. 오늘 14시에 대 해상사격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3475
    Read More
  15.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의무병 이병 윤성문,강병욱

    ▶의무실 의무병 이병 윤성문 윤성문 이병 2010년 11월 23일 포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훈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기가 파편에 맞는 것을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여기저기에서 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공포는 물 밀...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477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22 Next
/ 2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