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령 조충현 (당시 해군대학 전쟁연습실에서 근무)
연초에 결심한 것 중 하나가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작년까지 마라톤 경기에 참가했는데 무언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자 생각해 낸 것이 철인3종 경기였다.
철인3종 경기는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쉼 없이 이어서 달리는 경기를 말한다. 극한 스포츠의 대명사로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이다. 진정한 철인을 뜻하는 Iron Man 코스에서부터 올림픽코스, 스프린트코스,O2코스 등 그 거리에 따라 다양한 코스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중화가 되지 않은 스포츠로서 연간 10여회의 대회가 개최되며, 주로 전문선수들과 일부 동호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철인 3종 경기는 해병대의 주 임무인 상륙작전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수영’은 함안이동수단(AAV, IBS 등)을 이용하여 바다에서 육지로 돌격하는 것이며, ‘사이클’은육상에상륙하여고속기동수단(전차, AAV 등)을 이용하여 목표지역으로 진격하는 모습과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달리기’는 최종목표지역 확보를 위해 돌격하는 보병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호인이나 클럽의 도움 없이 혼자 시작하려니 막막한 감이 들었지만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생각으로 거금(?)
9만원을 들여‘대한 철인3종 경기연맹’에 선수가입을 하고 5월 3일에 개최예정인 통영경기에 참가신청을 했다.
코스는 일반적으로 동호인들이 많이 참가하는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를 선택했다.
연초부터 대회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사이클 연습과 틈틈이 달리기 연습을 하였으며,
주 2회 수영장에서 장거리 수영을 연습하면서 종목별 기본능력을 갖추었다. 4월 들어서는 휴일에 수영,사이클, 달리기를 이어서 달리는 종합연습으로 최종준비를 해나갔다.
5월 3일, 드디어 출전일이 다가왔다. 온가족과 함께 가족여행 겸 길을 떠났다. 비가 흩날리는 날씨 속에 대회는 강행되었다. 처음 출전하는 대회,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아내와 아들·딸의 응원 속에 바닷속으로 힘차게 뛰어 들었다.
5월의 바다는 아직 차가웠다. 잠수복을 입었지만 제법 한기가 느껴졌다. 바다수영은 실내 수영장과 달리 방향유지가 어려웠으며, 수백명이 한꺼번에 출발하다
보니 서로 엉키고 발에 부딪치는 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연습한데로 반환점을 향해 힘차게 팔을 저어 나갔다. 불
규칙한 파도와 바닷물의 짠 맛에서 옛날 생도시설 수영훈련의 추억을 느끼는 사이 반환점을 돌아 종착지점에 도착했다.
이어서 잠수복을 벗고 사이클을 탔다. 처음 통영대교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른다. 다리가 조금 무거웠지만 길가시민들의 환호에 힘입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래도 좋은(?) 사이클을 탄 사람들이 계속 추월해 나간다.
욕심내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크고 작은 언덕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뒤로 물러간다. 중반이 지나 컨디션이 안정되면서 조금씩 속도를 내며 사람들을 추월해 나갈 수 있었다. 저렴한 자전거를 타고 이렇게 힘있게 달릴 수 있는 것은 그간 훈련을 착실히 해온 결과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생겼다. 통영시 산양면 일대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길은 한산도와 한려수도를 아우르는 너무나 멋진 길이 었다. 옛날 해병대 1기 선배님(?) 이라는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왜군을 무찌르던 바다, 한국전쟁 중 한국 해병대 단독 상륙작전이 펼쳐진 그 바다를 보면서 달리는 기분은 너무나 상쾌하였다. 가슴 벅찬 기쁨으로 흩날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달리다보니 어느덧 바꿈터에 도착했다.
마지막 달리기가 남았다. 달리기는 다른 종목보다 자신있는 종목이었다. 초반부터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5Km 지점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경련이 일었다. 속도를 늦추고 페이스를 조절하였다. 도로주변에 근육경력과 피로로 중도 포기한 사람들이 누워있다. 반환점을 돌면서 허벅지 경련이 사라지자 다시 힘을 모아 마지막 스퍼트를
했다. 멀리 최종 골인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아들과 딸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기록은 2시간 49분, 목표했던
3시간대 완주를 달성하였다. 아내와 아이들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면서 2009년 목표했던 것중의 하나를 이루
었다는 감격이 찾아왔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좋게 느껴지는 다리의 피로와 곤히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또 다른 행복을 느낀다.
삶이 어렵고 생활이 팍팍하다할 지라도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가끔 잊고 살지만‘가족은 축복’임에 틀림없다.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은 오늘, 82세 할아버지께서 완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
한다.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인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해병이지 않은가? 해병이여!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라.
꿈은 꾸는 자의 몫이며 노력하는 자, 그 꿈을 이룰 것이다.
먼 훗날 고희 기념 철인3종 경기 출전을 목표로 오늘도 나는 달린다.
가족의 사랑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