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이장훈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으로 4시간 가량을 오면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에 주둔하고 있는 우리 62대대에서 나의 해병대 생활은 시작되었다.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2년을 다니다가 장교이신 아버지의 권유와 해병대의 매력에 반해온 나에겐 해병대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다들 해외에서 유학을 하다 와서 힘들지 않느냐 묻지만, 오히려 중대에선 유학생활의 에피소드, 영어공부법 등 많은 관심을 가져 주어 오히려 이병생활이 너무도 즐거웠고, 해안중대에서의 초병근무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전투배치, 초동조치훈련, 주·야간 전원투입등으로 선·후임, 소초원들간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진 계기가 되어 군생활 중의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으며,책임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항상 좋은일만 있는건 아니었다. 낯선 환경과 문화의 차이, 해안근무 중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의 이별도 겪었고, 상심실성 빈맥으로 육지에 나가 수술을 받기도 하였지만 선임과 소초 간부들의 위로 및 격려, 그리고 이용훈 전 대대장님의 배려로 소총중대에서 본부중대로, 작전병으로 보직을 맡게되어 수술 후 부대에 복귀하여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정말로 해병대에서의 최고의 경험은 아무래도 연합훈련통역지원 파견이었던것 같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통해 해병대에서도 통역장병을 교육 및 연합훈련 통역지원에 배치하게 되어, 뉴질랜드에서 살다온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져 포항 교육훈련단에서 통역장병 군사영어교육을 받은 후, 실제 ’09 KR/FE 훈련에 통역지원으로 참여하여 나에게 더없는 좋은 경험이였다. 영화에서 보던 미해병대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대감에 부풀었고 특히
한·미 해병대는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를 두어 한·미 해병대간의 상호협력 및 한반도 방어에 기여를 한다고 들어 정말 우리나라에서의 해병대의 중요한 역할에 두 어깨가 무거워졌다. 여담으로 대대본부건물과는 비교가 안되는 최신식 시설, 웅장한 그 상황실은 마치 내가 영화를 찍고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
미해병대는 군기가 있고 한국해병대 간부 및 대원들 에게도 호의적이여서 통역지원을 하는데 불편함은 없었으며, 전환브리핑 때 사령관님의 냉철한 판단과 명확한 지휘를 보고 정말 저분의 명령이라면 믿고 따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군복무를 기피하고 있지만,난 배울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막 전입 온 신병인 이병들부터 곧 전역하는 병장들까지 해안 분·소초에서 초병근무를 서는 해병들의 이름,특징을 기억하며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순찰 및 격려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우리 전황기 대대장님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대를 위해 철야로 헌신하는 중대장님과 참모들의 뜨거운 열정,훈련에 열중하며 선·후임간의 깊은 신뢰와 멋진 우정을 보며 전역 후 내가 사회에 나아가 어떠한 자세, 정신으로 임해야할지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 산 교육, 이 군생활은 나의 인생의 지침이 된 것 같다.
혹, 해외 유학생들 중에서 군복무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에겐, 작지만 강하고 뜨거운 열정, 20대의 패기를 불사르는 열정과 강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해병대를 꼭 권유해주고 싶다. 그리고 제가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하는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게 이글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강 62대대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