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사천강 지구는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2년 3월부터 1953년 7월 휴전까지 대한민국 해병대가 중공군의 공세로부터‘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사수한 곳이다. 장기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로 해병대 7대 전투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투.

rokmc37_012.jpg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개최될 당시, 피아간 더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전초진지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수도 서울 방위에 역점을 둔 군사적 보완책의 일환으로 해병대 제1연대는 1952년 3월 17일부터 서부전선 장단 지구로 투입되었다. 이후 1953년 7월 휴전 시까지 1년 4개월 동안 판문점에서 사천강까지 약 11km에 달하는 주저항선에서 중공군 2개 사단과 목숨을 건 영토쟁탈전을 펼친 것이 바로 ‘장단·사천강 지구전투’ 이다.

 

한 치의 땅도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해병대 1개 연대가 중공군 2개 사단을 격퇴한 것이다.
제1차부터 4차까지 나눌 만큼 장기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해병대는 적의 모든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수도 서울을 지키는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제1차 전투에서는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파주시 장단면 사천강 일대에서 연대장 김동하 대령을 필두로 중공군의 2차례에 걸친 기습공격과 3회에 걸친 야간 공격을 막아 내며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후 김석범 대령이 1연대장으로 보직한 이후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라는 전술로 적 대대규모의 공격을 역습으로 격퇴하며 2차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중공군의 역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자 해병대는 수도권 방어 임무의 중요성과 그 적임자로의 역할을 인정받는다. 해병대 제1연대가 제1전투단으로 재편성되며 공병중대, 전차중대 등이 보강되었고 제3차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유인 역습작전으로 또 한번 막아내는 전공을 세운다. 이후 4차 전투에서는 통영상륙작전의 영웅인 김성은 대령이 지휘권을 인계받아 중공군의 2차 공세의 전면공격을 막아내며 적의 전투의지를 상실시키고, 이 기회를 이용해 최대의 반격작전을 가해 큰 성과를 거둔다.
수도권 일대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낸 ‘장단·사천강 지구 전투’에서 해병대는 전사 776명, 부상 1938명의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우리 해병대는 중공군에게 14,017명의 전사자, 11,011명의 부상자 수에서 알 수 있듯 큰타격을 주며 현재의 서부전선과 수도 서울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에 해병대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은 물론 대한민국 국회로부터 감사장을 수여받는 등 그 전공을 인정받는다. 명실 공히 ‘무적해병’의 통을 이어가며 국민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57년이 지난 2010년 10월 16일 경기도 파주시 전공 선양비 일대에서 ‘장단·사천강 지구 전투’ 전승행사가 개최됐다. 이 행사는 이제는 노병이 된 당시 출전 장병들의 공적과 명예를 높이고, 희생된 전몰장병들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지역 안보행사로 마련되었다. 행사에는 해병대 부사령관과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총재, 파주시장 등 주요 인사,해병대 장병 6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전승 추모행사와 더불어 도라산 파로비 참배식 또한 함께 진행됐다.

rokmc37_013.jpg

“형님. 아우가 왔습니다. 형님”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형님을 목 놓아 부르는 노신사의 모습에 참가자 모두는 57년 전 그들이 흘린 피의의미를 생각하며 숙연해졌다.
추모행사가 끝난 뒤 파주개성인삼축제에서는 안보체험관을 운영하여 전투식량 등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며 국민과 함께하는 해병대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주무대에서 열린 해병대 군악대 공연과 의장대 시범은 국민들에게 60년 전 나라를 지킨 해병대가 여전히 든든하게 그들을 지키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해병대지 37호>


  1. KBS 열린토론 해병대 독립과 4군 체제 개편, 필요한가? 전문

    KBS 열린토론 해병대 독립과 4군 체제 개편, 필요한가? 전문 ▒ 패 널 (가나다순) ▒ 김성전 - 국방정책연구소 소장 김열수 -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소장 신학용 - 민주당 국회의원 안희경 - 해병대전우회중앙회 사무총장, 前해병대 부사령관 ꡒ 왕상한 / 진행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계기로 해병대 지원율이 사상 최고를 ...
    Date2011.02.18 By운영자 Views11878
    Read More
  2. 악! 해병대 최선입니다, 확실해요

    “어렸을 때부터 해병대 팔각모와 빨간 명찰을 꿈꿨습니다. 연평도 사태를 보며 꿈은 절박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 떨어 지면 될 때까지 지원할 겁니다. 스물한 살 청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원할 겁니다”라고 외치는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런 청년이 한둘이 아니다. 1월 19일 서울 영등포...
    Date2011.02.14 By운영자 Views6177
    Read More
  3. 해병 전역자는 21세기 홍길동?

    “애걔걔, 해군이잖아! 아빠는 순 뻥쟁이야. ” 평소 ‘귀신잡는 해병’ 출신임을 중학생 아들에게 자랑해온 40대 회사원인 김아무개씨는 얼마전 아들 앞에서 무안을 당했다. 지하철역 무인민원발급기에서 해병 출신이라고 뽑내려고 병적 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김씨의 병적증명서 ‘군별’에 ‘해군’으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
    Date2011.02.12 By운영자 Views6405
    Read More
  4. 대한민국 최정예 해병대원들은 평소에 무엇을 하나?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해병대 지원자가 늘어났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개인의 미래만 걱정 하고 안보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니 그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실로 놀랍더군요. 이 젊은이들의 깊은 애국심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으로 ...
    Date2011.02.10 By운영자 Views5992
    Read More
  5. 우리 사촌은 모두 해병대원

    김성민 이병과 할머니 이종옥씨(74 오른쪽 두번째)의 가족이 신병 수료식을 마친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해병대교육훈련단) "필승! 6번째 해병대 가족이 됐음을 신고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과 호국충성 해병대의 명예와 전통을 위해 충성스런 해병이 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세계최정예해병...
    Date2011.02.10 By운영자 Views3362
    Read More
  6. 육십 남자 팔뚝의 'ROKMC'

    < 문갑식 스포츠부장> 스포츠(Sports)라는 말은 라틴어가 어원(語源)이라고 한다. '물건을 운반한다'는 뜻인데 프랑스어와 영어에선 '엄하고 가혹한 작업이나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 전환을 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힘껏 몸을 써 땀 흘리면 기분이 바뀌지만 감동의 드라마가 없다면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 기사 데스...
    Date2011.01.22 By운영자 Views7127
    Read More
  7. 해병대전방소초로부터 날아온 편지

    지난 10일 저희 달나시 여용준 기자와 함께 김포시에 자리한 해병대 제2사단 청룡부대의 한 소초를 다녀왔는데요. 저는 수도권 서부지역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해병대 대원들의 늠름한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봤습니다. ※ 소초 : 적은 인원으로 중요 도로나 지점의 경계 임무를 맡은 부대. 관련글 - 대한민국 최정예 해병대원...
    Date2011.01.21 By박희철 Views10074
    Read More
  8. 서울대해병전우회가 말하는 해병대 열풍

    19일 서울대 캠퍼스 안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울대해병전우회원들이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몰리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성수(31)·하승창(30)·이도호(29)씨. 4.5대1. 이달의 해병대 지원 경쟁률이다.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 2명이 전사한 상황에서 ...
    Date2011.01.21 By운영자 Views6259
    Read More
  9. 해병대 전우가 불러낸 복서출신 이승철의 연극 인생 30년

    【인터뷰365 서영석】 “배우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탤런트 이청아 아빠” 이순으로 접어든 중진 연극배우 이승철. 서울 동숭동 대학로 무대의 중심인물로 30여년 활동해 온 그가 만년에 이르러 경기도립극단의 지도위원으로 옮겨가 수원의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배우 인생 2막의 열정을 다시금 불사르고 있다. 주어진 배역...
    Date2011.01.04 By운영자 Views6966
    Read More
  10. 디자이너 고태용

    화려해 보이는 디자이너의 세계, 그 이면에 숨겨진 고난과 역경 해병대 정신으로 이를 극복해낸 서른 살 젊은이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 <해병대지 글 중위 김창완 사진 편집팀>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의상을 협찬한 디자이너, 서울 패션위크 최연소 참가 디자이너 등 고태용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여성스럽고 감성적...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5992
    Read More
  11. 열정의 화가 한국의 고갱 최동렬

    화가 최동열(60)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그림공부를 해본 적 없는 그는 어느 날 돌아보니 화가가 되어 있었고, 어느 날 돌아보니 뉴욕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미국에서 뜬 그는 ‘한국의 고갱’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화려하게 국내로 데뷔한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그...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6675
    Read More
  12. 외곬인생 요리사 김원일

    해병대 정신으로 독하게 달려온 그의 인생.그 인생을 알고 먹는 그의 요리는 더 맛있다. “내 요리를 평가할 사람은 국내에는 없어. 내 책도 마찬가지고. 그 누가 감히 김원일을 평가하겠나.” 요리사 김원일(53)은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다. 짐작은 하고 찾아간 인터뷰였지만, 그 자신만만함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7992
    Read More
  13. 해병대가 낳은 세계적 예술가 - 조선의 칠장이 전용복

    “나는한국인이다” 조선의 칠장이 전용복 해병대가 낳은 세계적 예술가.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분명히 얘기하지만 나는 할 수 있소. 백 번 물어봐도 내 대답은 똑같을 거요. 불가능하다고 한 사람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 줄 압니까? 그들은 목숨을 걸지 않았고 나는 목숨을 걸었다는 점이오.” ...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5031
    Read More
  14. 포니대령과 현봉학박사

    글 /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 10만여 명의 목숨을 구해낸 흥남철수작전의 두 영웅 포니대령과 현봉학 박사 미 해병대 포니 대령 에드워드 포니(Edward Forney) 대령은 57년 내가 사령부 참모부장이던 시절에 수석고문으로서 함께 일해 당시 인원(T/O)과 장비(T/E) 등 해병대의 기반을 수립했다. 내가 만난 포니 대령은 우리 ...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8446
    Read More
  15. 장단.사천강천투를 기억하다.

    장단·사천강 지구는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2년 3월부터 1953년 7월 휴전까지 대한민국 해병대가 중공군의 공세로부터‘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사수한 곳이다. 장기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로 해병대 7대 전투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투.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개최될 당시, 피아간...
    Date2011.01.03 By운영자 Views456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22 Next
/ 2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