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지덕칠 중사(추서계급)의 무훈을 기리는 동상. 상자 안의 흑백사진은 고 지 중사의 모습이다.
베트남에 파병된 청룡부대의 1대대는 1966년 2월 1일 꽝웅아이 성 바딴간 반도 지역을 흐르는 강 하구에서 수로를 탐색하는 미 해병대 수중폭파반 (UDT) 활동을 보호하는 ‘강구(江口) 작전’에 투입되었다.
대대는 헬기로 기동해 강 주변에 착륙, 수색작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2중대 3소대가 계획된 목표를 향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적의 집중 사격을 받았다. 착륙한 곳이 하필이면 적진이었다. 적은 숲속 여기저기서 출현했다. 빗발치는 탄우 속에 사방에서 부상병들 비명이 들려왔다.
3소대 첨병분대 소속 위생 부사관은 총탄을 무릅쓰고 부상자에게 달려가 응급 치료를 했다. 그 순간 위생 부사관 인근에 수류탄이 날아와 다리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포위망은 좁아들었다. 위기를 느낀 그는 적병을 향해 소총을 사격, 순식간에 10여 명의 적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도 가슴에 적탄을 맞고 움찔했다. 그래도 사격을 계속해 실탄이 다 떨어진 뒤에야 주저앉았다.
그 사이 지원부대 헬기가 오고 갔지만 여의치 않았다. 또다른 구원부대가 나타나자 베트콩들은 금세 자취를 감춰 버렸다. 위생부사관은 온몸에 여덟 발의 총탄을 맞은 상태에서도 다른 전우 여섯 명을 먼저 후송시켰다. 그가 헬기에 태워졌을 때 희미하게 맥이 뛰고 있었지만 과다출혈로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작전에서 제3소대 46명 중 13 명 전사, 10명 부상, 증원 병력에서도 7명 전사, 4명 부상 등 피해만 입었다.
부상병을 돌보는데 그치지 않고 전우를 돌보고 지킨 이 위생 부사관이 27 세의 젊은 지덕칠 하사였다. 부대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지 하사의 희생과 용맹은 전우를 구하고 크게 빛났다. 1967년 4월 21일 중사로 1계급 특진하는 한편 최고의 무훈을 기리는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그는 베트남의 붉은 전선에 자유와 정의를 심어놓고 눈부신 의기와 사랑의 피로 불멸의 이름을 새기고 간다.'
1967년 8월 3일 건립된 고인의 동상에 쓰여진 비문이다.<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