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를 선택한 직업군인 부녀이야기

by 운영자 posted Jun 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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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해병이시다. 아버지 몸에 밴 군대의 퀴퀴한 냄새며, 땀 냄새가 좋았다.’ 딸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며 자연스럽게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만큼 부녀지간의 애정이 두터운 아버지 이명진 원사와 딸 이미희 대위의 속내를 한번 들어보자.

Q. 먼저 아버님과 따님이 이곳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하고 계시는 일이 궁금합니다.

 

아버지: 저는 74년도에 입대해 교관 부사관으로 시작해  해병대 여러 부대에 있다가 지금 포항 교육훈련단에서 인사 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35년간 군생활 하고 이제 내년에 전역을 앞두고 있어요.

딸: 저는 02년도에 임관했고요 여기서 장교 교육 소대장을 맡고 지금은 교육훈련단에서 교육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달에 전역 앞두고 있어요.

 


Q. 다른 군도 있는데 특별히 해병대를 지원하신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아버지: 하하. 뭐 남들도 그렇지만 ‘내가 최고다’란 생각 때문에요. 골목에서는 내가 최고다, 나보다 강한 사람 없다는 생각에 지원했어요. 그만큼 체력에 자신 있었고. 또 사촌 형이 월남전 때 청룡부대에 다녀오셔서 자연스레 해병에 매력을 느꼈어요.

딸: 전 아버지가 해병이신 것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서 다른 여자들보다 거부감이 없었어요. 오히려 익숙한 부분이 많았죠. 전 원래부터 군인 하고 싶었어요. 사실 해병에 지원할 때 엄마는 아셨지만 아빠한텐 말씀 못 드렸어요. 아빠는 제가 여군하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셨어요. 그냥 평범하게 살길 바라셨죠.
 

 


Q. 따님이 해병대 지원하는 걸 왜 반대하셨어요?

 

아버지: 그 시절에 부모로서 어느 부모가 딸을 선뜻 군인 시키겠어요. 그냥 평범하게 좋은남자 만나서 잘 살길 바랐죠. 또 우리 딸이 공부를 잘했어요. 그래서 좀 더 사회적으로도 더 인정받는 직업 갖기를 내심 바랐어요.
딸이 말 안 해줘서 몰랐는데, 내가 부산 병무청에서 해병 모병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동료가 ‘자네 딸 지원했더라’고 말해서 알았어요. 뭐 준비한다고 공부하길래 난 군무원 준비하는 줄로만 알았지. 하하.

딸: 아무래도 해병대라 반대하셨던 것 같아요. 아직도 사회 시선은 여자가 해병대라고 하면 많이 놀라더라고요. 사람들이 오도된 해병대 문화를 알고 있는데 저는 그 어느 군보다도 해병대가 여군에 대해서만큼은 체계가 잘 잡혀있다고 생각해요.

 


Q. 그런데도 장기복무 안하시고 곧 전역하시잖아요?

 

딸: 제도적인 문제 때문이에요. 우선 해병대 경우에 장기 선발자 수가 적어요. 나가서 대학원에서 심리 공부해서 군에서 상담관으로 일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현지 기본권 상담관보단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 남편도 해병대 장교로 부부군인이다 보니 같이 군 생활 하는데 어려움도 커요. 그러다 보니 가정이 우선이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어찌됐건 다른 방향으로도 군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아버지: 가족도 해병대 정신으로 지켜야죠. 결혼 했으니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고 깨지지 않게 하는 게 가장으로서 역할이라고 봐요.


Q. 아무래도 따님을 해병대에 보내면서 마음 고생도 심하셨을 것 같아요. 언제가 가장 마음이 아프셨나요?

 

아버지: 내 딸이지만 해병대 교육 과정을 못 넘을 줄 알았어요. 워낙 어렵고 고되니까. 그래도 어떻게 해요. 지원했다는데. 한번 지원 했으면 그래도 붙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저녁마다 따로 구보시켰죠. 그때 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나중에 훈련소 입소한 후에 몰래 뒤에서 훔쳐보니까 또 잘 따라 하더라고요.
훈련 4주차 때, ‘부녀 해병대’로 국방일보에서 취재 나왔을 때 기회 봐서 딸한테 뭐좀 먹이려고 물어보니까 밥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간식으로 먹으라고 찰떡파이를 몰래 주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어버린 거 있죠. 그 때 참 마음이 아팠어요.
그리고 딸이 천리행군 하러 갈 때, 그때 딸이 무릎 수술을 해서 아무래도 무리가 있겠다 싶었어요. 또 군화 신고 하면 발 모양이 바뀐대서 몰래 비슷한 모양의 등산화를 사줘서 보냈더니 새 것 그대로 가지고 나오더라고요.

 


Q.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는데요, 아버님한테 속상하거나 서운했던 적은 없으셨어요?

 

딸: 서운한 것은 전혀 없어요. 전 아빠의 모포나 침낭 냄새가 참 좋았거든요. 아빠한테서 그런 냄새 나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아빠가 군인이라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고 자랑스러웠고요. 한 곳에서 있다 보니까 아버지께서 보이지 않게 도와주시는 게 많아서 너무 감사하죠.
또 어렸을 때 아버지가 부대 전출 다니실 때도 전 항상 같이 다녔어요. 그러다 보면 전학도 자주 다니게 되는 게 그런 부분도 전혀 아버지한테 원망하거나 그런 거 없어요. 오히려 적응력도 더 좋아졌고요. 연평도에 있었을 때의 기억도 좋은 추억으로 가지고 있어요. 이것 역시 아빠가 제게 주신 좋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요.

 


Q. 같은 곳에서 근무하시는데 두 분의 계급이 차이가 나다보니까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 일부러 부딪힐 일을 안 만들어요. 의도적으로. 딸이 일하기 변하게 철저히 안 마주치려고 한 것도 있어요. 그리고 일단 직책 자체가 부딪힐 일이 별로 없고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자식보다는 신경을 더 써서 주의해야할 부분이 많아요. 회식을 하거나 해도 다 노출되다 보니까 혹시라도 나쁜 이야기가 날까봐 더 조심스럽죠. 그래서 일체 불편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해병대 정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 첫째, 조직에 배신하지 않는다. 둘째, 조직에 이유를 불문하고 충성한다. 이 두가지라고 생각해요.

딸: 저는 전우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정신이라고 봐요. 지금은 어감이 무서워 쓰지 않는 말이지만 교육훈련단에 있었던 슬로건 중에 ‘인간개조를 위한 용광로’란 말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 인터뷰 후... 나의 아버지, 나의 딸에게

아버지: 차라리 해군이라면 제복 자체가 포근한 느낌이고 해서 거기로 가지 싶었다. 그래도 지금껏 잘 견디고 해줘서 고맙다. 처음엔 걱정도 우려도 많았지만 잘한다는 소식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 이후에 또 군 관련 일을 한다고 하니 고맙다. 앞만 보고 열심히 성취하길 바란다. 출가외인이니 잘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아버지 한테 말하거라. 그동안 고맙고 수고했다.

딸: 짧게나마 군 생활을 해보니 한 직장에서 10년 버티기가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으면 못하는 군 생활을 35년이나 해온 아빠가 존경스럽다. 다른 주변 원사님들에게 끝까지 도움 많이 주시길 바라고 퇴역 후엔 이제 돈 걱정 마시고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 취미로라도 하시길 바란다. 어머니와도 그동안 못 보냈던 좋은 시간들 만드시길 바란다.
 


다 큰 딸과 아버지는 얼핏 어색해보이기도 했다. 어느 부녀가 안 그럴까. 그러나 이명기 원사와 이미희 대위는 같은 해병대 정신을 가지고 같은 생활을 공유하다 보니 그 어느 부녀보다도 더 끈끈한 사랑으로 연결돼 보였다. 이제 내년이면 두 분 모두 군 생활은 그만 두시겠지만 해병대 정신으로 제2의 인생을 누리시길 바란다.

 

 

 

 

 

 

 

☞ 글/사진 : 박양일 블로그 기자/신성원 블로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