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걔걔, 해군이잖아! 아빠는 순 뻥쟁이야. ”

평소 ‘귀신잡는 해병’ 출신임을 중학생 아들에게 자랑해온 40대 회사원인 김아무개씨는 얼마전 아들 앞에서 무안을 당했다. 지하철역 무인민원발급기에서 해병 출신이라고 뽑내려고 병적 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김씨의 병적증명서 ‘군별’에 ‘해군’으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해병대 전역자들이 각종 국가 공식 기록에서 해병대 전역자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 홍길동”이라고 한탄했다.

졸지에 뻥쟁이 아빠가 된 김씨 같은 해병 전역자의 불만과 민원에 대해 병무청은 현행 법령에 따라 해병전역자를 병적증명서에 ‘해군’으로 표기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병무청 훈령인 ‘병적증명서 발급규’정’을 보면, ‘군별’란은 국군조직법 제2조제1항에 따라 ‘육군’, ‘해군’, ‘공군’으로 기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군조직법 제2조 ‘국군의 조직’ ①국군은 육군, 해군 및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국군조직법이 해병을 군별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병 전역자는 병적증명서에 해병으로 표기될 수 없다. 현재 해병전역자가 병적증명서에 해병출신임을 표기를 원할 경우 별도로 병적증명서의 ‘군경력’란에 수기로 해병대 출신임을 표기하여 발급할 수 있다. 병무청은 만약 해병대가 독립되어 국군조직이 육·해·공군, 해병대 ‘4군 체제’로 변경돼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병적증명서의 군별란에 해병으로 발급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해병대 독립은 해병 현역, 예비역의 숙원이다. 지난해 6월 전역한 이홍희 해병대 사령관은 재임시절 국방부 출입 기자들을 만나면 “군 관련 기사 쓸 때 육·해·공군이라고 하지 말고, 육·해·공군, 해병대라고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곤 했다.

최근 국회 국방위 간사인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해병대 독립을 위하여 국군조직법, 군인사법,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군수품관리법, 군사법원법 등 총 5개 법안 개정안을 해병대 출신 여야 국회의원들과 함께 설 직후 공동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학용 의원이 입법 추진 중인 법안은 한 마디로 해병대를 육·해·공군과 별도의 제4군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해병대는 60년대 이후 ‘정치적 이유’로 생사를 오갔다.

해병대는 5·16 쿠데타의 선봉에 섰다. 김포의 해병 1여단장 김윤근 준장이 1개 대대 병력과 전차 중대를 이끌고 김포가도에 차량 헤드라이트를 켜고 서울에 들어왔다. 해병 제2중대는 한강 인도교에서 육군 헌병과 교전을 벌인 끝에 한강을 건넜다. 새벽 4시 넘어 서울 강북 도심에 들어온 해병대는 치안국(요즘 경찰청)과 중앙전신국 등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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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의 일등공신인 해병대는 1973년 10월10일 돌연 해체됐다. 해병대는 사령부가 없어지고, 진해 교육기지사령부, 보급정비단, 포항기지사령부 등 지원부대와 에비사단 구실을 하던 제2훈련단이 없어졌다. 해병대는 머리(사령부)와 손발이 떨어져 나가 몸통만 해군에 통합됐다.

해병대사령관 대신 해군본부 제2참모차장이란 지휘권 없는 참모를 해군참모총장 밑에 앉혀 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와 지침이 반영된 것이란게 다수설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왜 해병대를 해체한 것일까? 여러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정권안보설’이다.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쿠데타로 집권해, 정권 안보에 대한 피해망상적인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해병대를 제거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5·16 쿠데타 때 자신들을 도와 쿠데타를 성공시킨 주역이 해병대였기 때문이다. 일종의 토사구팽이라고 할까.

 

1972년 유신 독재 체제 구축 이후 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었다. 유신체제에 불만을 품은 미국이 박정희 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미 해병대와 강력한 유대를 맺고 있는 한국 해병대를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시 정권 핵심에서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1970년대 중반 박 대통령이 단독 핵개발과 주한미군 철수를 놓고 인권 외교를 내세운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일을 상기하면 이런 추정이 터무니없는 억측은 아닐 수도 있다.

1986년 11월 해병대 부활 작업이 국방부와 합참에서 시작됐다. 당시 군 내부에서 해군과 해병대가 전문성이 너무 다르고 해군 속의 해병대로 지휘권이 없어 전력관리가 힘들다는 문제제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 올 8월부터 보급될 해병대의 디지털 무늬 군복.

해병대 재창설 안건은 1987년 11월1일 확정됐다. 해병대가 부활한 이날은 직선제로 치뤄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일(1987년 12월16일)을 45일 앞둔 시점이다.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80만명 예비역 해병 표를 의식한 조처란게 당시 군 안팎의 해석이었다. 해병대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한 6.10 항쟁의 혜택을 본 셈이다.

 

해병대가 부활했지만, 해병대사령부는 여전히 해군본부 예하 조직이며 인사·예산·군수 등은 해군본부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 이때문에 해병대는 법적 위상 회복 등 ‘해병대 독립’을 외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1일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23돌을 맞아 해병대는 공식 표어로 ‘작지만 강한 해병대’를 사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나 최근 다른 군과 차별화된 해병대만의 독자적인 디지털 군복 제정 등도 해병대 독립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해 11월 해병대는 “한국전쟁때부터 60년 가량 사용해 온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은 대표 표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해병대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며 “해병대는 다른 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지만, 작전에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기에 ‘소수정예’의 의미를 강조한 ‘작지만 강한 해병대’라는 표어를 새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해병대는 ‘작지만 강한 해병대’라는 표어와 함께 ‘충성, 명예, 도전’을 핵심가치로 선정해 해병대의 자부심을 새롭게 정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해병 예비역들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귀신잡는 해병’ 같이 널리 알려진 기존 표어 대신 ‘작지만 강한 해병대’로 표어를 바꾸는데 반대하기도 했다.이들은 ‘작지만 강한 해병대’라고 쓴 간판에 강풍이 불어 기역 받침이 날아가 버린다면 아찔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참고 인용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공정식 회고록.

  • 운영자 2011.02.12 12:35

    전역하고 동사무서에 가서 신고하며 부탁한 기억이 납니다.

    주민증에 해병이라고 못써준다면 해군이라고는 써주지마쇼......그냥  "해"라고만 써달라며 인상을 쓰고 기다렸더니 "해"자로만 표시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 강성호 2011.02.13 21:04

    해군 해병....소리 들을때마다 엄청 서러웠지요.......................!

    해병대는 서러웠던 그 보상을 충분한히 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의 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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