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만난 광주시해병전우회 지재운(38ㆍ전자제품 대리점) 사무국장은 전쟁터 같았던 전날의 수재민 구조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27일 오전 11시께 광주시 재난상황실로부터 초월읍 도평리 한 교회 어린이집에 50명이 고립돼 있다는 연락을 받은 해병전우회원 6명은 고무보트를 싣고 출동했다.
쏟아진 비에 국도 3호선이 주차장으로 변해 오도 가도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 원생들은 다행히 3층으로 대피해 위급한 상황을 모면했다.
전우회 사무실로 복귀하자마자 시 재난상황실에 다급한 요청에 왔다. 경안천이 넘쳐 송정동 주택가가 침수됐다는 것이다.
점심을 거른 채 고무보트를 다시 싣고 수해현장에 달려갔을 때 소방대원과 경찰관들도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수상 구조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눈에 띄는 장비는 물에 뜨는 샌드위치패널과 스티로폼이었다.
고무보트에 시동을 걸자 1~2층이 물에 잠긴 주택가 곳곳에서는 “내 아들 살려 달라!”,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생겼다”며 아우성이었다.
고령의 대원 2명은 주변을 통제하고 지씨를 비롯한 전우회원 4명이 보트에 올라 노약자와 어린이들부터 정신없이 실어날랐다.
창틀이나 난간에 매달려 있는 사람도 있었고, 방범창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일가족도 있었다.
떠내려온 나무토막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선 한 단독주택에서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80대 노인이 소파 위에 올라서 천장 모서리를 잡고 버티고 있었다.
현관 상단에 사람 한 명 겨우 빠져나올 정도의 창문으로 한 가족을 구조했는가 하면, 철제 난간 두 칸을 겨우 뜯어내고 그 틈으로 사람들을 빼내기도 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떨고 있는 초등학생도 있었고, 갓난아기를 앉고 있는 젊은 부부도 있었다.
한 번에 10명 안팎, 줄잡아 20여 차례를 오가며 200여명 구조한 것으로 이씨는 기억했다.
지씨는 “현장에 도착해보니 소방·경찰관들은 맨몸이나 다름없었고 재난종합훈련할 때 설치됐던 지휘소도 없었다”며 “부상한 주민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고 물어봐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조 5시간을 넘겨 건장한 전우회원들이 거의 탈진상태가 됐을 무렵 인접 시군 소방대원들이 장비를 들고 도착했다.
송정동 수해의 일등공신 고무보트는 2007년 시 예산을 지원받아 구입한 세 대 중 한 대.
인명구조용으로 그동안 광주는 물론 수원·화성지역 여러 수상사고에 투입돼 구조와 시신수습을 도왔다.
해병전우회의 활약에도 송정동에서는 홀로 사는 노인 김모(72·여)씨와 김모(25·여)씨가 주택침수로 숨졌다.
지씨는 “조금만 늦게 출동했거나 제때 출동했어도 고무보트가 없었다면...그런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다”고 했다.
그는 “침수된 주택가에 있던 119안전센터에도 고무보트가 없었다”며 “이번 수해를 계기로 상습 침수되는 주요 하천 주변의 소방관서에 수상 인명구조 장비를 보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