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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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미국에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 프랭크 버클스 씨가 세상을 떠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계획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은 수천 명 미국 국민들의 애도 속에 엄숙하게 거행됐다.
유럽의 나라들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을 성대하게 치른다. 생존 참전용사들은 훈장을 가슴에 달고 퍼레이드를 펼친다. 대통령을 비롯해 온 국민이 길거리에 나와 그들에게 축하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호주도 매년 4월이면 안작데이(ANZAC DAY) 행사를 한다. 해외에서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을 예우하고 존경하는 행사다. 성서에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영웅, 목숨을 걸고 수많은 사선을 넘으며 전쟁을 치른 참전용사들, 이들보다 더 큰 애국자가 어디 있겠는가?
6·25전쟁 당시 미군은 장성의 아들만 142명이 참전했고, 그중에서 35명이 죽거나 부상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최고의 명문 이튼스쿨 졸업생만 2000여 명이 희생됐다.
이 바탕에는 참전용사를 최고의 애국자로 우대하는 국가의 보훈정책이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최대의 격전지에서 싸운 것을 최고의 영예로 아는 국민적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참전용사들을 존경하는 나라는 부국강병을 이뤘다. 부국의 원천이 강병이었다면, 강병의 토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용사들을 존경하는 국민적 풍토였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23만 명의 6·25 참전용사와 22만 명의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있다. 특히 6·25 참전용사는 대부분이 80을 넘긴 고령이기 때문에 마지막 참전자의 영결식을 치를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이분들에게 해주는 것은 참전수당 12만 원이 고작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참전용사가 가난과 질병과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당신들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했다”고 눈을 흘기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6·25전쟁에서 고관대작의 자제가 전사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생니를 빼면서까지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병역비리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 주범은 누구인가? 첫째는 참전용사를 제대로 예우하지 않는 보훈정책이요, 둘째는 참전용사를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는 국민들의 정서요, 셋째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군 생활을 하면서 입은 손실을 다소나마 보상하자는 군필 가산점제를 반대하는 집단 이기주의다.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했던 북한은 오늘도 우리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며 위협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강국들은 ‘인류의 정의’보다 ‘자국의 이익’에 목을 매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을 지키면서 초일류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는 길은 자명하다. 강병으로 부국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강병의 원천은 참전용사를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다. <국방일보 201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