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대대 천리행군 윤설영기자 동행기 - 입춘(立春)에도 아침 바람은 차다. 강원도 산골짜기에는 해가 늦게 올라온다. 영하 8도. 안개와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귀와 턱이 시려서 인터뷰는커녕 말도 꺼내기 어렵다.

hbcom_su_556.jpg

강원 평창~ 경북 포항 430㎞ 오직 걸어서 이동

4일 설 연휴를 앞두고 기자가 행군을 함께한 해병대 수색대대는 겨울 혹한기 훈련이 한창이었다. 이날은 강원도 평창에서 경북 포항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걷는 천리행군의 사흘째. 하루에 40㎞씩 13일간 총 430㎞를 걸어서 이동한다.

추위는 아침 행군에서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적이다. 병사들의 걸음도 어제보다 빨라진다. 한참을 걷다 보면 앞의 병hbcom_su_555.jpg사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절대 뛰어선 안 된다. 내가 살짝 뛰면 저 뒤에선 100m 달리기를 해야 한다. 앞의 병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걷는다.

출발 전에 한 병사가 가슴팍에서 “이제 막 뜯은 거라 따뜻합니다.”라며 꺼내주었던 ‘핫팩’을 거절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따뜻한 마음은 고마웠지만 동생뻘 되는 병사에겐 심장과도 같은 손난로를 빼앗을 순 없었다. 출발한 지 1시간. 슬슬 무릎 뒤 정강이 근육이 당겨 온다. 행군은 ‘물집, 관절피로와의 싸움’이다. 행군 사나흘째에 접어들면 발 여기저기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다. 지난해에는 열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한 병사가 결국 행군을 포기하기도 했다.

말할 힘도 없지만 ‘나´와 만나는 시간

군장무게 탓에 허리를 숙이고 걷고 있던 허의량(22)상병의 얼굴에선 장난기가 묻어난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해병대 수색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해병대 수색대대 동기들이 집으로 자주 놀러오는 것을 보고 군대는 당연히 수색대대밖에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지난번 휴가 때 아버지가 수색대대 동우회에 끼워주셨을 때는 정말 뿌듯했어요. 아버지도 자랑스러워하셨죠. 혼자 소 키우시느라 고생이실 텐데…설인데 전화도 못 드리네요. 아버지, 휴가나갈 때까지 몸 건강히 계세요.”

행군의 기본은 50분 행군,10분 휴식이다. 어깨에 40㎏이나 되는 군장을 메고 시속 7㎞의 속도로 걷는다. 군장을 메어보니 뒤로 자빠질 듯하다. 그래서 병사들은 “덩치 큰 조카 한명을 업고 다닌다.”고 표현한다. 아무리 조카라지만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단다.

행군 도중에는 대화가 없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대신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손보배(22)병장은 걷다 보면 10년간 하다가 그만둔 ‘야구’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투수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 어깨 부상을 입고서도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욕망에 치료보다는 연습에 매진했다. 덕분에 학교는 그해 전국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지만 그는 야구를 빼앗겼다.

“작년 행군 때보다 몸이 덜 힘든 걸 보면 이곳에서 저도 많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요즘엔 제대 후에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식사는 전투식량으로… 잠은 산골짜기서

점심은 전투식량. 끓는 물을 붓고 5분 정도 기다리니 제법 먹을 만한 잡채밥이 되어 나온다. 병사들은 질릴 대로 질렸는지 군장 속에서 케찹, 고추장을 꺼내 슥슥 비벼 먹는다. 국 대신 라면 하나를 끓여 5명이 나눠 먹는다. 그래도 이 시간이 천국이다.

다시 걷는다. 눈밭이다.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뽀도독 소리가 나기가 무섭게 발등으로 설탕 같은 눈이 쏟아진다. 신발이 젖지 않으려면 다음 발을 재빨리 옮겨야 한다. 눈에 눈이 부시다. 이미 눈밭에서 3주간 굴렀던 병사들은 눈빛에 탄 얼굴이 거무튀튀하다.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어디로 가는지보다 언제 쉬는지가 알고 싶다. 저 멀리 선발대가 걷고 있는 걸 보니 아직 휴식시간은 먼 것 같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땀조차 나지 않는다. 왼쪽 발이 나가면 자연히 오른쪽 발이 따라와 의지와 상관없이 걷고 있다. 걷고 있어도 내가 걷고 있는 게 아니다. 뒤꿈치 까진 곳이 따끔거린다.

행군을 모두 마치고 군장을 푼 시각은 오후 4시. 병사들은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7시반부터 이른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의 해는 짧기도 하다.30분도 안 되어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도 들려온다. 다들 꿈속에서 집에 계신 부모님께 설인사를 드리고 있는 듯하다.

snow0@seoul.co.kr

 

hbcom_c001.jpg
hbcom_c002.jpg
hbcom_c003.jpg
hbcom_c004.jpg
hbcom_c005.jpg
hbcom_su560.jpg
 
이상 서울신문 윤설영기자의 고슴도치의 따가운시선에서



  1. 한미해병대의 공유가치

    미해병대 창설 134주년을 맞으면서 - 전쟁사를 통해 본 한미 해병대의 공유가치 재음미 - 1. 미국해병대의 위상 미국해병대는 미국해군의 일부이지만 실제로는 미군이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준 4군 체제로 운용되...
    Date2010.06.13 Views2837
    Read More
  2. 한국해병대의 실상과 허상 - 이선호

    * 해병대 대령 예편 * 동국대학교 대학원졸업 (행정학박사) *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안보과정 수료 * 국방대학원 교수 * 동국대, 경기대 행정대학원 강사 * 한국군사평론가협회/군사학회 부회장 * 한국시사문제연구...
    Date2010.06.13 Views1458
    Read More
  3. 물집 터져도 걷는다…나는 해병이다

    수색대대 천리행군 윤설영기자 동행기 - 입춘(立春)에도 아침 바람은 차다. 강원도 산골짜기에는 해가 늦게 올라온다. 영하 8도. 안개와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귀와 턱이 시려서 인터뷰는커녕...
    Date2010.06.13 Views3366
    Read More
  4. 한국적 상륙기동작전 - 엄영환

    미군은 상륙함정과 해병원정군으로 편성된 원정강습단(ESG)이 미 본토를 떠나 해외에서 수행하는 작전을 원정작전이라 한다. 약 2~3년 전부터는 한반도에서 실시하는 연합 상륙작전 형태를 상륙기동작전으로 부르고 ...
    Date2010.06.12 Views1783
    Read More
  5. 김성은부대와 귀신잡는 해병 - 공정식

    해병대는 불과 380여 명의 보잘것없는 규모로 49년 4월 15일 창설됐다. 그리고 1년 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6·25전쟁의 전설적인 영웅 김성은 대령은 마치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 마산 진...
    Date2010.06.12 Views3379
    Read More
  6. 불침 항공모함 백령도와 해병 - 김창주

    우리 해군에는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이지스급의 세종대왕함이 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북한의 로켓 발사를 제일 먼저 탐지했을 만큼 최신예함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우리나라에는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
    Date2010.06.12 Views1624
    Read More
  7.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강운석 대위 · 해병대 1사단 “피부로 피는 흘리지 않았지만, 가슴으로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다.” 과학화 전투훈련에 참가한 중대장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모든 중대원의 노력과 땀으로 역대 ...
    Date2010.06.12 Views4766
    Read More
  8. 영원한 대한민국 해병대 - 임종린

    임종린(시인· 제20대 해병대사령관) 1949년 4월 15일! 덕산에서 조국의 부사신으로 태동한 지 61년 피와 땀과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세월 따라 운명 따라 용감하게 싸웠다 우리는 영원히 이 땅에서 해병으로 살아야 ...
    Date2010.06.12 Views3583
    Read More
  9.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 한다

    해병대흑룡부대 이병 임채호 캐나다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 흘러 26살이 된 나에게 미래에 대한 많은 고민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군 복무 문제였다. 캐나다에서 시민권을 취득하고 ...
    Date2010.06.12 Views2570
    Read More
  10. No Image

    해병대 군수체계에 SCM 적용방안 연구

    논문제목 : 해병대 군수체계에 SCM 적용방안 연구 < A Study on the Application of SCM for Marine Corps Logistics System > 제출자 :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무기체계전공 오정태 초록 미래의 작전환경은 과학...
    Date2010.06.12 Views1772
    Read More
  11. No Image

    전쟁이외의 군사활동에 적합한 한국 해병대의 발전방향

    논문제목 : 전쟁이외의 군사활동에 적합한 한국 해병대의 발전방향 New Roles of R.O.K. Marine Corps in Operations Other Than War 제출자 : 2003년 7월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안보정책전공 박경업 초록 서론 ...
    Date2010.06.12 Views1293
    Read More
  12. No Image

    강압수단으로서 해병대의 유용성 증대방안 연구

    강압수단으로서 해병대의 유용성 증대방안 연구 ( 포클랜드전과 걸프전 중심으로 ) A Study on Usefulness of Marine Corp as Coercive Means (Case Study on the Falkland and Gulf War) 국 방 대 학 교 안전보장대...
    Date2010.06.12 Views1153
    Read More
  13. 김성은 前 사령관 사령부강연(2005)

    김성은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장님이(전 국방부장관, 전 해병대사령관) "해병대 역사와 전통"이라는 주제로 2005년 3월 14일 해병대사령부 전장병을 대상으로 실시한 강연 내용입니다. 관리자 02)318-3049 자료출처 :...
    Date2010.06.05 Views2679
    Read More
  14. No Image

    해병대 입대 후 달라진 나의 모습 - 정신영

    교육훈련단 상륙전교육대대 유격교육대 일병 정신영 3월 장병 문예 / 기고문 공모전 우수 2008년 겨울. 화려햇던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마치고 아쉬움 반, 뿌듯함 반으로 겨울방학을 느껴보려 했을 때, 이미 주변 친구...
    Date2010.06.03 Views4587
    Read More
  15. No Image

    해병대 입대 후 달라진 나의 모습 - 김병관

    교육훈련단 상륙전교육대대 사격교육대 병장 김병관 3월 장병 문예 / 기고문 공모전 최우수 군 입대한 지도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지금 이 공모전을 보고 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
    Date2010.06.03 Views391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Next
/ 37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