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채 - 해군역사기록관리단 편찬과장
지난 28일은 해군을 창설한 고(故) 손원일 제독 탄생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민족이 번영할 수 있는 지름길은 바다에 있 다’고 예지한 손 제독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11일 우리 해군을 창설해 정전협정 한 달을 앞둔 1953년 6월 28일까지 해군을 이끌었다.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손 제독은 단순히 해군을 창설했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그의 행동과 정신이 오늘의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의 큰 가르침이 무엇이냐.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이 중 특별히 두 가지를 내세운다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보국위민(保國爲民) 정신과 미래를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한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몸을 삼가 바치나이다’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그는 1953년 6월 해군참모총장 이임사에서 이 표어가 책상머리에서 생각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우연히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이라고 했다. 손 제독은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돋보였던 일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4척의 전투함 확보와 해병대 창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더는 세계적인 전쟁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 덕분에 우방국에 공격무기를 팔거나 양도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한반도 정세는 한반도가 38도선으로 분단된 이북에서는 탱크·어뢰정·전투기 등 공격무기를 소련과 중공으로부터 지원받아 남침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국군에는 탱크·전투함·전투기 등 전투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북한의 남침을 간파한 손 제독은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해군 장병과 국민들로부터 모은 성금으로 전투함 4척을 사들였고, 당시 해군 병력과 예산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해병대도 창설했다. 이처럼 준비된 우리 해군력은 6·25전쟁 발발 시 북한 해군보다 우세한 전투력을 보유하게 됐고,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을 통한 전투력을 투사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는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전쟁 중에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30척의 함정을 도입했고, 독자적으로 함정·항공기·디젤기관·축전지 등을 개발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손 제독은 ‘충무공 정신이란 나라를 위해 몸을 잊는 것, 즉 망신순국’이라고 했다. 이처럼 그는 일신의 명예나 권력을 탐하지 않고 자신을 잊고 오로지 국가를 위해 공산군의 위협에 대비하는 전투준비에만 집중했다. 이는 지난해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인해 전투형 군대 확립에 매진하고 있는 우리 군에 큰 의미를 준다. 그리고 국민의 군대인 우리 군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고 있다. <국방일보 201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