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를 위한 변명 그리고 고언
지난 4일 강화도 해병부대에서 가혹행위로 인해 김 모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4명의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일주일만인 10일 포항의 해병대 1사단에서 정모 일병이 가혹행위로 추정되는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이밖에도 여객기를 오인 사격한 사건까지 겹쳐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해병대가 총체적 기강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가 어떤 군대인가. 6.25전쟁 직전인 1949년 창설된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공을 바탕으로 외신에 의해 ‘귀신 잡는 해병’이란 애칭을 얻었고 월남전을 거치면서 한국 최고가 아닌 세계최고의 정예부대임을 인정받은 명실상부한 ‘최강 군대’다.
그런 자부심으로 특유의 강한 전투력과 용맹성을 지니고 있던 해병대가 깊은 적막감에 휩싸여있다. 해병대 사령관이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해야 할 만큼 해병대 창설 이후 최고의 위기 상황이다. 하지만 해병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포탄이 작렬하는 상황 속에서도 부상당한 해병이 상처를 부여잡으면서도 대응사격을 실시하는 등 불퇴전의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바 있다.
또한 해병대가 실시하는 병영체험은 국민들이 누구나 ‘한 번은 해볼 만한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각 언론사가 해병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마다 높은 시청률을 보일 만큼 말 그대로 해병은 ‘국민들의 군대’라 할만하다.
이런 해병대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정예부대’임을 조롱받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또 그렇게 강한 전투력과 용맹성이 ‘빳다문화’와 ‘기수열외’ 등의 가혹행위로 인한 결과물로 폄훼되는 것도 국민들에게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들이 호국의 간성이며 국가 수호의 보루요, 전통에 빛나는 해병대의 정신을 죽이고, 해병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군을 비하시키는 무책임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고 있는 현실도 남북분단 현실을 고려하면 걱정스럽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장정들이 해병대의 자원입대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런 현상이다. 신세대 장정들은 이번 일련의 사태를 해병대의 구조적 폐단으로 보지 않고 문제가 있는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실제 해병대 역사상, 김 모 상병의 총기난사 같은 사건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사건을 들어 ‘해병대의 고질적인 문제점’ 운운하며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최강군대임을 자부하는 해병에 대해 일부 정치권과 언론들이 매도하는 사이 이 땅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해병을 소원하며, 자랑스러워하고, 빨간 명찰을 지향하고 있다.
‘관심사병’에 대한 관리를 잘하지 못한 상급자나 부대의 책임은 절대 면책 받지 못하겠지만 어느 집단에나 있을 수 있는 ‘특정인’에 의한 사고를 두고 해병 전체, 더 나아가 우리나라 병영 전체를 ‘고담집단’으로 만드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해병대도 이번 사건을 통해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구타 등 가혹행위 시 처벌을 강화해 일벌백계로 다스리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환골탈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병영문화 개선과 달리 강한 해병대를 약한 해병대로 만들어선 안된다.
‘기합’도 없애고, 임무 미달성에 대한 평가도 없애고 ‘순검제도(점호) 도 없애고, 훈련도 적당히 해서 ‘보이 스카우트’를 만들어서는 국가의 불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수 국민들은 현재의 군대를 두고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 해병조차 ‘당나라 해병’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블로그 ‘해병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현재 병영에서 상급자를 ‘아저씨’ 혹은 ‘형’이라 부르고 전방에 있던 사병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전쟁 날까봐 무서워”라고 한다고 개탄한다. 이런 군대가 김정일의 명령이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든다는 북한 군대와 싸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커녕 국가조차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까.
해병대 ‘병영 문화’의 문제점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기수 열외’라든가, 혹 가혹행위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런 것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군인의 생명인 ‘엄격한 군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그것이야 말로 사고재발의 가장 큰 방어벽이다. 특히 군기가 생명인 해병의 병영 문화는 깨부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전통으로 이어나가야 할 군의 모범이다.
해병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자기반성과 혁신에 나서야 하는 것은 물문가지이고 그 과정에서 ‘귀신잡는 해병,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다시 다져야 한다. 구타 등 가혹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구타가 강군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되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일련의 거듭된 사고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들이 ‘그래도 해병은 사랑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임무수행능력과 전투력을 바탕으로 하는 강한 군대를 구타 등 가혹행위가 아닌 엄정한 군율과 군기로 더욱 강한 해병으로 거듭나라는 강력한 요구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아가 비판을 위한 비판, 아니면 말고식의 음해성 글은 국가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특히, 국민들의 사랑과 사기를 먹고 사는 군의 특성상 전투력 약화로 이어지기는 시간문제다.
미래희망연대 송영선(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은 “이번 총기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기수열외로 밝혀졌다”면서 “기수열외는 사실 해병대의 전통도 아니고 몇몇 사병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관습”이라며 해병대 전체의 문제로 몰려는 일부 시각을 경계한바 있다.
북한이 해안 방어에 8개 사단을 배치한 것은 해병대 2개 사단이 있기 때문 이라는 사실에서 보듯 해병대는 국가전략 기동부대로서의 임무 외에도 우리나라 안보체계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해병대의 역할과 임무는 군사적 가치와 중요성이 매우 높다. 부대 임무를 대통령령이 아닌 국군조직법 으로 정한 것은 해병대가 유일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에도 불구 해병대는 언제나 남의자식 취급을 받아왔다. 지난해 국방부 예산 29조5627억원중 해병대 예산은 7339억원에 불과했다. 전체의 2.5%다. 그나마도 대부분 월급 등(6270억원)이고 전투력 증강에 쓰인 건 1069억원밖에 안된다.
공군 전투기 한 대 값인 셈이다. 그나마 올해 예산이 1902억원으로 늘었지만 전력증강에 얼마나 보탬이 될런지… 걱정스럽다.
한 언론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 관련 인사의 말을 인용 “서북도서 지역의 해병대 전력이 유사시 대규모로 벌어질 북한군의 상륙작전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대단히 회의적”이라며 “그만큼 형편없는 지원 속에서 해병대라는 이름아래 강한 군기와 훈련을 통해 전투력 약화를 대체해온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병대 저변에 깔려있는 각종 문제들은 오늘날 이같은 오도된 전통은 이처럼 열악한 정부 지원에서 출발한 측면도 없지 않다. 혹독한 훈련에는 강한 군기가 필수고, 이 군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습이 싹튼 건 아니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최근 발생한 일련의 해병대 사건을 100% 그들만의 잘못 이라고 꾸짖기엔 부끄러운 구석도 있다. 해병대를 위한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