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우리는 해병대와 관련한 몇 가지 유행어를 알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든지, “해병대는 개병대다!”라는 말이다. 앞의 말은 해병대의 용감성과 의리,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전우애를 상징하는 긍정적 표현이고, 뒤의 말은 말 그대로 성질이 포악하고 폭력적이며 인간 이하의 행동을 자주 하여 개만도 못하다는 부정적 표현이다. 군대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침략적 전쟁을 부정하는 대한민국헌법에 따라 먼저 전쟁을 도발하지는 않겠지만, 방어적일망정 전쟁이 발발하면 적을 살상해야 하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수행해야 하는 국가조직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한 유명 인터넷강사가 “군대?  사람 죽이는 거 가르치는 데”라는 식의 말을 해서 세상을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았던 적이 있었지만, 그리고 결국 인터넷강사 자리를 내어놓고 말았지만, 군인은 우군을 살리기 위해 적군을 죽여야 하는 이율배반적 행위주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유독 해병대가 다른 군에 비해 더 거칠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적지로 침투해야 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최전방전쟁담당부대이다 보니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반 전투병보다 수십 배 높은 강도의 훈련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은연 중 폭력이 정당화(?)되는 내재적 습벽에 젖어드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폭력에 자주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것이,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자란 사람이 성장하여 더 폭력적이 된다는 임상실험결과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말에도 “혹독하게 시집살이 한 시어머니가 더 혹독하게 며느리를 시집살이시킨다.”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군대라는 곳은 폭력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집단일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국민들이 자식들을 군대 보내며 가슴 아파 하는 것은, 자신들 세대에 그쳤으면 좋았을 국민개병제가 자식 대에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국가적 슬픔이, 그리고 그 자식이 군에 입대하여 폭력을 배우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이십여 개월 폭력에 노출되어 있을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38년 전 내가 군대 입대하던 고향역이 생각난다. 초로의 아버지께서 나를 향해 “너희 세대는 군대 안 갈 줄 알았다.”며 눈가가 촉촉해 지시던 모습이 말이다. 친구 몇 명과 함께 입영절차를 타고 고향역을 빠져나오던 순간, 세상이 얼마나 암담하고 캄캄했는지 모른다. 당시 3년이나 되는 긴 군대생활을 어떻게 견디어야 하나 하는 막막함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그것은 함께 입영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의 암담했던 모습은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군에 가던 날, 똑 같이 재현되고 있었으니, 남북분단의 아픔이 계속되는 한 내 아들의 아들 녀석도 똑 같은 암담함을 또 언젠가는 겪을 것이다.


위와 같이 고강도 훈련을 통해 기른 전투력으로 적군을 무찌르라고 했더니, 해병대에서는 아군을, 그것도 힘없고 대항의지조차 상실한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폭력배 짓을 하고 있었다니 황당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인간의지의 깊은 곳에는 “폭력애(暴力愛)”가 있다. 착하고 순하기만 할 것 같은 어린아이들조차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의지 또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폭력이 교육을 통해 문화를 통해 억제되고 절제되어 오다가 군에 입대하게 되면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를 만나게 되고, 얼씨구나 하고 폭력본능이 은연 중 현실화되는 것이다. 내가 군복무했던 그때는 하룻밤이라도 고참병의 구타(우리는 그때 빳다, 빳다라고 했었다. 물론 그 말이 영어의 Bat를 일본식으로 강하게 발음한 것임은 다 아실 것이다)를 당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하던 시대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맞고 살았던 것이 억울하기만 하다. 그러다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으니, 그 날도 최고참병이 내무반원 모두를 소집했고, 말도 되지 않은 트집으로 빳다치기를 하던 도중 한 상병이 반기를 들고 그 고참병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그 사건은 그 고참병도 영창, 그 상병도 영창으로 끝이 났다. 그 후에 내무반에서 빳다가 없어졌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여전히 빳다는 그대로 자행되고 있었으니, 그것이 지금 해병대 내무반에서 빳다로 이어지고, 기수열외로 이어지고,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나보다 늦은 후임병들을 한 번도 때려본 적이 없다. 내 제대회식하던 날, 난 후임병들에게 “나는 3년 동안 한 번도 빳다를 잡아본 적이 없다. 그것을 내 군대생활 유일의 자랑으로 가지고 제대하겠다.”고 말했고, 많은 후임병들의 “오병장님, 감사합니다, 제대를 축하합니다.”라는 말로 화답되었다. 나는, 개인적 의지로 폭력을 단절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그렇게 군은 여전히 폭력으로 연결되고 있다. 적을 죽이라고 배운 기술로 끊임없이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이 고통의 사슬은 어디에서 끊어야 할까? 요즘 젊은이들은 컴퓨터게임에 익숙하다. 모니터 안에서이지만 수없이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인다. 파괴하고 또 파괴한다. 그러다 군에 입대하게 되고, 직접 손에 총을 들고 실전을 하게 되니, 게임 속의 폭력이 현실화되고, 고참이 되면 그 폭력을 직접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정말 간단하다. 윗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면 된다. 그리하여 폭력을 행사하여 후임병들을 구타하는 자들을 일벌백계로 다스리면 된다. 그게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되다 보면, 저절로 폭력은 스러지게 되어 있다.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일벌백계의 처벌을 공정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지나치고 말기 때문에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별을 달고 있는 장군들, 그들은 모두 폭력문화에 익숙한 자들이다. 스스로 폭력에 익숙하기 때문에 지금 해병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현상을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우린 더 했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참을성이 없어!”하고 마는 것이다. 하물며 이명박 대통령마저 국무회의에서 같은 뉘앙스의 말을 했으니 더 할 말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며칠 전 열렸던 병영문화개선을 위한 회의에서 나온 의견이 “폭력을 행사하면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떼겠다.”라거나, “폭력이 발생한 부대를 해체하겠다.”는 황당한 개선책(?)이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돌대가리다. 돌대가리, 돌대가리가 아니고서는 그런 엉터리 처방전이 나올 수 없다. 돌보다 더 단단하게 굳어버린, 폭력문화에 굳을 대로 굳어버린 자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병영개선책에는 인권도 없고, 정의도 없고, 본질적 처방도 없다. 폭력을 행사한 군인의 붉은 명찰을 떼겠다는 발상은 또 하나의 현대판 주홍글씨다.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는 그 사병은, 폭력행위를 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내걸고 다녀야 하는 그 폭력사병으로서는 자살하거나, 아니면 더 잔인한 폭력병이 되어 다른 사병들 위에 군림하려 할 것이다. 부대를 해체하게 되면, 그 행위자가 처벌을 받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죄 없는 나머지 사병들은 뿔뿔이 해체되어 다른 부대로 전출됨에 따라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고, “폭력으로 해체된 부대에서 전입되어 온 나쁜 놈!”이라는 또 다른 붉은 딱지, 주홍글씨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부대를 해체하고, 다른 부대에서 또 사병들을 차출하여 새로운 부대를 만든다니, 그렇게 가혹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부대를 부수고 만들고를 반복하면서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어디, 이 의견을 내세우는 장군, 별 단 장군, 당신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쌈짓돈이냐 말이다. 어디 그 돈이 당신 돈이오? 정말 별 단 장군, 별 볼 일 없는 멍군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In a Better World”라는 영화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며 상영되고 있다. 어떤 영화관에서는 다른 영화의 틈새에 하루 한 번 정도 맛보기처럼 상영되는 덴마크 영화다. 2011년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과 2011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영화이니 작품성은 구태여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의사 안톤이다. 그는 덴마크의 집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무자비하게 이유 없이 잔인하게 인민을 학살하는 반군대장의 죽을 병을 치유해주지만 그가 어느 정도 병이 낫자 그를 의료촌에서 내쫓는다. 화난 군중에게 맞아죽는 그를 보며, 폭력과 평화, 화해와 용서의 경계를 인식하며 갈등한다. 덴마크 집에서 열 살 아들 앞에서 다른 이로부터 뺨을 맞으면서도 무저항으로 일관한다. 분해 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그를 찾아가 항의하다가 다시 뺨을 맞지만 화를 내기는커녕 가해자를 향해 “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타이른다. 아빠가 또 뺨을 맞자 더 억울해 하는 아이를 향해 “아빠는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진 거야!”라고 폭력의 폐해를 가르치지만 아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폭력에 대한 폭력의 응징만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 해결책이라 믿는 어린 아들, 이에 대해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세상이치를 가르치고자 하는 아빠의 평행선이 이어진다. 결국 그 어린 아들이 사제폭탄을 만들어 가해자의 차량을 폭파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아주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이다.


별 단 해병대사령관님, 사병들 빨간 명찰 떼려고 하지 말고, 전체 해병대 최고책임자로서 이번 해병대총기난동사건과 부대 내 폭력이 난무하도록 방치하여 해병행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당신의 별을 떼시는 게 어떻겠는지요? 사임한다, 안 한다 언론플레이는 그만 하시고요. 그것을 정녕 못하시겠다면, 전 해병대원들에게 “In a Better World” 영화를 관람시키신 후 난상토론을 한번 해 보시지요? “우리가 우리끼리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바보 같지 않냐? 우리가 우리 편을 해치니 우리가 북한군이냐?”라고 하면서 말이죠. 부탁합니다. <이상 법률신문 2011년 07월 22일>

 

  • 나그네 2011.07.22 16:50

    집어야 할 점이 있네요.

     

    개병대는 처음 용어가 나온 배경에는 開兵隊, 즉 해병대가 먼저 나아가 적지를

    개척한 다음 육군 등 아군에게 안전하게 넘겨주는 뜻으로

    쓰여졌으나,  나중에 개판친다는 등의 나쁜 뜻으로 와전되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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