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기고 2011.8.16 - 엄영환 해군중령 / 해군대학 상륙작전 교관
내일(17일)은 우리 해군·해병대가 통영상륙작전을 수행한 지 6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작전은 6·25전쟁 초기 우리 국군이 단독으로 실시한 최초의 합동 상륙작전으로서 서부전선을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기도를 좌절시킨 의미 있는 작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1950년 8월 초 전선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이 형성돼 포항·왜관 등지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7사단을 통영 방향으로 진격시켜 거제도를 점령함으로써 마산항과 진해항을 봉쇄하고자 했다. 이에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김성은 중령에게 거제도에 상륙해 적의 진입을 차단하고 격멸할 것을 지시했다. 상륙작전 부대를 편성한 김성은 중령은 1950년 8월 16일 밤 함정을 이끌고 통영반도 동북방 해상으로 출동해 17일부터 22일까지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당시 이 작전에 참가한 전력은 해병대 1개 대대, 해군 함정 7척, 공군 T-6 및 F-51 편대 등이었다. 상륙작전은 공군 T-6 편대의 항공정찰과 F-51 편대의 화력지원, 해군 함정의 함포사격과 상륙해안 기만작전, 해병대의 상륙돌격, 통영시내 잔적소탕 등 합동작전의 형태로 수행됐다. 이 작전을 통해 국군은 북한군을 469명이나 사살하고 83명을 생포하는 등 막대한 전과를 올렸으며, 북한군의 거제도 진출을 좌절시킴으로써 마산과 진해 지역을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통영상륙작전에서 주목할 점은 거제도 방어를 위해 작전지역을 거제도에서 통영으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당시 김성은 부대장은 적정탐지와 지형정찰을 통해 소수 병력으로 거제도를 방어하기보다 적극적인 통영상륙작전을 감행해 거제도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원문고개를 탈취함으로써 적의 후속부대를 저지하고 통영시내 북한군을 격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해상 화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진해 비행장에 주둔해 있던 공군 T-6 비행대와 협조해 항공정찰과 폭격 지원을 받으며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61년이 지난 지금, 통영상륙작전의 전사(戰史)는 한국군 단독의 상륙작전 수행 시 야기되는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효율적인 합동 전력의 운영과 적정ㆍ지형에 대한 사전정찰에 중점을 둔 작전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또 한반도 작전환경과 한국군 전력현황에 부합하는 ‘한국적 상륙작전’에 대한 개념정립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모두 열세한 전력에도 완승을 한 선배 전우들의 투혼과 교훈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