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북한의 도발로 인해백령도·연평도등, 서해5도의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1997년백령도를지키고있는 무적해병 흑룡부대를 방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날씨 관계로 인천부두에서 사흘을 기다린 끝에 쾌속정을 타고 망망대해를 달린지 3시간15분만에뭍이보이기시작 해소청도, 대청도를거쳐 4시간 만에 목적지인 백령도에 도착했다.
현재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해 있지만 원래는 황해도에 속했던 곳으로 민족 분단의 아픔이 생생히 살아있으며 그런
만큼 주민의 안보의식이 어느곳보다 투철하고 생활화돼있었다. 주민이 군과 혼연일체가 되어 백령도 지킴이 역할을 하는,
그 당시로는국내유일의 여자예비군이있는 곳이기도 했다.
“저는 사수(死守)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왜 죽어서 지킵니까, 살아서(生守) 지켜야지요.”
적은 눈앞에 있고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지만 꼭 살아서 지키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무장한 해병용사를 만난 곳은 장산곶전방을 향해있는 해안방어진지에서였다.
당시 서해의 국지적 도발로 인해 우리 측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지아래 훈련이 펼쳐지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해안 방공호를 따라 전투대비태세에 들어간 장병들의 굳게 다문 입과 빛나는 두눈은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각종 화기들도 전방을 향해 총신을 돌리고 있었다.
화약냄새풍기는전선에서있는느낌이었다. 참가한 모든 화기가 전방을 향해일제히불을뿜었다. 포를 맞은 바다는 커다란 물기둥과 함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조명탄의 불빛과 함께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고있었다. 적의간담을서늘하게하고도 남을 통쾌한 순간이었다.
어느 타부대보다 훈련도 강하고 근무하기도 힘들다는 해병대를 스스로 선택한 신세대 젊은이들이 우리가 편한 잠을 이루고 있는 이 시간에도 위험을무릅쓰고,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었다면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있다.
서해상에비록 긴장이 감돌고 있지만 우리 해병용사들이 물샐틈없는 경계태세로 있는한 저들은 우리를 함부로 넘보지 못할것이다.
매서운 추위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도 눈빛을 빛내며 전방을주시하고 있을 대한의 아들, 해병용사들의 안녕과 건투를빌며 위로와감사한마음을보낸다. 국방일보 - 2010년 2월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