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연평도 포격 사건을 시작으로 총기 난사 사건, 그리고 현빈의 해병대 입대까지. 근래만큼 해병대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없는 것 같다. 3년 동안 포항과 김포, 서해 5도를 돌며 해병대를 취재해온 김환기 작가와 함께 해병대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모두가 그리워하는 남자, 현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해병대에 대해 오해하는 것 20110902135222615.jpg

보통의 20대 여자가 그렇듯 기자 역시 군대에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특히나 해병대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던 와중 지난 7월 해병대 내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을 취재하며 해병대 관계자들을 만나게 됐는데 당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해병대가 나쁜 곳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연이어 발생한 해병대 내 사건사고로 해병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때였으니 해병대 출신으로서 억울할 만도 하겠다 싶었다. 비(非) 해병대 출신인 김환기 작가 역시 "해병대는 나쁜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3년간 해병대를 '들락거리며' 수많은 해병대 젊은이들을 만나온 그는 사람들이 최근 일어난 단편적인 사건만으로 해병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려했다.

"꽤 많은 해병대 부대를 다녀봤지만 문제가 있어 보이는 병사나 이미 문제를 일으킨 병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물론 저는 외부 사람이었고 제가 보는 것만으로 해병대 전체를 규정지을 수 없지만 최근의 뉴스 보도나 인식은 분명 침소봉대된 면이 있다고 봐요."

보통 막연하게 해병대는 힘든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병대원들이 얼마나 힘든 훈련을 받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해병대는 특수부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강도의 훈련을 받는다. 보통의 군대와는 다르게 병사들을 직업군인처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곳이기 때문에 병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굉장히 크다. 자원을 해서 온다고는 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선택지 중에 골라서 온 의무병들이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훈련병들이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것을 보면 기특할 때가 많다.

"요즘 신세대들을 보고 정신력이 약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해병대에서 훈련하는걸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힘든 훈련을 받고도 이내 밝은 표정을 지어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지죠. 힘들 땐 힘들더라도 끝나면 금방 잊더라고요.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까지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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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을 지원병으로 모집하는 해병대의 특성상 비교적 적극적인 자세로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무엇이든 익히고 배워서 스스로를 성숙시키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힘든 훈련을 기꺼이 참아 내는 건 스스로를 다잡는 의지 자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땀 흘리고, 더 많이 견뎌야겠다는 선택이자 스스로와 한 약속인 셈이죠.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해병대에 지원한다는 건 여전히 남다른 선택인 동시에 그 자체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적극적인 선택이에요."

그가 지켜본 해병대 1137기 김태평

그런 남다른 선택지를 고른 사람들 중에는 그 자체로 남다른 인물도 있다. 바로 현빈이다. 현빈은 지난 3월 인기 절정의 순간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의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해병대로 향해 있는 상태다. 해병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해병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그를 입대부터 훈련 과정까지 지켜본 김환기 작가에게 '현빈'은 '김태평'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본명을 사용하는 군대에서 그는 연예인의 이름을 버리고 서른 살의 청년 김태평으로 돌아갔다.

"군대는 사회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해요. 그에게는 곧 대중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군 입대를 앞둔 많은 남자 연예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잖아요. 21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신이 대중으로부터 잊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법도 한데 오히려 편안해 보였어요. 군대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대 후 배우로서의 자기 인생이나 연기에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골몰해 있더군요. 일반 군대보다 해병대가 인생 경험을 쌓기에 더 알맞은 곳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30대 배우로서 재도약을 준비하는 데 외부로부터의 과도한 관심을 차단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해병대가 나을 거라는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가 지켜본 현빈은 입대 이후 시종일관 모범적인 해병의 모습이었다. 동기들보다 늦은 나이에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누구보다 잘 적응했고 훈련에도 열성적이었다. 나무랄 데 없는 훈련병이었고 맏형 역할까지 충실하게 해냈다. 훈련 3주 차에 실시되는 사격 테스트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둬 특등 사수가 되기도 했다. 일발필살을 강조하는 해병대에서 특등 사수가 된다는 것은 여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퇴소식 때는 별도의 포상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대가 있는 백령도에 간 뒤에도 7, 8세 아래 선임들을 깍듯이 대했고 발목 부상에도 모든 훈련에서 열외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타였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모범적이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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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훈련병들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서른이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에요. 나이에 비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굉장히 진중했어요. 자기를 끊임없이 계발하고 좋은 쪽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형 인간이라는 게 느껴졌죠."

그는 고된 훈련 속에서도 현빈이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해병대 훈련이다. 아무리 자기 포장에 능숙한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그 상황을 흐트러짐 없이 견뎌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든 훈련을 받고 있다가도 누군가 자신을 의식하는 시선이 느껴지면 믿을 수 없는 힘이 솟는 것 같아요. 얼굴 표정이나 눈빛, 자세, 이런 것들이 다른 훈련병들하고는 달라요. 체력이나 정신력이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오랜 연기자 생활로 그런 자세가 몸에 배어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런 자세는 분명 그가 가진 장점이에요. 나중에 나이가 든 후에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유지해나갈 기본적인 자질이 엿보였어요."

칭찬 일색인 듯해 겸연쩍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가 가까이서 지켜본 해병대원 김태평의 모습이다. 그는 인상 깊었던 현빈과의 일화를 또 한 가지 소개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의 총 6주 차 훈련 중 5주 차에는 '극기주' 훈련이 진행돼요. 식사량과 수면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대신 훈련은 두 배로 늘리는 악명 높은 훈련이죠. 마지막 날 천자봉에 오르는데 그때쯤이면 거의 체력이 바닥난 상태가 돼요. 극한의 정신력으로 버티죠. 천자봉 등정을 마치고 나서 조금 무리해서 현빈씨와 30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라며 일어나더니 화장실 가는 길에 현빈씨가 그만 기절을 했어요. 그 정도로 힘든데 전혀 티를 내지 않은 거예요.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틀림없이 앞으로의 군 생활도 훌륭하게 잘해낼 거예요."

일부의 악습으로 해병대 전체 판단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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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평의 자대 사물함. 자대에 온 뒤로 그는 영어와 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해병대를 취재하며 그는 젊은 해병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됐다.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이겨내고 밝게 군 생활을 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그도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내가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포스트 연평도 세대라는 게 완전히 허구는 아니라는 걸 느꼈죠. 나라가 어려울 때 나 몰라라 도망갈 친구들은 아니구나 싶어서 취재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나이 든 세대가 요즘 군대 너무 편해졌다고 많이 욕하잖아요. 제가 25년 전에 군대에 다녀왔는데 나는 그때 이 친구들만큼 열심히 했나, 하고 뒤돌아보게 되더군요. 군대가 일정 부분 편해진 면은 있어요. 그렇다고 나약해지거나 해이해진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긍정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는 최근에 일어난 몇몇 사건으로 해병대 전체를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해병대는 가장 군대다운 군대이자 우리나라 현실에서 꼭 필요한 군대예요. 해병대 군인들이야말로 건강하고 진취적인 젊은이들이에요. 일부의 악습을 도려내려는 노력을 조금만 한다면 가장 모범적이면서 가장 필요한 군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해병대를 좀 더 입체적이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제공 / 원상희, 플래닛 미디어 ■참고서적 /「나는 해병이다」(김환기 저, 플래닛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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