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젊은 병사는 오늘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차가운 땅 속에서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있었던 그 젊은병사. 그의 시신은 이 나라가 물이 흐르듯 그렇게 유지되어온 나라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 땅은 수많은 목숨들이 지켜낸 우리 삶 의 터전. 아직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6ㆍ25전쟁의 아픔을 지닌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유해발굴을 위해 처음 산에 오를 때 설마 이런 곳까지 전투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산 곳곳에 남겨진 개인호의 흔적은 지금도 한반도 곳곳에 남아있을 상처들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호들은 이제 지금껏 쌓여 왔던 세월의 무게만큼 흙으로 답답하게 막혀 있었다. 산등을 따라 여기저기 파져있던 그 흔적들은 마치 산등허리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멍자국 같았다.
햇볕이 기분 좋게 내리쬐던 날. 내가 맡은 부분은 산등에서 가장 뒤쪽에 자리잡은 호였다. 작업반장이 내게 지정해 준 개인호를 한 삽한 삽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딱딱한 돌멩이가 박혀있는 암반층까지 삽으로 파내는 작업이었다. 땅을 팔 때마다 나오는 탄피들이 그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내 옆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서 있었다. 60년 전에도 변함없이 뿌리를 박고 있었을 그 소나무가 바로 전쟁의 증인이었다. 병사들이 흘린 피를 먹고 자랐을 그 소나무가 지금 나를 꾸짖고 있었다. 왜 지금까지 나라를 지켜낸 너의 조상들을 잊고 지내왔냐고. 너와 너의 친구들은 왜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그때 삽 끝에 묵직한 돌덩이의 느낌이 왔다. 다행인지 내가 맡은 호안에는 마주하기 죄송스러울 그 젊은 영웅이 누워있지 않았다. 삽을 놓고 잠시 앉아 땀을 식혔다. 탄띠에 멘 수통을 떼어 한 모금 물을 마셨다. 수통의 차가운 느낌이 좋았다. 잠시 바람이 불어와 나의 몸에 열기를 식혀주었다. 살아 있다는 것에 있어서 이런 작은 휴식도 행복이란 걸 나는 처음 깨달았다.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탁트이고 전망이 밝은 곳. 그래서인지 여기 저기 많은 개인호들이 파헤쳐져 있었다. 이번에도 작업반장이 내가 파야 할 호를 정해주었다. 아무도 내가 파는 이곳에 묻혀 있지 않기를 바라며 또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반쯤 팠다고 생각했을 때 옆에서 같은 작업을 하던 인원이 뭔가 발견했다며 이리로 와 보라고 했다. 사람의 허벅다리 뼈. 순간 나 의 가슴 한켠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였다. 청춘을 나라를 위
해 바쳤던 용사가 이곳에 초라하게 누워 있었다. 남모를 깊숙한 산 등허리에서 그는 이름 없이 죽어 있었다. 호 주변을 조심스럽게 호미로 파내어 뼈 조각 몇 개를 더 찾아내었다. 주변은 탄피들로 가득했다. 그는 아마도 마지막까지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다 피흘리며 고통스럽게 죽어 갔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오빠이고 형이었을 것이다. 또 그는 아마도 고통스런 죽음의 순간에서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했다.
유골을 수습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해는 주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 땅의 태양은 뜨고 지기를 반복하며 넓은 하늘을 밝게 비추리라.
부대로 복귀하는 버스 좌석에 앉아 피곤한 눈꺼풀을 잠시 감아보았다. 오늘은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결코 그냥 지켜진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유해발굴이라는 귀중한 체험을 통해 알게됐다.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슬픔으로 지켜진 우리나라.
우리는 절대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지켜낸 조상들의 노력을 우리는 가슴에 새기며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등 뒤로 멀어져가는, 음산한 잡초가 무성한 그 산등 위에는 뜨거운 역사가 누워 있었다. <해병대지 39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