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사령관, 해군본부 국감 배석하다 단독국감받아 뿌듯
해병대 인사ㆍ예산 독립 강화 속 “아직은 갈 길 멀다”목소리
천안함 46용사가 심청이처럼 부활해 남북화합의 연꽃이 된다면…
4일 오전 백령도 해병대 제6여단본부. 이날 아침 서울 은평구 수색 군 비행장에서 고막이찢어질듯한 굉음을 내는 육군 헬기를 타고 1시간 30분여만에 도착한 이 곳에서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병대 국감이 이뤄졌다. 이날 국감은 올 봄 국군조직법 등의 개정으로 해병대가 지난 6월부터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이 크게 강화되고 사령관이 신설된 서북도서방위사령부의 사령관을 겸임하는 등 강화된 위상에 맞춰 해병대 단독으로 실시됐다.
원유철 국방위원장(한나라당)은 국감에 앞서 기자에게 “지난해 연평도 포격도발사건으로고생하는 해병대를 격려하기 위해 해병대 본부가 있는 화성 발안에서 하지 않고 백령도에서 국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백령도는 해병 규모가 4,000여명(주민 수는 5,125명) 규모로 많고 우리 영토 서쪽의 최북단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감에 이어 북한 황해도 장산곳(몽금포타령으로 유명한 곳으로 북의 화력이 집중돼 있음)이 한눈에 보이는 관측소(OP)를 방문한데 이어 백령도에서 2.5km 떨어진 지점에서 북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천안함 장병들의 위령탑을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해병대 본부의 한 대령은 “그동안에는 사령관이 해군본부 국감에서 뒷자리에 배석하는데 그쳤으나 이번에 단독으로 그것도 백령도에서 받게 돼 뿌듯하다”고 털어놨다.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도 국감 뒤 기자가 ‘단독국감을 받아 감회가 남다르겠다. 그런데 인사ㆍ예산 독립성이 강화되고 서북도서사령관을 겸임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군이나 합참 등에서 견제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단독국감도 7년전인가 한번 받은 적 있다더라. 예산도 이제 (중장기적으로) 너무 많이 반영돼 오히려 고민인데 매년 차근차근 쓰이는게 아니겠냐”며 여유있게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와 유승민 최고위원을 제외한 국회 국방위원 15명이 참여한 이날 국감에서 의원들은 해병대의 노고를 격려하고 전력증강에 대한 지원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 7월 강화도 해병 총기난사사건 이후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구타문제 등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질책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경선 패배 이후폭풍이 거센데도 불구하고 “국방위원의 본분을 다하겠다”며 국감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이후 서북도서 전력증강에 발벗고 나섰던 원유철 위원장은 “서북도서는 항상 긴장이 감도는데 해병대가 있어 국민이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애정을 표시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해병대의 전력증강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었던 정미경 한나라당 의원은 “해병대의 주임무인 상륙작전 수행을 위해 상륙기동헬기 40대(대당 140억원)가 2023년까지 도입될 예정인데 차질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륙헬기에 대해 해병대는 “사단급 상륙 병력이 있지만 상륙헬기 등이 없어 상륙전력이 대대급에 불과한 만큼 직할 항공단을 창설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해군은 “운용시설을 갖고 있는 자신들이 헬기를 보유하되 해병대는 지원 형식으로 헬기를 사용하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날 백령도로 이동할 때 탄 헬기 4대도 육군 소유일 정도로 해병대의 무기체계가 열악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원들이 해병대의 전력증강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해병대 출신인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사령관은 각군 참모총장을 설득해 기동헬기를 확보하라”고 주문하며 해병대와 육해공군간 합동작전 능력 배양을 강조했다.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앞에서 기자에게“해군과 해병대간 예산싸움이 있는데 서북도서 방어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해병대의 전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병대의 한 영관급 장교는 천안함 위령탑 현장에서 “백령도의 해안포 중에는 2차대전 때 사용하던 것이 있을 정도로 열악하고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펴기 위해 필요한 제반 무기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말을 들으니‘올해 해병대 예산이 1조원가량(9,534억원)되는데 뭐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동안 해병대가 해군 소속으로 예산에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수긍이 갔다. 하지만 해병대의 한 대위는 “법이 바뀌면서 개인적으로는 해군 대위에서 해병 대위로 바뀌어 좋다”며 “해병대에는 과거 육해공군에서 연락장교만 해병대에 나와 있었는데 사령관이 서북도서사령관을 겸하면서 육해공의 중령, 대령들이 나와 참모역할을 해 합동전력이 강화됐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백령도의 해병대 전력강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육군참모총장출신인 이진삼 자유선진당 의원은 OP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이 침공하면 백령도를 우회해 다른 도서를 점령할 확률이 높다”며 “과도하게 백령도 전력을 증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곧바로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과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이 이 의원의 의견에 반대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의원들은 지난 7월 강화도 해병 총기난사사건 이후에도 구타사건이 근절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질책했다. 신학용 의원은 “해병대가 예뻐서라기보다는 사기를 진작시켜 국방전략의 극대화를 꾀하기 위해 단독으로 인사나 예산까지 할 수 있도록 하고 서북도서사령부까지 맡겼다”며 “병영문화 개선은 전우애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총기사건 이후에도 60명의 해병대원이 구타가혹행위 등으로 빨간 명찰을 떼고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며 “간부의 리더십 함양과 정신교육 강화 등 획기적인 병영문화 개선에 나서라”고 지적했다. 신학용 의원은 “그렇지만 빨간명찰을 돌려주는데 걸린 기간이 평균 보름밖에 안됐다”며 온정주의를 질타했다. 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와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도 해병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강도 높은 분발을 당부했다.
이에 유낙준 사령관은 “신병이 제대(22개월)할 때가지 2년 내에 구타문제를 없애도록 하겠다”며 내년부터 신병을 연 24개 기수에서 12개 기수로 줄여 서열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도 예방하겠다고 덧붙였다. 해병 제6여단의 한 중령은 기자에게“구타사건이 나면 본인 뿐만 아니라 책임자까지 처벌되는데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확실한 경제적 패널티를 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때아닌 현빈(29ㆍ김태평)의 인도네시아 방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명 배우 출신으로 해병6여단 소총수인 현빈이 T50과 잠수함 수출 지원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간 게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예비역 중장인 서종표 민주당 의원이 “규정과 규율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논란이 있다. 다른 병사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규정준수를 강조하자, 유낙준 사령관은 “알았다. 장관의 지시에 의해 특사로 갔다”고 고분고분 답했으나 원유철 위원장이 “현빈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우리 군의 무기수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니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서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반발하자 원 위원장은 “서 의원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겠다”며 물러나 논란은 일단락됐다.
해병대 장성이 전원 해사출신으로 ‘현대판 골품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진삼 의원은 “해병대에서 해사 출신은 소령(60%), 중령(74%), 대령(82%), 장성(100%)”라며 “비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대평 대표는 “해병대의 사격훈련 횟수가 육군보다 훨씬 뒤진다”며 “과연 정신교육과 전통교육, 체력훈련과 상륙훈련만으로는 귀신 잡는 무적해병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국감이 끝난 뒤 북한 장산곳에서 불과 17km 거리(백령도에서 장산곳까지 최단거리는 13.4km)의 OP를 방문해 브리핑을 들은 뒤 의정보고서에 올리려는듯 너도나도 기념촬영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어 OP 지하의 대규모 동굴요새도 둘러봤고 이후 한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한 뒤 천안함 산화 장병들의 위령탑을 방문해 헌화했다.
이날 의원들이 방문한 OP넘어 장산곳 근처는 효녀 심청이 앞을 못보는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있는 곳이고 천안함 위령탑 근처 연화리는 바다에 빠진 심청이 용왕님의 도움을 받아 연꽃 속에서 되살아난 곳이다. 이곳은 뱃사람들이 심청을 공양해 용왕의 마음을 달래려고 했을 정도로 물살이 세다. 지난해 천안함사태 당시 선수와 선미가 서로 다른 곳에서 발견될 것도 이 때문이다. 센 물살 만큼이나 남북한이 중무장한채 으르렁대고 있는 이 곳에서 “통일이 되면 참 좋을텐데…”라는 혼잣말을 하는 이가 있었다. 이에 해병대의 한 영관급 장교가 “통일이 되면 좋죠. 이 곳 섬들도 안보상품 등 관광자원으로 크게 부각될 것이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날 오후 늦게 헬기를 타고 서울로 귀환하던 기자는 “튼튼한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천안함 46용사들이 심청이가 돼 남북의 화합과 통일의 연꽃으로 피어나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서울경제 고광본기자
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110/e201110042131279638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