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후 이병 / 해병대교육훈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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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입대한 해병대. 해병대 특유의 남성스러움과 거친 면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부모님의 걱정에도 힘들고 고단했던 훈련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부푼 기대감을 갖고 이곳 해병대 교육훈련단 본부대대로 첫걸음을 들여 놓았다.
처음 마주한 선임들은 다들 엄격해 보이기만 해 다가서기 어려웠다. 게다가 나의 맞선임은 부대에서 유명할 정도로 과업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해병이었다. 항상 이를 명심하고 신중히 생활하던 나도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자 긴장이 풀리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리 무섭던 선임들도 나에게 다들 잘해 주셨고 병영문화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내게 주어진 자유가 그저 편하게만 느껴졌다.
자유라는 것이 스스로 언행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나는 과업장에서 선임해병이 작성해 놓은 자료를 그만 내가 다 날려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크게 혼이 날 것을 각오하고 맞선임에게 보고했다. 맞선임은 혼내지 않았고 나를 안심시키고는 생활반으로 복귀했다.
나는 별일 아니구나 하고 마음 편히 취침하고 다음날 과업장에 갔는데 그 자료가 다시 작성돼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날려버린 그 자료를 나의 선임 해병이 밤새도록 야근하며 다시 작성해 놓은 것이었다. 그 자료는 원상복구해 놓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동료와 간부님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였던 것이다.
야간에 자료를 다시 작성하느라 충혈된 선임 해병의 눈을 나는 너무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어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때서야 자만하고 군 생활을 그저 쉽게만 생각했던 내가 창피하고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지만, 나의 선임 해병에게는 어떻게 달라진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풀이 죽어 있던 내가 개인 보관함을 열어보았을 때 선임 해병의 힘내라는 조그만 편지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과자가 들어 있었다.
입대한 지 4개월이 돼 가는 지금, 군 생활이 너무 즐겁고 해병대에 오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했나 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며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 작은 편지와 과자 하나가 나를 이렇게 군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해 주다니 감동스러웠다.
나의 선임 해병을 비롯해 내가 몸살에 걸려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침상에 누워 힘들어할 때 새벽에 조용히 약봉지를 놓고 가는 해병대 교육훈련단 본부대대 해병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본부대대 해병들 감사합니다!
<국방일보 2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