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 국방일보 2012.03.07
전광호 영국 센트럴 랑카셔
대학교 교수·아태지역학 대학원장
우리 군은 분명히 강군이다. 규모로 보나 훈련 내용으로 보나 세계적 강군이라 자부해도 손색이 없다. 물론 세계에는 우리보다 더 강한 군대도 있다. 미국도 그렇고 부상하는 중국도 군사 강국이다. 그리고 비록 소군이지만 영국군도 프랑스군도 유럽을 대표하는 강군이다.
영국의 국방대학교에는 각국에서 파견된 연락장교들이 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주로 나토의 주축 국가들이 연락장교를 파견하곤 했다. 프랑스는 1966년 나토를 탈퇴했다가 2009년 복귀했지만, 항시 영국 국방대에 연락장교를 상주시켰다. 필자가 영국 국방대에 근무한 4년간 프랑스 해병 중령이 연락장교로 파견돼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도 다른 30여 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 국방대 합동지휘참모과정에 장교 3명을 매년 유학시켰는데 흥미로웠던 점은 매년 3명 모두가 해병 장교였다는 점이다. 물론 우연한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연락장교를 포함해 왜 매번 해병 장교들이었을까?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육군이 강한 나라다. 나폴레옹도 포병 장교 출신이었다. 이런 우연에 혹시 역사적 라이벌 의식은 없었을까? 그것이 항상 궁금했다.
현대전에서 해병대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상륙전을 주요 임무로 하면서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해병대와는 그 의미와 중요성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우선 해병대가 갖는 상징성은 영국과 같은 섬나라에는 두려움의 존재다. 물론 요즘 같으면 일단 공군력으로 제공권을 확보하고 장거리 미사일과 각종 함포사격으로 해안방어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결국 해병대가 최일선에 서서 상륙작전을 감행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또 육·해·공군에 편제된 각 특수부대가 저마다 역할을 다하겠지만, 어느 나라건 강한 해병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강군을 상징하는 하나의 지표로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가 강군인 이유도 물론 3군 모두의 힘이겠지만 든든한 해병대를 갖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다.
잘 알다시피 우선 피상적으로만 따지자면 일본은 정규군을 갖고 있지 않다. 자위대가 있지만, 자위대의 장교들은 영국 국방대에 유학을 와도 군인 신분의 비자를 받고 올 수 없고 민간인 신분으로 유학을 온다. 계급도, 제복도 다 갖췄지만 당당히 ‘일본군’으로서의 지위는 전혀 가질 수 없다. 2년 전 한 학술 세미나에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주제로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일본도 보통국가의 지위를 가질 것이고 정규군도 보유하겠지만, 해병대와 공수부대는 절대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해병대는 존재감 그 자체로 큰 상징성을 가진 군이다.
그저 필자만의 상상이겠지만 영국 국방대에 유학 오는 프랑스 해병 장교들은 어쩌면 아주 미묘한 영국과 프랑스 간의 역사적 라이벌 의식과 어떤 연관성은 없었을까? 지금도 참으로 궁금하다. 그러나 설혹 필자의 생각이 맞는다고 해도 누군들 그것을 확인해 주겠는가. 유럽 대륙에서, 적어도 서유럽에서 포성이 멎은 지는 이미 70년이 가까워 온다. 유럽 역사상 가장 긴 평화의 시기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 군인들에게 필자의 궁금증은 차마 꺼내서는 안 될 금기시되는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