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병대사령부 병장 이유용
친구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난 심각한 표정과 입영통지서를 보여주며 내 입대 사실을 그것도 해병대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입영통지서를 확인한 친구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안됐다
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필 왜 해병대 가는 거야? 해병대 진짜 엄청 힘들다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당차게 대답했다. “남자라면 해병를 선택해야 하는거 아니야?!”
친구들은 어이없는 표정만 지어 보였다.
내가 해병대에 입대하여 실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을 즈음 내 입대소식에 동정 어린 눈빛을 보냈던 그친구들이 하나 둘 해병대로 입대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자식들~! 자기들도 남자라고 해병대를...” 나는 기특한 웃음이 쏟아졌다.
휴가 중 만난 내 친구들은 나름 해병대스러운 모습이었다. 얼굴에 장난기는 그대로였지만 뭔가 모를 해병대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해병대 힘들더냐?!” 나는 내 후임이자 친구인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친구는 “물론! 해병대라는 이름처럼 힘들지! 힘들지 않으면 그게 해병대입니까?” 사석에서 만나 반말과 존댓말 사이를 위험하게 오고가는 그 녀석의 말은 그러했다. 해병대의 이름처럼 강하고 힘들고 때론 고단하기도 하지만 해병대 입대 전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흔히 말하는 이빨이었다
고 그때 들었던 희한한 악습들이 힘든 게 아니라 해병대라서 힘든 거라고 하지만 남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라고....
이병이었던 내 친구는 입대전 머릿속에 그렸던 그런 군생활의 모습과 다른 점도 있고 힘든 점도 있었다
고 고백했다. 하지만 열심히 해보자는 의지와 오기와 진심이 해병대에선 통하더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는 우리가 해병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며 현재 2사단에서 상병답게 군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갑작스런 해병대 입대는 가족에게 서운함을 안겨 주었다. 특히 아버지께선 나에게 많이 서운했다고 고백하셨다. 아버지께선 내가 ROTC를 통해 장교로 입대하기를 꿈꾸고 계셨는데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않고 덜컥 해병대 입영통지서를 보여드렸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섭섭하셨을 것 같다.
그날부터 나와 아버지는 대화가 적어졌다. 당시 나는 남들 안가겠다는 군대를 가겠다는데 왜 화를 내시지?라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러던 중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불쑥 “아들, 치킨에 맥주 먹으러 갈래?”라고 물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지금까지 서운했던 점들을 말씀하셨다. 굳이 “해병대를 왜 가려하니?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빨리 가야만 하는 이유가 뭐니?” 나는 해병대를 입대한 뒤 전역 후의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생각하던 해병대의 장점을 알려드리면서 해병대를 어필하였다. 마지막으로 꼭 해병대여야하는 이유를 진심으로 설명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저는 남자로서의 첫 관문인 군대를 해병대 입대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어느 덧 해병대에 입대하는 날! 가족과 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기차에서 내려 본 포항역에 는 나처럼 입대를 앞두고 머리를 빡빡 깎은 사내들이 보였다.
나와 입대 동기가 될 그 사내들과 함께 나는 해병대로 향했다. 신병 교육대에서 가족과 함께 여러 가지 세부설명과 교육 등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과 나는 걸어서 몇 초도 안 걸리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나는 또 다른 내 인생을 시작하는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다.
2008년 7월 21일 이렇게 나는 해병 1074기의 일원으로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현재 이 글을 마치면서 무엇인가 가슴 한구석에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때 가족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었던 내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긴다면 입대할 때의 그 마음가짐을 생각한다면 모든 일을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 새삼스레 나의 입대 전의 모습을 생각할 기회가 생겨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 되었다. 이제 나의 전역일은 어느덧 한 달 정도를 앞두고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정든 선·후임들과 많은 추억을 가지고 전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