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소설가 김용성
해병대 사관후보생 제33기로 임관했던 것이 얼마 전 같은데 벌써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해병대복무 시절과 조금도 변함없는 해병대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해병대에서 체득한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습관과 목글 / 소설가 김용성표를 달성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력은 오늘날의 내가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철없던 젊은 시절 해병대에서의 군복무는 훗날 내가 문학인으로서, 대학교수로서 살아가는 데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으며 고통스러울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을 길러 주었다. 이제는 내 삶의 경험과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마치고 한국문학 발전에 미력이나 마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음에 하늘과 해병대에 감사할 뿐이다.
내가 군복무를 할 때나 지금이나 해병대는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무를 수행하여 '역시 해병대'라는 국민들의 강한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국군 전체로 보면 2%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서해 5도와 서북해역을 포함한 서부전선 방어임무를 수행하면서 단 한번도 적의 도발을 허용하지 않고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인천항의 발달과 어민들의 안전 조업을 보장하고 있으며, 수도권의 성장은 물론 국가 경제 도약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오고 있다.
서울수복작전 시 해병대원들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 이후 지금까지 해병대는 나라의 심장인 수도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또한 미 해병대와 함께 상륙작전 수행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 해병대는 매년 대규모 연합 상륙훈련을 실시하고, 즉각 임무수행이 가능한 상태로 상륙작전수행능력을 배양하여, 북한군을 휴전선이 아닌 해안선 방어에 투입되도록 분산시켜 무력에 의한 공산화를 꿈꾸는 북한의 도발을 차단해 오고 있다. 해병대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7년 태풍 '나리'로 제주도가 초토화되었을 때 해병대는 수해복구 투입 지시를 받은 후 10시간 만에 연인원15,000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11일 만에 피해 발생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2008년에는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연인원 2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85일간 220여 톤의 타르를 제거하여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태안지역에서 이제는 사고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같은 부대가 대통령 표창을 여덟 번이나 받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해 5도에서는 교육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도서지역 학생들을 위해 해병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우면서도 후배 해병들의 열의에 고개가 숙어지도록 고마움을 느낀다. 주간에 교육훈련, 야간에 경계작전 투입이 빠듯하게 이루어지는 근무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정비를 위해 주어지는 시간을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해병대 후배들의 모습에 나는 감동하지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후배 해병들을 위해 해병대처럼 생각하고, 해병대처럼 생활하는 모든 해병들은 반드시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싶다. 나는나의 삶을 통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정해진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자만이 국민의 자격이 있으며, 쉽고 편한 길이 있음을 알면서도 인내와 희생이 요구되는 강한 부대인 해병대를 선택한 젊은이들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그룹에 이미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해병대 후배들도 나와 같은 시기에 도달하였을 때 내가 깨달은 것을 똑같이 깨닫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해병대를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 1%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해병대지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