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기를 보내고 1104기를 맞으면서
글 / 하사 김동우
사랑은 주는 거니까, 사랑은 주는거니까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하는 이승철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을 주는데 왜 슬퍼도 행복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상대편이 사랑에 대한 반응이 없어서 슬프고 그래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서 행복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젊음과 패기를 가지고 해병대를 온 신병들을 보면서 이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6주차 수료후 실무로 가면서 고맙다고 눈물을 짓는 것을 보면서 그냥 행복하다. 신병들은 사랑을 주면 준 만큼 나의 마음을 감동시켜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이게 해병대 신병이다.
오늘도 6주전의“어이쿠 저놈들 군인 될 수 있을까”하던 신병이 어느덧 6주 훈련을 이상없이 마치고 제법 의젓해진 모습으로 버스를 타고 부임지를 향해 간다. 훈련기간중에는 교관들의 눈을 피해서 요령을 피우던 신병들이 버스를 타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끌썽한다.. 그리고 고맙다고, 나를 포옹하는 신병도 있다.
짐짓“빨리 타”하지만 나의 가슴에도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다. 신병을 보내고 생활반에 가서 뒷정리를 하다 보면 개인사물함에는 김동우 교관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찾아뵙겠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낙서가 있다. 내 가슴속에서 뜨겁고, 뭉클한 그 무언가가 생기고 금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후회도 밀려든다. 그 당시에 왜 화냈을까, 좀더 자세 하게 자상하게 가르쳐 줄 수 있었는데... 또 좀 더 열정과 정성을 가지고 신병을 훈련시킬수 있었는데... 나의 열의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옥상에 가서 잠시 끊었던 담배를 한대 피운다.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의 일환으로 금연열풍이 한창이라 며칠 담배를 안 피웠는데 이담배 연기속에 다음 기수에는 더 열정과 성의를 가지고 훈련병을 훈련시켜야 겠다고 생각해본다. 스스로 생각해보니 나는 그저 월급을 받고 나의 직책에 충실했을 뿐인데 나에게 이런 큰 감동을 주는 신병들이 있어 정말 행복한 것 같다. 신병 제1101기도 항상 어디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잠시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덧 연병장에는 앳된, 뭔가 어설퍼 보이는 머리가 긴 1104기 훈련병들이 와 있다. 1101기에 대한 상념은 어느덧다 사라지고“어이쿠 저놈 언제 또 군인 만드나”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민간인이다. 지시를 하면 예, 어떻게 해요, 예 했는데요, 대답을 하고 돌아갈때는 머리를 꾸벅 숙이고 간다. 신병교육이 비록 6주간의 기간이지만 방금 들어온 훈련병하고 수료식때의 훈련병은 하늘과 땅 차이다. 수료한 훈련병은 그래도 조금 의젓해보이고, 군인다워 보인다. 내가 6주 동안 훈련병과 정이 들어서 그런건가, 아무튼 내 눈에는 수료할 때의 훈련병은 빨간 명찰을 달고 있는 무적해병, 상승불패의 해병대 정신을 계승할 해병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 온 신병들은 언제 군인될까 싶다...
그리고 어떻게 또 훈련을 시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입소식을 마치고 나는 또 정신없이 생활한다. 과업은 물론 식사, 취침, 세면 등 모든 것을 일일이 지시하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 훈련병과의 전쟁이다.
교관들은 훈련시키고, 고함치고, 기압주고, 훈련병들은 교관 몰래 숨고, 요령피우고, 훈련병들은 피동적이고 교관들은 피동적인 훈련병들을 가르칠려고 하니 조용할 틈이 없다. 1,2주차는 그야말로 교육대가 전쟁터 같다. 이렇게 과업을 마치고 퇴근하면 나는 힘이 쭉 빠져 옆에서 재롱부리는 딸을 보는둥 마는둥 하다가 잠이 든다. 그러나 피곤해도 나는 꼭 자기전 5분간 하루를 반성한다.
이때 교육훈련단장님께서 올초에 교관들 정신교육하면서 하신 교관들은 신병들을 대할 때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일은 더 열심히 하고, 신병들에게 자세하게, 때로는 엄격하게 교육을 시켜야 하겠구나 스스로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출근하면 또 신병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말끼도 못 알아듣고, 모른척하고 요령피우는 신병을 보면 또 고함치고 다그치고 한다. 이러다 1,2주차 훈련이 끝나고 3주차부터는 야외훈련이 시작된다.
사격, 유격, 각개전투, 침투훈련, 화생방, KAAV탑승, 행군, 진해 발상지 답사 등을 하면서 신병들은 어느 순간엔가 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제법 의젓하고 군인다워진다. 신병들은 진해 발상탑앞에서 연대장님 주관 빨간 명찰 수여식을 하고 나면 피곤한 가운데서도 눈빛이 번쩍이고,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동작이 절도가 생긴다. 매시간 정신없고, 바빠서 느끼지 못한 사이에 어느덧 또 해병 1개 기수가 탄생한 것이다. 신병 수료식을 마치고 나면 나는 또 한개 기수를 만들어 냈구나 하는 뿌듯함과 함께 아 정말 훈련교관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다. 그 만들어지는 과정에 내가 있다. 나는 오늘도 해병을 만든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출근한다. <해병대지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