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사발과 술 한사발

 

/ 글/운사 박광남

국군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의도에 머물면서

매일 여의도광장의 대낮 뙤약볕과 싸워야하는 
지휘관들의 회식이 초저녁 캠프와 가까운 어느 식당에서 있었다.
해병대지휘관은 나 뿐이라서 어느 자리에서나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조심스럽기도했다.
기계화부대 참모들을 포함하여 약 20여명이 자리에 앉았다.
식사 후에 안주가 들어오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당시의 소주병은 뚜껑을 일일이 오프너로 따거나 이빨로 따야했다.

"어이, 해병대대장! 술은 해병대가 잘 마시는게 아닌가.
시계 반대침 방향으로 잔을 돌리겠네.
자, 돌아간다."
부대장 홍장군의 말이었다.
우동그릇으로 소주를 마셔야했다.
나는 해병대시절에서 술을 배운 것이지만 그렇게 술을 잘 마시지는 못했다.
우동그릇에 소주 두병의 량이 가득찬다.
겁이 났다. 저 우동그릇으로 술을 마시다보면
한 방에 떨어질게뻔하다. 무슨 방도가 없을까.........골똘히 생각한 나는
잠시 화장실로 가는 길에 주방에 들렸다.
"아주머님, 부탁이 있는데.......5분 후에 소주병 두 개에다
정확하게 물을 채우시고 뚜껑을 닫은 후 오봉에 받쳐서
방으로 가지고 오십시오. 부탁입니다."
아주머님은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다.

잠시 후 방으로 들어온 나는 술(소주)아닌 물 두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틀.카.찌-
이미 해병대에서는 이런 주법이 없어졌다고
설명했으나 그날의 주법은 바로 부대장이 정했기에
그 자리에 참석한 지휘관 모두는 긴장하고 있었다.
1. 노 : 술잔을 들었으면 바닥에 놓지 않는다.
2. 털 : 술을 마시고는 털지 않는다.
3. 카 :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거나 독하다고해서 입으로 카라고 말하지 않는다.
4. 찌 : 술을 마시고 찡그린 인상을 하지 않는다.

* [이 잔은 부대장님께서 주신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라는 구호를 먼저 해야한다.
만약에 구호나 주법이 틀리면 다시 우동그릇으로 벌주인 술을 마셔야 했다.

내가 바라던 물이 담긴 술병 두 개가 방으로 배달되었다.
그 술병에 물이 담긴 것을 누가 알겠는가.
드디어 주법대로 '노.틀.카.찌'를 지키면서 술(물)을 마실 참이었다.
곁에 있는 육군의 대대장이 소주 두병(물이 담긴)을 우동그릇에 가득 따랐다.
나는 그 술잔(우동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해진 주법대로 술 아닌 물을 단숨에 마셨다.
술을 마셔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술보다 물마시기가 더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세상에 어디 모심기를 했거나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노동으로부터 오는 갈증을 해소한다면 그 우동그릇만한 물이야
단숨에 마시고도 남겠지만
평소에 물 한 사발을 숨도 쉬지 않고 마신다는 것이
쉽겠는가 말이다.

내가 노린 것은 술 마시는 것도 해병대가 최고다라는
정말 웃지못할 모군사랑앞에 지혜를 짜낸다는 것이
물 두병을 마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결코 거기에서 나는 멈추지 않았다.
주법을 어겨 벌주로 술 한그릇을 추가하여 마신 지휘관도 있지만
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실수로 인하여 술 한 사발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부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육군의 유능한
참모와 지휘관을 만났으니 해병대 장교로서 대대장으로서
자축의 술 한 사발을 더 추가하여 마시겠노라며
진짜 술 두병을 마셔버린 것이다.
나는 물 한 사발과 술 한 사발을 마신 것이다.

그리고 그 술잔인 우동그릇에다가 다시 술 두병을 따르고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대장님께서 저희 해병대를 사랑해 주시는 고마움에
두 사발의 술을 마셨지만, 지금 따른 술 한사발은
저희 해병대사령관님이 부대장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술로서
해병대사령관님을 대신하여 드립니다."

(사실은 술에는 장사가 없다. 그러나 나는 두 사발의 술을
마셨고 다음은 순서를 불문하고 부대장께 술 한사발을
권해 드시도록 한 심보를 누가 알겠는가.)

저, 왜구의 적장에게 은가락지를 선물하게 하고
사랑의 표시(?)로 적장을 부둥켜안으며 깍지를 끼고서 한몸으로 낙하한
논개의 충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무슨 일이나 경쟁에서 질수없다는 자부심의 발로(發路),
내가 건네준 해병대사령관께서 하사하신 술을
기계화부대장으로 하여금 마시도록 했다.

잠시 있으려니.....부대장을 비롯한 대다수가 술에 취해버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술을 권했는데
술잔 받기를 마다하는 것이었다.
"역시, 해병대야 술에도 못당하겠어.......
도대체 못하는게 뭐야? 해병대대장"

미련스러운 나는 !
물을 마신 나의 배 속에는 물반 술반이었다.
배가 불러 도저히 다른 음식은 먹을 수 없었다.
내가 그런 술책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일은 해병대였기에 가능했으리라믿는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소수로 무리지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생물에게는 저마다의 생존법이 있다.
비가 내린 후 상추밭에 가 보라.
일제히 피어나 잡풀이 자랄 수 없다.
기러기가 떼지어 날아 가는 것도 종족의 안전을 위한 수단일 것이다.

모름지기 해병대가 살아야하고 영원을 꿈꾼다는 것은 남보다 단결되어야하고
정의로워야하고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의 나
대대장으로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가를 했지만
숨은 특기를 살려
기계화부대장이 수여하는 수백장의 상장을 붓으로 써 준 나다.

해병대시절 이전부터 서예(붓글씨)에 관심이 많아
공부를 했고 사서를 받은 후라서 나의 글씨로 그렇게 상장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해병대장교가 무식하고 꼴통(?)이라는 그들의 잘못된 사고에서 완전히 탈피하는데 일조를 한 것이다.

그들이 하지 못하는(더러는 인원이 많으니 서예가도 있지만)
서예를 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려는 나의 자세가
그들에게는 귀감이 되어
행사가 종료될때까지 사랑을 받은 것이다.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
지나가고 시절의 모습이 생경된다.

이제, 나의 후배가 내가 지나 온 길을 걷고 있겠지만
같은 경험을 할 수 없고 같은 자리를 지날 수 없다.

옷장 속에 걸려 있는 정복에 아직도 이름표와 계급장이 달려있다.
그 시절, 피와 땀 그리고 눈물에 젖은
팔각모가 벽장안에 있다.
제대를 축하하기 위해 전해 온 장검(예도)이 먼지를 덮어 쓰고 있다.

해병이기 전에 해병대를 알 수 없다.
"부대~~~~~차려~~었!!!!"
"경례!!"

우리의 해병대 깃발을 바라보며 거수경레를 하자.
태극기를 바라보면 경례를 하는데
우리의 해병대기나 부대기 앞에서는 인색하다.

진정한 해병이라면
해병대기와 부대기를 바라보는 순간에 경례를 해야한다.
얼마나 그립고 애닲은가.
그 깃발아래서 죽어간 선배해병들
깃발의 중요성을 알고 그 깃발을 고지 정상에 꽂았다.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리는 모습에서
깃발의 영광을 알 것이다.

물 한 사발의 의미는 나에게는 대단히 중요했다.
내가 술을 한 사발 마시고 주저 앉으면
해병대가 주져 앉은 것이다.
내가 술 한 사발과 물 한 사발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다면
해병대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은 해병대가 사는 것이고
내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모두 해병대가 기쁘고 슬픈 것이다.

해병이면 앉으나 서나 해병대 생각이다.

해병이었다가
사회로 돌아온 수많은 예비역 해병들의 모습에서
해병이기를 잘했다는.............
그래서 '누구나 해병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몸부서질,
해병이라도
해병대를 사랑하리라는
수많은 선후배들.....................

그들은 결코
비겁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해병은 해병으로서 명예와 전통을 지키고 창조하려한다.
내가 그랬듯이
자신보다 해병대를 위하는 마음
해병이면 영원히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젊음을 바칠 것이다.,
우리가 해병대를 떠났다고 영원히 떠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늘 해병대가 있고
해병으로서 살다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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