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 일병(해병대1사단)
‘말이 씨가 된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나는 사내다운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성격도 소심한데다 체격마저 작았으니 말이다. 주변 어른들은 활발한 여동생과 성격이 반대로 됐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언젠가 막내 고모가 내게 말씀하셨다.
“넌 나중에 군대 갈 때, 육군 말고 해병대에 가서 인간 개조 좀 시켜야 해.”
물론 별생각 없이 흘려들은 말이지만 막상 해병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씨가 돼 무의식 중에 나를 해병대로 인도 했나 보다.
`인간 개조의 용광로'. 해병대에 입대 후 교육훈련단에서 처음 들어 본 말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훈련병 시절에는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것이 더 낫다.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해병대 정신은 지금까지 보고 듣는 것에만 크게 의존했던 나에게 ‘경험의 중요성’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언제나 주변에서 맴돌며 소극적이었던 성격을, 이제는 내가 선봉이 돼서 직접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놀랐다.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내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입대하기 전에는 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군에 대해 긍정적인 사례들을 말해 줘도 그저 흘려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실무생활 중인 지금은 이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사소하지만 하나라도 경험에서 비롯된 나의 시각과 사고능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차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지금은 전혀 군 생활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에 의해 의무로 왔다기보다 내가 직접 지원한 해병대이기에 그만큼 자부심이 있다. 사회에 있을 때 내게 꿈이 있었다면 군 생활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이자 준비하는 단계다. 아버지께서 휴가 때 술을 한잔 건네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군대는 또 하나의 사회다.” 어차피 겪게 될 사회생활을 미리 한번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남자들을 강하게 담금질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군 생활에서 얻은 건강한 정신력은 내가 앞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딜 때 방향을 제시하고, 강인해진 체력은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돼 준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면서 나를 위해 투자하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명예롭다. <국방일보 / 201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