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연평도가 북한에 공격당했다. 1953년 휴전 이후 우리 영토를 직접 포격한 것이다.
북한 해안포가 쏜 100여 발의 정밀 조준 포격에 의해 해병대원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 등 2명이 전사했고 민간인을 포함해 19명이 다쳤다. 도하 각 신문의 1면에 실린 시커멓게 타오르는 연평도 사진이 가슴 아프다.
중동 전쟁터에서나 보았던 끔찍한 장면이 우리 눈앞의 현실로 펼쳐진 것이다. 북한이 어떤 변명을 해도 통할 수 없다.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직접 도발이자,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다. 민간인 지역 공격은 전시(戰時)에도 국제법이 금지하고 있는 전범(戰犯) 행위다.
필자는 마지막 군 생활을 강원도 화천군의 2군단 직할 한 포병대대에서 보냈다. 155㎜ 곡사포 부대였다. 북한과 직선 거리가 10㎞ 남짓 떨어진 최접경 포병부대였다. 당시 155㎜ 포의 사정거리는 22㎞였으니, 전쟁이 일어나면 ‘너 죽고 나 죽고’식의 대포병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좌표를 향해 항상 차려포 상태로 방렬(放列)했다가 수없이 진지 이동훈련을 한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물론 지금은 K9 자주포까지 등장했으니 낡은 기억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런 필자의 옛 경험에 비춰봐도 연평도 사태에서 가장 놀란 것은 오히려 북한이 아닐까 싶다. 미리 정밀 조준 포격을 했지만 그 결과에 북한도 경악했을 것이다.
군대 시절 포 사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탄(初彈)이라고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군 당국 발표에 따르면 북 해안포들은 숱한 포탄을 바다에 떨어뜨렸다. 해병 자주포 진지를 과녁으로 삼았지만 K9 자주포의 대응사격을 받았다. 북한의 포탄은 애꿎은 호프집과 민가에도 떨어졌다. 북한 스스로 자신들의 형편없는 포 사격 솜씨에 당황했을 게 분명하다.
연평도 사태를 둘러싸고 국내 일부에서 제기하는 근거 없는 의문에는 답답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첫 대응 포격을 하기까지 13분이나 걸렸다고 따지는 것은 한심하기까지 하다. 물론 포병의 생명은 신속·정확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엄청나게 빠른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미리 준비된 상태라면 3분도 안 돼 대응사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의 기습으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포병이 하는 일이 진지 이동이다.
포심지에서 500여m 이상 벗어나야 대응사격이 가능하다. 이후 좌표 잡고, 상부에 보고한 뒤 사격 명령이 내려오기까지 역순으로 되짚어 보면 연평도 해병포대의 대응은 오히려 매우 기민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제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 올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할 것이다.
잠수정으로 천안함을 몰래 공격하거나 서해5도 인근 해상에 포 공격을 해온 것과는 전혀 다른 도발을 해 왔다.
앞으로 3대 세습 과정에서 북한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여기에 우리 군이 수동적으로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유린하고 국군과 민간인을 살상하면, 결연하게 즉각적이고 충분한 응징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연평도에서 전사한 두 해병 대원을 잊지 않는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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